귀국과 코로나, 그리고 또 하나의 초대하지 않은 손님은 불안증이다. 공황장애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었는지, 단어의 어원도 모르겠는 데다가 어감도 당황스러워서 붙이기 싫다.
지난주부터 처음 증상을 인지하던 때와 비슷한 전조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입맛이 떨어진다. 뭘 먹든 맛이 안 느껴진다. 이 증상은 코로나 때 미각이 사라진 때 증강되었던 것 같다.
식욕이 없어져서 장보기가 고역이 된다. 얘들이 뭘 먹고 싶다고 하면 신나야 하는데 먹고 싶은 게 없으니 배달시켜줘 버리고는 막상 나는 한 입도 안 먹었다. 그리도 다이어트해야 해서 식욕 누르기가 힘들었던 20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때 나는 내가 참 좋았다보다. 이쁜 옷 입혀주고 맛있는 음식 먹여주고 나를 그리도 사랑했나 보다.
지금은 내 입에 뭘 집어넣어 주기가 싫다. 꼴 보기 싫어서 밥 먹이기도 싫은 그런 기분이랄까?
애완동물을 키웠다면 동물학대죄로 잡혀갔을 텐데, 내가 나 자신에게 이러하니 누구도 뭐라 할 이가 없다.
두 번째 증상은 외출하거나 볼거리가 많고 나면 어지러워한다. 한 시간 전시 보고 왔다 갔다 한 시간을 합쳐서 두 시간의 외출이면 내 몸에 그리 무리도 아니라 여겼다. 그런데 쓰러질 듯 돌아와 집에 와서는 죽은 듯이 한 시간을 자곤 했다.
낮잠 잘 짬을 못 내는 두 시간 이상의 외출 건이 생기면 밤에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잠이 안 오는 일도 생겼다.
몸이 아니라 뇌가 문제인 걸까? 지난 주말에 아모레 퍼시픽 뮤지엄에서는 전시가 피부로 와닿고 사진 속으로 쑥 들어갔다 나오는 듯 실감 나는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더니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휘청 거리며 집으로 오면서 왜 이럴까 하고는 몸이 보내는 사인을 해석 못했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지하철을 탄지 30분쯤이 됐을까?
호흡이 안되어 부랴부랴 선바위역에 내려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이 시간에 전화를 바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는 동생뿐이다.
엉금엉금 플랫폼 의자로 가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느꼈다. 어떻게 집에 돌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다시 지하철을 탈 수는 없을 것 같다. 타면 숨이 막혀 졸도할 것만 같다. 동생이 오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하고 선바위역 밖으로 나왔다.
낯설고도 낯설다. 서울 쪽으로 좀 걸어가다 보면 택시가 오겠지 하고 나서다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한 지 40분 만에 택시를 타고 그가 왔다.
선바위역에서 내린 지 두 시간 만에 남편을 만났다.
꺼이꺼이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를 않는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건너편을 바라보고 앉은 남편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겠다.
"아침은 먹었어?"
먹은 것도 없고 식욕 없는 지도 한참이다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말할 힘도 말을 잘할 자신도 없다.
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신이 있다면 번호 달아 리스트로 건네줬으면 좋으련만.
"막국수 먹자."
버스 정류장 바로 뒤편 막국수집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휘청휘청거린다. 울어 부은 눈 때문에 눈을 감으니 땅이 오르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쓰러지는구나.
남편의 손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손 잡은 것이 우린 언제 였을까?
남편의 손은 따뜻하고, 막국수는 시원하다.
반 그릇도 못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이 괜찮냐는 말에도 울며 맛있다고 대꾸하고 마스크 좀 벗고 있으란 말에도 자꾸 눈물이 나 남들 보기 부끄럽다 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두시. 이렇게도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예고 없이 날씨 좋은 날 공황 증상을 겪고 나니, 시간이란 것이 참으로 신묘하다 싶다. 이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은 마흔넷만에 처음인 것이다. 나와 마주하고, 나를 나무라며, 내 눈물을 닦아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쩌면 지난주 내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귀를 막았었나 보다.
이제 내게 화해하자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다. 돌봐 주겠다고 가혹하게 대하지 않겠다고 말해준다. 예전처럼 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한 번이면 족할 경험이라 화창한 4월의 봄, 다른 어느 하루를 이렇게 또 보내고 싶진 않다. 남편과 낮에 만난다면 어느 버스정류장은 아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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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득한 집- 꿈 그림, 박계숙,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