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또는 명절

by 호박씨

전생에 나라를 구하면 주재원 와이프가 된다는 말을 남편에게 들은 횟수는 50회 정도인 것 같다. 시댁도 멀고, 명절도 없고, 한국으로 복귀하면 신데렐라처럼 일상 복귀다라는 말도 거푸 말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명절은 무엇일까?


아버님에 돌아가시고 첫 명절이 지난 구정이었다. 아버님의 첫제사를 겸한 명절이라 어머니와 세명의 시누들은 다들 날카로울 데로 날카로웠다. 앞으로 제사상은 내가 차릴 예정이지만, 지금은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세팅해두려고 하려는 것 같았다.


네 명의 여자와 부엌에서 날 지나가는 줄 모르고 끼니를 챙기고, 제사 음식을 하다 보면 짬짬이 알아서 쉬어야 지치지 않는다. 남편이 결혼 전 쓰던 방에 아이 둘이 게임을 하고 있다. 거실에는 아주버님들이 결제한 영화를 보고 있고, 남편은 이리저리 집안일과 어머니 심부름하니라 바쁘다. 집 안에 또래가 없고, 나이차가 있는 조카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놀 생각은 없는지라 명절도 아이 둘이 머리를 맞대고 포켓몬에 열중하고 있다.

둘 사이에 슬그머니 누워 잠시 눈을 붙이면 기운이 차오른다. 싫지만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어렵지만 맞닥뜨려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 뒷걸음질치고 싶을 때는 아이들의 발을 조물조물해본다. 이젠 한 손에 들어오지는 않는 딱딱한 발이지만, 갓 낳아 모닝빵처럼 보드랍던 그때를 떠올리게 해 준다.

일단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면서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에 대해서 작전을 짜 본다. 두 아이들이 만들어낼 명절이란 그 누구도 불합리하게 노동하지 않는 모습이며, 일상에 깨소금 뿌린 듯한 축제이기를 내 노동 시간을 제물 삼아 기도한다.


독일에서도 명절이 되면 집에서 기름 냄새가 나게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튀김을 하고, 전을 부쳤다.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에 가서 우리 명절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시연을 했다. 전통놀이를 하며 약과를 나눠주곤 했다. 반의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 우리의 것을 알리려거나, 영어가 되니 가볍게 나를 뽐내려 간 것은 아니다. 아이들 반 전체 앞에서 하는 영어는 두렵기 짝이 없다. 남편이 ' 너는 참 학교를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 심장을 후벼 파듯 그 말이 섭섭했다. 주변 주재원 와이프들이 나댄다거나, 부럽다거나 하는 말들도 상처가 되었다.


모든 것들의 위에는 아이들의 시간 속에 남는 명절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믿었다. 엄마가 교실로 들고 왔던 뜨끈한 떡국, Homeroom 선생님이 입었던 엄마의 한복, 그리고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알려준 붓글씨. 한참이 지난 후에라도 그날들을 떠올리길 바란다. 어제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오늘의 내가 기억하고 써 내려가 듯 말이다.


외할머니 댁이 있는 문정동과 친할머니 댁이 있는 응봉동은 명절 당일 날은 30분도 안 되는 거리다. 10평의 문정동 집을 꽉 채운 빈대떡과 만두, 전, 떡을 먹으려면 30분 안에 소화라는 것을 해내야 한다.

응봉동에서 먹은 엄마와 친할머니의 콜라보 작품인 탕국은 한 대접을 먹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정동에서 빈대떡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찌 되겠지 하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친가 탕국은 맛이 기가 막힌다.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친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친할머니가 소고기 탕국의 명가라는 사실이 어린 호박씨에겐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문정동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자주색 소나타에선 부른 배에 노곤해서 잠이 들어버린다. 전날 응봉동에서 밤새 음식을 하니라 엄마와 할머니는 분주했고, 그 틈을 타서 나도 늦게까지 그들을 관찰하거나 TV와 책을 보며 놀았기 때문이다. 잠이 들면 탕국으로 가득 찬 배가 꺼질 리가 없다. 부른 배 그대로 문정동에 도착해도 먹는 것은 가능하다. 어찌어찌 집어넣어 지더라. 약사인 아버지도 만성 소화 불량 이시니 상비약으로 소화제는 항상 구비되어있다. 어떻게든 먹고, 먹은 뒤엔 약에게 기대면 되지 하며 축제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나만의 축제는 5년도 채 못 즐긴 것 같다. 친할머니 댁의 제사와 명절 음식은 할아버지가 간소화시키셨고, 외할머니는 늙어가셨고, 나는 명절이 싫은 취준생이 되어버렸다.

어제 외할머니에 대한 글을 써 올리고 4시간 만에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코로나라 영안실도 겨우 구하고, 장례식장 안의 인원 제한을 넘기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엄마와 외갓집 식구들은 모여서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 영안실을 구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일상의 언어를 말하는 엄마에게 조용히 물었다.

" 엄마, 괜찮아? "

엄마는 외삼촌의 말을 전하며 속을 꺼내 보인다.

" 이제 할 일이 없어져서 허전할 것 같다네, 삼촌이."

지난주에 문정역에서 헤어지며, 다음 주 일요일에도 여기서 보자던 엄마의 말은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사라져 가는 축제의 기억을 붙잡아본다. 여럿이 북적이던 그날을 여기에 새겨본다. 여럿이 모이는 것이 죄가 되는 시대를 겪고 있는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다. 요새 들어 " 엄마, 왜 이렇게 늙었어?"라고 자주 말한다. 옛날이야기하듯 " 엄마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말은 막는 지금의 두 아이가 나의 오늘을 궁금해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늙었단 말을 들을지언정 슬그머니 그들에게 말을 걸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대문그림

Calling in the Gleaners , 쥴스 브레톤,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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