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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Feb 15. 2023

걱정스러운 이쑤시개.

엄마의 절친, 숙진아줌마는 단골 중 최단골이다. 숙진 아줌마도 본인 자녀들에겐 툭 말을 내뱉으시려나? 내겐 아줌마는 칭찬봇, 듣기 좋은 말만 하며 살아온 우아한 노년 같기만 하다. 우리 엄마랑은 딴판이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드냐며 송도로 엄마를 통해서 거듭 택배 주문을 하셨다. 숙진 아줌마의 아들이 스콘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며 엄마는 스콘 넣어달라 신신당부를 했다.


" 오늘은 스콘 구울 시간이 없을 것 같아. 큐브 파운드 방금 많이 해 뒀으니 큐브파운드 보냅시다."

프랑스 다크 초코를 한껏 부운 촉촉한 파운드가 매장에서 인기다. 황치즈를 넣은 노르스름하고 고소한 치즈맛 큐브도 잘 나간다. 숙진 아줌마가 주문하신 휘낭시에도 엄마가 아줌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부탁한 스콘도 파티시에 혼자서 해내는데, 굽고 싶어 하지 않는 그녀를 설득하고 싶지 않다. 

마음으로야, 매장 보증금을 감당한 엄마의 40년 지기 친구를 향한 배려를 소중히 여겨주고 싶다. 보증금을 내지 않았었더라도 엄마 부탁이라면 들어줘야 한다 생각한다. 난 천상 책임감 짊어진 장녀다. 송도에도 디저트 집이야 널렸을 터인데, 의리 넘치는 숙진 아줌마의 택배 주문은 일부로라도 스콘을 구워야 할 것만 같은데...


큐브파운드에 어제 만들어온 귀여운 픽이라도 꽂아본다. 케이크 위에 꼽는 케이크 픽은 하나에 천원도 하는데, 비용절감은 변명이고 디자인하는 재미가 있어 픽을 연일 만들고 있다. 공들여 만든 이쁘게 생긴 놈을 꽂아서 택배 포장을 했다. 스콘 대신 파운드라도 보내야지. 


"이쑤시개가 나왔다는데?"

다음날 아침시간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숙진 아줌마에게 보낸 디저트 속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톤이 높다. 심장이 내려앉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이물질이라니. 디저트 만들어 팔면서 가장 무서운 말이 이물질이다. 머리카락이라도 나왔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쑤시개란다. 

범인은 정성스레 꽂은 케이크 픽이었다. 픽의 막대기 부분만 파운드케이크에 꽂혀있고, 디자인해 만들어 붙인 라벨지는 택배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다. 숙진 아줌마는 디저트를 고정하니라 이쑤시개를 넣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나 보다. 택배 잘 받았다며 엄마에게 보낸 사진 속에는 영락없이 제조 과정에서 이쑤시개로 보였다. 


케이크 픽을 찍어서 엄마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엄마에겐 택배 과정에서 라벨지가 떨어져 나갔다고 설명해 드렸다. 숙진 아줌마는 그동안 엄마를 통해서 주문을 했었고, 나는 아줌마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 사과 전화 드리게. 연락처 주세요." 

 맛있게 드셨냐로 시작해서, 케이크 장식인데 택배 과정에서 분리가 된 듯하다고 설명드렸다. 거듭 사과를 하자, 아줌마는 너무 잘 먹었다고만 하신다. 



 

불안. 오늘을 사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화두가 되는 단어겠다. 방학 동안 출퇴근 시간 포함해서 6시간 정도 집을 비운다. 불안하다. 아이들에게 3번씩 정도 전화를 건다. 밥은 먹었냐, 집에 돌아왔냐, 간식 사갈까 하고 묻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여왕의 오후로 엄마의 자리가 비었을까 불안함에 전화를 한다. 

 학교 가면 학교 가서 무슨 일 있을까 걱정, 집에 있으면 끼니는 챙겨 먹는지 걱정, 머릿속은 아이들에 대한 불신과 불안으로 차있다. 그런 나와 엄마는 닮음꼴이다. 오픈하고 운영은 잘하고 있는지 걱정, 맛은 있게 만드는지 불안한 엄마의 마음이 읽힌다. 거울처럼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속엔 내가 있다. 

경력이 끊긴 지 10년이 된 여성이 사회와의 접점을 마련할 수 있고, 세상에 이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서며 마음먹은 바였다. 내가 당장 구할 수 있는 직업은 비정규직뿐이었다.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없다면 일할 곳을 만들면 되지 싶었다. 어디 나가서도 간단히 경단녀, 애들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에게 기대 가정이라는 좁은 인간관계밖에 맛보지 못한 이로 보였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스스로 반박하기도 쉽지 않았다. 

집에서 아이들만 바라보면, 남편을 기다리며 불안이 나를 집어삼킬 만큼 커져버렸다. 여왕의 오후에 나와있으면 불안이 영영 나를 떠날 것이라 여겼다. 공부나 할 줄 알지, 아이들 공부를 잘 시키지 돈 벌어 본 적은 없는 것이 내 딸이다 싶은 것이 엄마의 시선이다. 그런 엄마의 시선 속에 담긴 걱정을 읽으며 분하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엄마 때문인 것만 같다. 엄마, 미안해. 

불안도 유전이다. 살면서 대물려준다. 현대인은 다들 그렇다더라며 걱정이 나를 삼키는 현상을 손 놓고 볼 순 없다. 뿌리치고 일어나 걱정과 두려움을 껴안고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사는 것은 원래 이런 거라고 내 삶으로써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 나의 출발은 이것이었다. 불안 타파. 

택배에는 케이크픽은 절대 꼽지 않는 것으로 걱정 타파다. 친정 엄마에겐 아침마다 여왕의 오후 매장 앞에 놓인 꽃다발을 찍어 보낸다. 엄마, 걱정 말아요. 우리 두려움에 지지 말고 나아가요. 사진에 가만 메시지를 닮아 카톡을 보내본다. 

"아이고, 꽃시장 또 갔다 왔어? 부지런하네, 우리 딸." 

칭찬이라고는 마흔 넘게 살며 열 번도 기억이 안 난다. 칭찬에 목말랐던 시간만큼 엄마의 카톡답장은 내겐 간지럽고 낯설다. 삶은 원래 매 순간 낯선 것이 당연하다. 맞다,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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