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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an 30. 2023

생뚱 맞은 브런치

독일에서 뭔가를 찾을 때 생뚱맞다 싶은 순간이 있다. 


편의점 사용이 필요한 순간에는 주유소를 가야 한다. 

24시간 생필품은 주유소에 딸린 마트에 모두 구비되어 있다.

일요일 마트가 필요한 때는 주변 농장을 간다. 

계란, 우유, 과일 등을 여전히 팔고 있으니까.

토요일 16시면 마트는 싹 문을 닫는다. 


주말 브런치는 가든 센터에 간다. 가든 센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한국에서는 놀랄 일이다. 가든 센터란, 예를 들면 가드닝에 필요한 용품들을 파는 곳인데, 화분이 좀 더 많은 이케아라고 생각하면 딱 좋을 것 같다. 이케아는 기존 유럽의 가드닝 센터의 저렴이 버전이다. 한국에서 이케아를 만났을 때, 가구점에서 왜 음식을 팔지 했는데, 유럽의 가든 센터에 가보고 서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아!  꽃 사고, 정원 가구 사고, 집 꾸미는 소품들 사고 나면 배도 고픈 법. 

중산층이면 정원 딸린 집 살 것이고, 그 정도 살림살이 면 주말 외식 한 번은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발전한 가든 센터의 브런치는 가든이 없는 삶에 익숙한 한국 엄마들에겐 천국이다. 실컷 꽃 구경 하고, 고급 식재료들 구경하고, 센터 내에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거다. 오픈 시간도 이르다. 얘들 학교 보내고 바로 향해도 좋다. 

독일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분위기도 릴랙스하다. 은퇴하고 연금으로 사는 이들은 마음도 여유롭다. 


브런치 메뉴는 신선한 치즈, 수제햄, 퀄리티 좋은 야채와 잼 들이다. 계란 요리도 빠질 수 없는데 방사란들로 만든 계란 요리는 전부 다 맛있다. 삶아도, 스크램블을 해도, 프라이를 해도 몽땅 고소하고 부드럽다. 가격은 음료까지 포함해서 10~15유로 선. 2만 원인데 10시부터 1시까지 죽치고 있을 예정이니 두 끼 식사로는 가성이 갑이다. 


적당히 먹고 나가란 사람 없다. 서빙하는 이들도 노인들을 대부분 대하다 보니, 찬찬하고 정돈되어 있다. 아시안이라고 무리하게 팁을 요구하거나, 불쾌하게 대한 경험 전무하다. 


브런치라는 이름, 왠지 여유롭고 한가롭게 느껴졌던 것의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한창 다들 바쁘게 일할 오전 시간, 점심이 되어서야 한숨 돌리는 노동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야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주말 브런치는 달콤하고 귀하게 여겨진다. 


브런치를 즐기던 삶에서, 브런치를 고민하는 삶이 되었다. 여왕의 오후는 11시 오픈인데 1시까지 트래픽이 적어도 너무 적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은 직장인들이 12시 30분 정도부터 디저트를 사러 오는데, 점심 먹자 모자라 구매단가가 높진 않다. 입가심 정도니 그럴 법도 하다. 


브런치 메뉴를 만들어야겠구나 하고 오픈하고부터 내내 고민했다. 그리곤 브런치를 즐기던 날들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시간 부자였던 날들을 모르고,  시간들의 의미를 잘 모르고 마냥 좋았다. 무사히 국제 학교에 등교시킨 나를 칭찬해 주는 3시간은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어 고민도, 독어 고민도, 귀국할 걱정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독일 노인들 사이에서 유유자적 하게 마치 이 순간이 삶의 노을 곁인 양 풀어지고만 싶었다.


브런치는 그런 것인가 보다. 브런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인가 보다. 

메뉴 고민보단, 분위기 고민인 먼저다. 디테일엔 약하니 큰 그림부터 그리고만 싶어진다. 미안하지만, 자세함은 파티시에에게 미뤄두고 뜬구름만 잡는다. 솜사탕처럼 뜬구름을 모아 모아 쫀득한 설탕 덩어리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1년 동안 고민하진 말아야지. 이리 기록으로 남기니 메뉴 하나쯤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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