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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an 18. 2023

대한 독립 만세, 인간 독립 만세

처음엔 부모님이 백기를 드셨다. 오픈하고 첫 단체 주문이었다. 신나게 주문 접수를 했지만, 동생은 긴장을 할 수 있는 대로 긴장을 했다. 100개의 상자, 총 200개의 휘낭시에. 하면 될 터인데 싶지만, 책임자로서 파티시에로써 첫걸음은 걱정이 많을 수도 있었겠다. 

출근하자마자 흔들리는 동공으로 포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왜 사람 나오니까 우니?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모진 소리를 했다. 뭐가 두렵겠는가? 말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도 5년씩 살았는데, 말 통하는 나라에서 뭐든 못해겠는가 싶다. 그러니 동생의 울음도 징징거림으로만 느껴졌다. 

" 사람 우는데,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동생은 떠나고, 빈 가게를 지키고 있으니 불안함이 커졌다. 늘 그렇듯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의 요지는 그렇게 힘들 거면 왜 일을 벌였냐는 거였다. 결국 내 탓이란다. 

그만둬라는 말이 나오자 엄마를 달래야겠다 싶었다. 그만두라는 말 동생에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사정하니, 돌아온 엄마의 답은 그만두라고 하겠다는 것이었다. 엄연히 잘못이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려면 심정적으로도 독립을 해야 하는데, 늘 의지하고 뭐든 솔직하게 대화하던 엄마와 큰 딸은 서로로부터의 독립이 힘든가 보다. 

곧 동생에게 카톡이 쏟아졌다. 싸운 것을 왜 이야기하냐, 친정 집에서 당장 나올 거라 했다. 

순간 드는 생각이 월세로 친정에서 나올 텐데 그럼 매장을 시작하며 내게 주기로 한 최저월급 50만 원은 줄 수 있을까였다. 참으로 간사하다. 언니라는 사람이 그런 계산부터 한다. 참지 욱해서 친정을 나온다는 결정을 하다니, 분했다. 




남편이 백기를 들었다. 

" 집 꼬락서니 좀 봐. 얘들 내팽개치고 도대체 나가서 하는 게 뭐야? 여왕의 오후가 무슨 의미야?" 

도전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더 이상 친정엄마에게 상담하고 싶지 않았다. 엄연히 결혼과 동시에 독립한 개체인데, 미주알고주알 엄마와 이야기하기보단 남편과 하고 싶었다. 도움도 그에게 청하고만 싶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젠 쉬엄쉬엄 쉬어가야 하는 연세에 이른 엄마에게 짐을 더 이상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버겁다 했다. 토요일 학원이 끝난 아들의 산책을 시켜달라는 부탁이 버겁다 했다. 회식이 2,3 차례 있던 주의 토요일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했다. 출근하며 차려두고 간 아침 설거지통 그래도, 아침 먹던 식탁 그대로를 퇴근하고 난 저녁 6시에 마주해야 했다. 컴컴한 방에서 아들은 혼자 시간을 넘겨 게임을 했고, 딸아이는 놀다 느지막이 들어왔고, 남편은 누워 잠옷 차림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곤 했다. 

이 모든 상황은 내 탓이라 했다. 그가 말한다. 엉망진창이 원인은 내가 집을 나가서라고. 

여기서 버럭 걱정이 된다. 이번달 말에 월급 안 보내주면 어쩌나 싶다. 애들 학원이며 방학 식비며 쏟아지는데, 내게 소리 질러대는 남편이 노여워 생활비 안 보내주면 어쩌지? 이 상황에선 이런 계산부터 생각난다. 지질하다. 분하다.



"얘가 그런 것은 네가 얘를 쪼아서 그래." 

아이와 병원에 간 이야기를 엄마에게 간신히 꺼냈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만큼 담담해졌고, 햇빛도 보인다. 아이는 내 전화도 잘 받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다. 전화를 걸기도 한다.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계란을 2개 넣을 예정이라고 수다도 떤다. 그러니 이제야 친정엄마에게 아이가 아프다고 했다.

내 탓이라 하신다. 힘주어 말해본다.

" 엄마, 내가 아픈 것은 엄마 탓이 아니야. 아들이 아픈 것은 내 탓이 아니고." 

핸드폰을 타고 들어오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진다. 갑자기 제주도 타령이다. 얘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잔다. 매장은 어쩌고요? 저 일하는 사람입니다, 어머니. 

살려고 나갔다. 나도, 아이들도 살아야겠기에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매일 아침 비장하게 매장으로 나선다. 세상이 어떻길래, 한국은 어떤 세상이길래 우리 아이들이 학교 가서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할까 궁금하다. 국제학교를 보내놓고는 봉사활동을 빌미로 늘 학교로 출근하다시피 했던 호박씨가 다시 신발끈을 묶었다. 

탓이 아니라 덕분이라고 해주길 세상에게 부탁해 본다. 믿어주길 부탁해 본다.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나를 조건 없이 칭찬해 달라고 애걸해 본다. 안된다면, 스스로 토닥여주는 수밖에.....

언제쯤이면 독립할 수 있을까? 진정한 독립 말이다. 딸이 아닌, 같은 부모로 엄마와 눈높이를 나란히 하는 독립을 꿈꾼다. 마누라가 아닌 양육을 협업하는 동료로서 남편과 눈을 마주하고는 날을 기도한다. 

간절히 꿈꾸고 절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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