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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07. 2023

취업 시장에서 윤리를 찾는다.

 여성발전센터, 경단녀 경력이음센터등에서 제공하는 자격증들을 통해서 취업을 하게 될는지 아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현재로 분명한 사실은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적어도 그 분야에서 작건 크건, 적어도 한 번씩은 관계된 실무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듣는 수업은 미술치료라 서양화나 산업 디자인등의 전공자가 많은 편이다. 실질적으로 미술치료를 자녀나 본인이 임상으로 경험해 봤다는 간증을 하시는 이도 있다. 또는, 미술치료나 아동대상 미술학원을 운영하다가 코로나로 접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무관한 경력에 임상 또는 실무 경험 전무의 백지상태는 나뿐인 듯하다.

 그러면 드는 생각, 도대체 왜 아직도 이 수업을 듣고 계시지 싶다. 어쨌든 현직에 나갈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서 교실에 있을 것이 아니라 임상 현장에 뛰어들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또는 자격증 이거 아무리 따 봤자 취업과는 거리가 멀고 강사님의 자격증 팔이에 어리석게도 남편의 피땀 눈물 어린 돈으로 이바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그의 돈에 피 땀 눈물이 서려 있다고 믿고 싶다.)


 잡생각을 하다 보면 수업 듣기가 싫어진다. 선 이론, 후 실기인지라 이론 수업 듣다가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집중력이 고만 흐트러지고 만다. 나를 다독여 본다. 혹여 이 과정이 헛되고도 헛된 짓이라고 해도, 자격증 한 장은 남으니까 이력서에 줄 하나는 더 보태는 셈이다. 며칠 아르바이트 자리에 이력서를 내어보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나를 고용해 주는 곳 간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 또는 코치, 조언을 해주는 자의 입장이 되고 싶지 직접 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과정에서처럼 고군분투와 맨 땅의 헤딩, 독박 육아와 유사한 실무는 하고 싶지 않다. 생각보다 난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적어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남편의 월급과 회사 그만 두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아는 남편의 습성 덕에 나름의 여유가 있다.

 알바 리스트를 필터링할 때 그런 내 마음이 필터링된다.

" 음, 나는 아토피가 심해서 설거지는 못해. 지금도 주부 습진 때문에 손바닥 다 시뻘겋잖아. 그러니 물 닿는 일 주방 업무는 다 빼자."

" 1인 사무실은 폐쇄적인 공간이잖아. 1인 남자 사장하고는 같이 일하기 불편하지. 두렵기도 하고. 세상 무섭잖아."

 그러니 재고 재서 마음에 드는 곳에 지원을 해보는 것이다. 지원해 둔 곳에서 연락은 단 한 곳에서 왔다. 다단계 영업방식으로 유명한  중견기업 화장품 회사인데 무료 피부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몇 백만 원짜리 화장품을 강매한다. 내일부터 와보시라는 전화 연락에 뛸 듯이 기뻤다가 업무가 정확히 뭔가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하고 환불받고 난리도 아니다. 아, 나한테 연락 오는 곳 또는 나를 고용하고 싶은 첫 번째 대상은 불법은 아니지만, 윤리적이진 못한 곳이다.

 전 같았으면 머리 싸매고 누웠을 것이다. 그래, 내가 겨우 이 정도의 인간이라는 거잖아 하면서 자기 연민 100%에 빠져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 인생이 이런 것은 다 너희들 때문이라고 히스테리를 부렸을 것이다. 저녁밥은 맛없었을 것이며, 한 잠도 못 자 아침 댓바람부터 우울이라 쓰인 얼굴로 그들을 배웅했을 테지. 그런 내가 있는 집에서 나갈 수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다라고 셋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런 과거의 호박씨는 없다. 수학 숙제를 하는 딸 옆에서 전자책을 읽다가 딸에게 알바 이야기를 한다.

"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신났었는데, 이런 곳인 거야. 화나서 엄마가 당근톡 보냈잖아. 그런 일 하는 거 너무 꺼림칙해서 하기 싫다고. 그래서 내일 안 갈 거라고 말이야. "

" 그냥 안 간다고 하면 되지. 엄마는 뭘 그렇게 또 정직하게 이야기해? "

"사람들한테 카드빚 지우는 못된 짓을 하는 거는 이야기해야지!"

정의의 투사 나셨다는 눈빛이다.  전업 주부, 엄마가 사회적인 직업이 아니라면 정의 투사는 어떨까? 사회적이긴 한데 돈은 안되니 직업은 안되려나 싶다. 경력 이음 센터에서 **자격증을 발급하시는 강사님은 어떤가? 돈을 주고 자격증 종이 한 장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고 만원이라도 벌고 싶은 마음에서 수업을 수강한다. 절박함으로 치면 1등이다. ( 남편 벌어오는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세뇌한다. 그 누구도 남편의 월급이 나의 보조를 통해서 생겨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겨도 소용없다.)


 첫 수업이라 자기소개를 한다. 배워서 가정에서 적용하겠다는 분들이 계신데,  그럴 거면 자격증 반에 왜 들어왔담. 우리 좀 솔직해져 볼 필요가 있다. 돈 벌고 싶은데....가방끈 긴 분들이 이 수업에는 많은 편이라며 강사님은 좋아하신다. 진정으로 좋아할 일은 이 수업 수료하고 나면 인턴쉽으로 임상 경험을 쌓을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 믿는다. 취업률 100% 이렇게 숫자로 나왔으면 좋겠다. 아줌마들이 듣는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지 말기를 빈다. 공무원 대비 학원, 수험생 학원, 대입 준비는 통계 수치로 말하면서 왜 여성 취업센터는 감정에 호소하는지 모르겠다.

 15만 원 주고 등록한 데다 자격증 시험은 1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16만 원이 미술치료사의 길과 심리치료소의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이 글을 씀으로써 괜찮아졌다. 글꼭지를 얻었고 경험을 샀다. 이 수업이 아니었다고 해도 어디선가 나는 좌충우돌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력 단절된 고학력자가 마치 이 세상에 나만 있는 듯이 혼자 고민하고 있었을 테니까.

 유명 여대 대학원 졸업자 분들과 강사님을 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그래, 여유 있는 이들을 보면서 힘내보자. 절박함 순서대로 취업되지 싶다. 현실에서 쓰이지 못하는 학문 속에서 헤매는 이들 가운데서 내 손으로 천 원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만이 성공할 거야! 16만 원은 얘들 데리고 호텔 딸기 뷔페 간 셈 치지 뭐.

 다음 주 금요일도 나는 한 손엔 핸드폰으로 알바를 뒤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미술 치료 수업을 들으며  셀프 임상을 할 예정이다. 글감을 또 벌 것이며, 여성 경력이음 센터의 개선점에 대해 할 말이 잔뜩 생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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