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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12. 2023

부러우면 지는 거

"여왕의 오후는 잘 되죠?"

 카카오톡은 음성지원이 된다. 적어도 내게는. 그녀의 음성과 표정이 선하게 떠오른다. "네^^"하고 간단하게 답을 보내니 재차 묻는다. 끈질긴 그녀다. 

창업을 한다고 하면 기존의 알던 전업주부들의 반응은 열에 아홉은 이랬다.

"시그니처 메뉴가 있어야 해요. 내가 카페 많이 다녀봐서 알아요."

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카페나 베이커리 링크를 보내주었다. 

 도와주고 싶은 건 알겠는데, 벤치마킹할 업체 조사 안 했을까 봐 싶다. 하두 여럿이 그리 이야기하니 저 마음은 뭘까 했더니, 나 카페 좀 다니는 여자야 하고 말하고 싶은가 보다. 



"이번에 우리 남편이 내 생일로 이거 사줬잖아요. 여기 가서 저녁도 먹었어요."

 내 생일은 한결같이 잊거나, 지나가거나 또는 지나가고 나서 챙기지 않은 남편이었다. 생일이 12월이라 연말만 되면 그에게 1년 동안 싸둔 섭섭함을 연말정산하듯 토해냈다. 세상에 내가 나온 것을, 나의 존재함을 제일 먼저 축하해주어야 하는 것은 당신이잖아 하면서 목놓아 부르지었다. 

 그녀의 생일도 마침 연말이었다. 남편은 어쩜 그리 살가운지. 독일은 홀 케이크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홀케이크 예약에 그녀가 좋아하는 고딕풍이 으스스한 호텔 저녁에 이벤트 회사 CEO처럼 제대로 대접하는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녀를 만족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진 않다. 비싼 저녁, 작고 예쁜 선물, 그리고 바쁜 주재원 업무로 귀하고 빠듯한 시간. 아, 또 있다.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준비 태도! 

 비싼 저녁 대신 손수 만든 저녁만 들어가면 내가 늘 남편에게 심지어는 시부모님에게 늘 해드렸던 것인데, 결국 사는 동안에는 돌려받지 못하나 보다 하며 좌절했다. 그런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연말이 되면 그녀는 행복함에 취해있었고, 나를 불쌍히 여겨 포장까지 예쁘게 해서 선물을 주고 비싼 점심을 사주곤 했다. 점심 먹는 내내 그녀의 남편이 벌인 이벤트의 디테일들을 들어야 했다. 마냥 부럽고, 나는 왜 돌려받지 못하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얻어먹고 들어왔는데 기분은 상해 야근과 접대로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불평을 했다. 

 " 저는 욕심도 많고 샘도 많아요."

솔직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그녀는 남편에게 요구하면 그가 잘 들어준다는 부부의 이야기를 세세히 전해주곤 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운전길은 왜 늘 잿빛이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여왕의 오후 안나간지가 2주째인 타이밍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촉이 좋은 그녀다. 주재 발령 나가기 전 일했던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와 출근을 하게 됬단다. 재택근무가 절반이라 초등저학년인 아들을 돌봄에 넣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했다. 내가 딱 바라던 일인데 싶은 마음이 바닥에서 떠올랐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하라고 종용하는 남편이 싫다고 투덜거렸었다. 애도 보고 일도 해야 하면 불공평한 거 아니냐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쳤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다시 경력을 이어갈 기회가 있다는 상황을 싫어했었다. 일 하지 않고 오롯이 아이들만 돌보았던 주재 이전의 내 삶을 부러워했었다. 

 그런 그녀가 더듬더듬 나의 창업이 성공적인지 묻는다. 속이 빤히 보여서 답하기 싫다. 이젠 더 이상 그녀를 만족시키고 싶지 않다고 심술궂은 호박씨가 슬몃 떠올랐다. 

"여왕의 오후 출근은 안 하고 있고요. 브런치 작가에 알바 구하면서 경력 이어가려고 바쁘게 살아요."

솔직하게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녀가 출근하는 회사의 장점과 남편의 서포트에 대해서 반나절은 자랑할 태세니까. 거듭 얼굴 보자고 한다. 그래, 들은 정이 있는데 한번 보자 싶어 사무실 위치를 물으니 강남이란다. 걸어가면 되겠어요 했더니 강남에서 만나면 그녀 아이들을 하교 시간에 맞추기 힘들 예정이라 일산인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쪽인 종로에서 봐야 한단다. 안 보련다. 

 그녀보다 6개월 정도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학부모 상담 갈 때 메고 갈 거라며 남편을 졸라 루이뷔통 핸드백을 샀다. 작은 녀석이 1500유로, 우리 돈으로 백만 원이 넘었다. 코로나로 상담은커녕 바깥출입도 못하는 터라 옷장 구석에서 썩어가고 있을 때,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귀임 예정이라 샤넬백 2개를 샀다고 했다. 모델과 사이즈, 가격을 내게 보고하는 그녀에게 좋겠다, 부럽다를 연발해 주었다. 그제야 만족한 그녀는 코로나로 복잡해진 입국 절차로 피곤하다며, 자신과 아이들의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그녀의 샤넬백에 응수하기 위해, 대화에 맞장구치기 위해 사용되었던 루이뷔통 백은 학부모 상담엔 나와 함께하지 못했다. 백이고 나발이고 선생님을 대면하는 것이 소중했고, 여왕의 오후 퇴근길에 학교로 갈 계획이라 작은 핸드백은 적당치 않았다. 오늘은 옷장 구석 루이뷔통 등판이다. 당근마켓에 내다 팔 예정이다. 

 내겐 더 이상 핸드백도, 그녀에게 맞장구치는 일도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버려야 할 일이다. 이제 그만. 그녀를 부러워해 주었던 과거의 나는 워킹맘이 된 현재의 그녀에게도 해롭다. 의자 뺏기 놀이처럼 제한된 희망과 바람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우린 꾸역 나를 사랑하려고 애쓰며 오늘을 살아가는 40대 경력단절 여성이다. 내겐 생일을 챙겨주는 배우자와 백만 원짜리 핸드백은 필요하지 않다. 세상에 나온 날 뿐 아니라 주어진 하루하루 스스로 축복하면서 살고 있기에 생일은 배우자에게 챙겨달라할 것이 아니라, 배 아파 나은 친정엄마에게 감사함을 담은 전화를 할 것이다. 

 주재 생활의 유일한 베프였던 그녀 또한 홀로 행복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길 글로 멀지 않은 곳에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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