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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14. 2023

사망 뉴스용 취업

죽음은 수로 셀 수 없다. 하나의 죽음과 여럿의 죽음, 그 무게는 같은 거라 본다. 심지어는 어떤 생명이건 그 생명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의 무게는 같다 여겨야 한다. 여왕의 오후 디저트 카페에 출근하는 10개월의 기간 동안 베란다의 행운목을 말려 죽였다. 11개의 식물이 베란다에 있는데, 군자란은 오렌지색 꽃을 피우고 있는 반면, 행운목은 하나 남은 잎마저 누런 빛을 띠고 있어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란다 식물들은 갇힌 생명인 셈이니 돌봐주지 않으면 죽게 마련이다. 한 명의 부주의함은 지구의 생명 하나를 지운다. 

 

 신문기사에서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청년의 취업과 저출산, 장년층의 생계는 나라의 큰 근심거리이지만, 40대 여성은 무리 지어 규정되어있지 않으며 이슈가 되지 못한다. 사회 뉴스보단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편일 게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보행로가 무너져 숨진 40세 여성의 발인이 8일 엄수됐다....

A 씨는 지난 5일 오전 9시 45분께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서 탄천을 가로지르는 교량인 정자교 보행로를 지나가던 중 한쪽 보행로가 무너지면서 숨졌다...

A 씨의 남동생은 "사고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면서도 정자교가 최근 안전진단을 받았음에도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A 씨의  유족은 어머니와 남동생인가 보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기사에 있지 않으며, 남동생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헤어디자이너 였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예약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러 출근하는 길이였다. 그녀를 기다린 사람은 미용실의 단골들이었을 것이고, 그날 예약 손님은 오지 않은 그녀를 의아해했을 것이다. 간단한 한 줄로 그녀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라 우린 한강공원을 즐겼다. 의대생이 한강공원에서 사망했는데, 오랜동안 이슈가 됐었고, 그가 발견된 한강 공원에는 꽃다발이 가득했다. 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죽음이라며  여러 매스컴에 등장했었다. 친구가 안됬다며 카톡을 보내오기에 물었다.

"의대생이 죽은 뒤 이틀 뒤에 특성화고 고등학생 실습 나갔다가 죽은 거 알아요?" 

모두가 의사가 되고 파한다. 전 국민이 의사라면 좋아라 한다. 의대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관심을 갖는다. 목숨값이 같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생명의 사라짐에 아쉬워하는 정도는 평등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의사라면 지긋지긋한 호박씨 개인적 사유도 물론 있을 터이지만, 유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란 어떨까?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가 내 눈높이보다 커진 지금, 신문에서 죽음을 찾으면 상상해보곤 한다. 지면에 쓰인 저 1명이 내 아이라면 난 어떠할까 싶다. 그러다, 내가 낳은 생명이 내겐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가치라고 말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자식을 의사로 만드는 그 누군가와 다를 바가 없는 건 아닐까? 다른 얘들이 괴로워도 내 아이만 행복하면 된다거나, 남을 위해 희생하여 너의 목숨을 바치면 절대 안 된다고 아이에게 메시지를 던지며 양육하고 있는지 나를 되돌아본다. 


"현충원은 왜 가?" 

체험학습 장소로 현충원이 결정되니 딸아이가 분해한다. 현충원이란 단어의 뜻부터 설명해 줬다. 딸이 일제강점기에 유관순처럼은 안되더라도,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지까진 않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엄마, 아빠, 오빠를 데리고 다른 나라로 이민 가겠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니 영어가 공용어인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 가족은 괜찮을 것이란다. 

"엄만, 나라 버리고 안 갈 건데?" 

딸의 눈이 동그래졌다. 딸아, 나라를 버리고 간다면 어디 가서 행복할 수 있을까? 엄만 말이야, 이름 없이 사회적인 관계없이 사는 40대 경력단절여성이지만 말이야. 엄마가 죽는다 해도 기사에 한 줄은커녕 반 줄도 차지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낳고 이렇게 키울 수 있었던 한국을 위해서 목숨을 걸 거야. 


딸에게 말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겠다. 나라 뺏길 일, 전쟁 날 일 없게 대한민국을 잘 지켜야겠다. 딸내미가 나라를 떠날 때, 건강하기도 해야 하니 운동도 좀 더 규칙적으로 해야겠군. 내 죽음은 얼마짜리일까? 호박씨라는 생명의 사라짐은 뉴스에서 얼마나 등장할까? 인재든 자연재해든 나의 사망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간절하게 바라는 이가 몇이나 될지도 궁금하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경력은 이어야겠다. 세상 안에서 접점이 늘어나면 아쉬워할 이가 더 늘겠지 싶다. 죽음 대비용으로 취직은 꼭 해야할 셈이다. 


대문이미지 : UnsplashAnca Gabriela Zo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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