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Apr 06. 2023

마케팅 대표가 헤이즐넛 커피 한 잔

동생의 디저트 가게인 여왕의 오후 문을 박차고 나선 지 일주일이 되었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시발소비라는 단어 아시는지? 쇼핑할 시간이 생겼네라며 내 옷도 사고 얘들 옷도 샀다. 이틀 전엔 노트북을 들고 sns에서 많이 봤던 장면처럼 마시고 싶은 커피를 큰 마음먹고 두 잔이나 시키고 카페의 안쪽 테이블을 지켰다. 스스로를 이 정도는 대우해 줘야지 않겠어?  나를 기쁘게 만들기 위해 쓰는 푼돈인데 뭐 어때? 

 지난 7개월, 창업 준비가 피곤로 쇼핑할 시간이 없으니 돈은 쌓였다. 커피는 매장 기계로 부지런히 내려마셨고, 옷 뭐 입을지 고민하기엔 머리가 복잡해서 손에 잡히는 옷을 반복해 입었다. ( 잘 빨아 입지도 않았다.) 잘 짜인 카펫처럼 빽빽한 하루라 뭘 입든 뭘 먹든 상관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출근길에 오르곤 했다. 손님 한 명이라도 우리 가게를 더 알고, 하나라도 더 먹여보고, 1000원이라도 더 사게끔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 동안 신바람이 났다. 무엇하나 손에 잡히지 않아도,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없어도 가족이 아닌 생판 남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면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은 절로 만들어지는구나. 시발 소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 넘쳐흘렀다.


 이력서를 쓰려니 막막했었다. 경력은 15년째 단절이어서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살았는지 세상에 증명해내야 했다. 일주일 전 여왕의 오후의 문을 박차고 나왔듯이 2008년 3월, 회사를 갑작스레 그만두고 15년째 이력서에 쓸 한 줄이 없다. 두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자 아버지의 약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남편의 독일 발령으로 약국을 나갈 수 없게 되자, 아빠는 아줌마들을  타자 업무 파트타이머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파트타이머로 오전, 오후 4명 넘게 고용하는 호시절이 아빠를 찾아왔다. 

 코로나로 매출은 바닥을 쳤고, 파트타이머들을 내보내야 하는 작년이었다.

" 내가 고용 창출을 4명이나 했어. 회식도 했었다고." 

 약사라는 직함도, 통장에 들어오는 돈도 고용 창출과 같이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를 이기지는 못했다. 나에게 교통비까지 얹어주면서도, 더 많이 주지 못해 아쉬워하던 아버지는 최저시급으로 주부들을 고용하면서 스스로를 기특하고 자랑스러워하셨다.


동생이 마케팅대표, 마대라고 불러주었다. 해본 적 없는 사업의 시작에서 이름에 어깨가 올라갔다. 바로 이거지! 이 정도 이름은 주어져야 멋있다. 한 줄도 쓸 수 없는 이력서를 들고 사회 속에 저 좀 끼워주세요 하는 고생 안 해도 되니 폼 나고 손쉽다. 마케팅 대표답게 원가를 산정하고, 가격을 최대한으로 낮춰 보자고 제안했지만 내 말은 동생에겐 통하지 않는다.

 " 너도 안 해봤잖아." 

맞는 말이다. 해 본 적 없으니 할 말이 없다.  여왕의 오후가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챙겨본 책들에 쓰여있더라고 나직이 읊조려본다. 고생해서 겪어보지 않은 바는 신뢰받지 못한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시간과 노력만이 충고의 뒷배가 된다.  


월요일, 노트북을 들고나간 곳은 커피빈이었다. 커피빈은 스타벅스처럼 적극적 마케팅을 하는 곳이 아니다. 뭔가 있는 척하는 고고한 커피빈이 내겐 제격이다. 5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대신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500원 더 주고 시킨다. 기가 막힌 맛이다. 5천5백 원어치의 값어치를 만들어내야 하니 글을 짜내고 4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 왜 이렇게 시발스러운지.  찝찝함의 원인은 카페의 커피원가를 알기 때문인가? 

 아니. 인내를 집어던졌기 때문이다. 원가를 낮추려는 최선과 이익률을 맞추며 가격을 조정하려는 수고가 필요하다고 동생에게 백번 말해본들 통하지 않는다. 천 번 인내해야 했었다. 무엇보다 여왕의 오후 밖에서 단돈 100원이라도 벌어보고 그녀 앞에 서야 한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활동만 했던 내 말에 귀 기울여 줄리 없다. 편하게 도서관에서, 더 편하게는 교보문고 가서 남편이 입금한 월급으로 산 경제 경영서를 읽는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더라며 말해본들 설득력은 0다.  


"엄마, 나 대학원 보내줘." 

헤이즐넛 커피를 마시며 글을 짜내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을 수다 떨었다.

기껏 생각해 냈다는 게 돈 쓸 궁리다. 대학원에 가면 돈을 쓰지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투자라고? 언젠가는 돌아올 투자라고 변명하지 말자.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나니 나를 속이기 힘들다. 글에다 나를 꺼내두고 바라보기에 거짓부렁은 물속처럼 훤히 보인다. 마흔이 넘어 부모에게 받는 대학원비야 말로 시발소비 그 자체다. 

마대는 그럴듯하고 알바는 하찮았다. 창업이라 하면 멋져 보이고, 선생이나 코치라고 부르면 더 그럴듯했다.  이제, 신분의 롤러코스터를 타듯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간다. 여왕의 오후를 홍보하려고 만든 당근 마켓 앱에서  비즈니스 프로필이 있는 매장 대표였지만, 오늘은 당근 알바를 구하러 들어간다. 이력서를 써 제출하기를 누른다. 세상의 눈으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이력서 쓰기는 의미 충만한 글쓰기다.  경력 0이지만,  두드려보자 싶다. 비공식적임으로 가득한 내 삶에도 15년 만의 공식적인 시작이 있겠지. 이제부터 경단녀의 창업일기는 진짜 시작이다. 브런치에 쓰는 대신에 이력서에 쓸 예정이다. 발행이 드문해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오늘은 홈카페다. 20년 된 프렌치 프레스는 어제 산 듯 말짱하다. 원두가루 왕창 넣어 우리니 커피빈 저리 가라다. 7개월 카페 경력 덕분에 맛난 아메리카노가 무한 리필이다. 마실 수 있는 만큼 드세요, 호박씨. 혼자여도 경단녀여도 내가 꽤나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블버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