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는 단어가 내내 떠오르는 하루였다. 가족들만을 대하는 날이어서 그런가 보다. 말에 자신이 없어진다. 내뱉고는 곧바로 후회할 것을 무엇하러 내 밖으로 꺼내두는 것일까?
A형 독감으로 콜록 거리는 손주와 어지럽다는 손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토요일도 약국으로 출근한 친정엄마는 인삼 공급상에 전화를 넣고는 신이 나서 전화를 울렸다. 하루 내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핸드폰 화면에 떠있는 '엄마'라는 글씨가 싫었다. 오늘 내가 겪는 곤란함과 불편함은 엄마 탓이야 라고하고 싶다.
" 아나운서 왕**씨가 홈쇼핑에서 곰탕을 팔더라. 그거 주문해달라고 전화했지."
"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홈쇼핑에 쓰인 데로 전화 걸어, 엄마. 친절하게 어떻게 살지 안내해 줄 거야. 다른 사람들처럼 홈쇼핑 보는 거 그만해. TV 그만 보고 책 좀 봐 그리고."
" 너는 그렇게 말하면, 학원에서 잘린다."
"자르라고 해. 뭐 무서워?"
대충 살라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한다. 세상 전부인 것 같은 엄마가 내게 그렇게 말한다.
적당히 좀 하라 하신다.
독감에 월요일인 중간고사 준비는 못하다시피 한 아들 옆을 지키고 있었다. 열만 안 났지 아들의 바이러스를 잘 이어받아서 두통에 인후통, 피로가 겹쳤지만 스스로를 나무랐다. 아들 아프면 돌봐줄 사람이 나뿐이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 거듭 내게 말했다. 내 컨디션이야 어쨌든 상관없다. 시험 보는 것은 아들이니까.
"엄마, 걱정하지 마. 알아서 하고 있어."
보다 못한 아들이 한마디 한다. 친정엄마가에게 뭐 달라고 해본 적이 살면서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노트북 한대만 사달라 했다. 엄마에게 그 한 마디를 하는데 열흘 걸렸다. 그렇게 귀하게 얻은 노트북을 끌어안고 하루를 보냈지만 글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수치심이 함께 하고 있다. 엄마에겐 큰소리쳐 두고선 사실 부끄럽다. 인내심 없이 상대를 깔아 눕혀 잘난 체 하며 나무라고 나면 발가벗은 듯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이 정도밖에 안되는 거야? 이게 네 그릇 사이즈이지? 다른 내가 손가락질하며 쏟아 부운 말들을 내게 돌려준다. 전화로 엄마에게 내뱉은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손가락질하는 스스로를 떨쳐버리려고 산책을 나갔다. 꼬박 5일을 아프니 걷기도 자주 걸러 평소 다니던 만큼의 산책도 어지럽기만 하다. 산책이 버거우니 기분전환은 커녕 스스로가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여느떄와 다름없이 말 한마디 붙이지 않고 안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유튜브를 보는 남편은 다음 주, 다다음주 연속 출장이다. 당연히 남편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가 아니라 딸에게서 전해 들은 바다.
딸은 신이 났다.
" 엄마, 아빠 출장 가면 얘들 풀어서 파자마 파티 해도 된다고 약속했지?"
아기처럼 신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딸을 보며 기분은 바닥을 친다.
" 파자마 파티 하면 숙제는 못하는 거잖아. 시간관리 네가 하는 거랬지?"
기분이 째지는 딸에게 차갑게 말을 쏟아낸다. 넌 얼마나 좋을까? 마음 나눌 친구 하나 없이 지낸 독일에서의 5년이라는 시간이 아이에겐 얼마나 큰 상처인지 아직도 그 흔적은 남아있을 정도다.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든 딸에겐 치유로 힐링이다. 엄마는 해 줄 수 없는 것을 남은 해주고 있다. 나는 딸의 전부가 아니며 세상이 될 수 없다. 되어서도 안된다. 나처럼 되어선 안된다.
손가락질하던 마음은 이제 빈정대고 있다.
" 거 봐. 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그러니 남편 하고도 그 모양이지. 얘들한테 참 좋은 꼴 보이면서 산다. "
말도 글도 청산 유수였으면서, 오전 나절 친정엄마를 찌르는 말들로 통화를 가득 채워봤으면서 스스로에겐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용서를 해야 할까? 포용은 어찌해야 하는 건지 화해란 어떤 모습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안아줄 줄 모르는 이는 남도 안아줄 수 없다. 고슴도치도 가슴엔 가시가 없는데 내겐 가슴에 서슬 퍼런 가시가 한가득다. 포용해 준다며 안아주고픈 상대는 사랑하는 이들이며 그들 모두 나로 인해 피 흘리고 있다.
아들의 돌잔치 전였으니 아들의 나이가 7개월 남짓이였나보다. 아기가 보행기를 타고 있었으니 걷기도 전이였다. 남편이 독일 출장을 가고난 집을 혼자 지키기 힘들어 친정에 일주일을 머물렀지만, 내내 불안했다. 정 오면 도착한 다했으니, 2시면 오겠네. 그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아이는 불안한 내 마음은 다행히 전혀 모르고 보행기로 넓은 친정 마루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질리지도 않고 타고 다녔고, 친정엄마가 해둔 이유식을 잘 먹었다.
정오에 도착한 그가 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 빨리 와, 분당으로...."
2시면 도착해야 하는데 왜 안 올까?
" 왜 안 와!"
그가 전화를 툭 끊었다. 토요일이라 분당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다며 말하다 말고 툭 끊었다.
친정집에 들어온 남편의 얼굴이 어두웠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왜 그러지?
" 씨발이라고 했지? 나 그런 욕 들을 만한 짓 너한테 한 거 없다. 그런 소리 들으면서 살아야 해?"
욕을 내뱉은 적은 없다. 목구멍까지 분노와 불안가 차올랐지만 욕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남편의 귀엔 목구멍 아래 분노가 들렸나 보다.
무릎을 꿇고 그에게 빌었다. 아들을 걸고 맹세코 욕한 적 없다고 하니 그는 더 화를 낸다.
" 어디다가 얘를 걸어?"
빌다 빌다 포기했다. 이미 그가 천천히 당도하는 사이에 불안이 나를 먹어 치워 손 발을 꼼짝하기 힘들 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
나지막이 바닥을 보며 말헀다.
" 욕한 적 없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싶었지. 정말 욕은 안 했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들의 보행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감히 엄마가 되다니, 이 정도의 접시를 가진 주제에 말이다.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발이 무거웠다. 그를 설득시킬 수 없는 나와 나를 믿지 않는 남편, 내 불안을 옮아가는 아들 우리 셋은 최악의 조합 그 자체다 싶었다. 15년 전 그 순간에서 반 발자국이라도 나아갔는가? 아니면 한 치도 변함없이 그대로인가? 내일은, 그리고 그다음 날은 그에게 단 한 방울의 신뢰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부디 가슴속 칼날들이 무뎌져 그들을 헤치지 않는 날이 사는 중에 오길 간절히 빈다.
용서가 가능할까?
사진: Unsplash의Daniel Jer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