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이 월급날이다. 일주일 남았는데, 월급 통장 잔고는 바닥을 향해가고 독감 걸려 집에 있는 아들은 어제는 버거킹, 오늘은 써브웨이 배달 해달란다. 잉여인간 아니고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서 환자용 음식, 부드러운 죽이나 덮밥, 맵지 않은 된장국을 해도 아들은 아프니까 입맛 없다며 배달음식을 청한다.
얘들 아플 때나 내가 아플 때도 반응이 없던 남편이다. 연애 때부터 의아했지만, 여전히도 미스터리이고 섭섭함은 바래서 먼지가 되어버렸다. 친정엄마가 아프면 혼자 아프고 말고, 아버지는 평소와는 다른 와이프에게 변함없이 출근하기를 종용해서 감정이 없나 하고 궁금해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친정아버지와 똑같다.
요새 서로 말을 나누지 않으니 딸아이에게 전화를 해서 울산 공장으로 출장 간 김에, 부산 시댁에 주말 내 있다가 온단다. 토요일 느지막이 도착한 남편은 딸에게 안부인사를 하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들이 아픈지 그는 알지 못할 것이다.
아들의 감기를 금방 받아 왔다. 몸은 아프지만 화장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겠어서 안방 화장실을 정리한다. 벚꽃색 시슬리 립밤이 보인다. 족히 10만 원 하겠구나. 어머니가 주신 것인가 보다. 어머니 화장대엔 샤넬, 시슬리, 라프레리가 대부분이다. 어머니가 쓰시는 화장품들은 남편이 치과의사이고 어머니 가까이 사는 첫째 시누가 사다 드리거나, 남편이 의사이고 어머니 멀리 서울 살지만, 생활비를 많이 보내드리는 둘째 시누가 드린 돈으로 장만된 것들이다.
독일로 주재원 나가기 전부터 남편은 유럽과 터키가 담당이었다. 세 달에 한 번은 출장을 나갔는데, 그의 출장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이는 누나들이었다. 15년 전이면 면세점 화장품의 가격 메리트가 컸고, 돈 많은 세 누나들은 어차피도 살 화장품이니 출장 가는 김에 동생 덕에 절약해서 사는 되는 셈이었다.
이제 갓 나온 아들을 돌봄이 버거웠고, 둘째까지 나왔을 때는 원래도 독박육아였는데 남편이 출장까지 간다하면 불안함이 극에 달했었다. 얘들이나 내가 아파도 근무 중에 연락 없는 남편이었지만, 밤에 응급실이라도 태워갈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싶었다.
살펴주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의지했나 보다. 명색이 남편이라면, 가족이라면 의지하는게 당연하니까.
그런 불안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출장 전 주말이면 그는 누나들에게 전화하기 바빴다. 인터넷으로 화장품 쇼핑을 해야 하거나, 백화점 면세점에 출동해서 심부름 받은 물건들을 챙겨야 했다. 그 많은 화장품 중엔 내 것은 없었다. 두 아이 교구와 책을 사고 싶어서 돌반지도 팔아야 하는 빠듯한 월급봉투였고, 친정 부모님에게 손벌리 기는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출장 나갔다 오면서 뭐라도 하나 사들고 오면 눈을 흘겼다. 내 가방이든 그의 화장품이든 분수와 형편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벚꽃색 시슬리 립밤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그럼 왜 그들은 내게 화장품 하나를 권하지 않았을까? 지나간 시간들이 의아해진다. 네 돈 없으면 안 사는 것은 당연하다 싶다면, 가족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싶다. 본인들의 동생인 남편에겐 선물도 잘하고 얘들에겐 용돈도 잘 주는 그들은, 같은 여자인 나의 취향도 알 법 한데 말이다.
화장품이 가득한 트렁크 하나를 별도로 들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은 저 트렁크는 그냥 두면 된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곤 했다. 부러 그가 민망할까 봐
" 나는 아토피가 있어서 화장품 아무거나 못써."
" 난 얼굴에다 뭐 바르는 거 안 좋아해. 원래 피부도 좋고."
몇 번 그에게 말했다. 그를 사랑했고, 배려하고 싶었고, 아꼈다. 누나들이 어떻게 대하건 그들과 살 것이 아니라 남편과 사니까 말이다. 의사인 자형들을 보면서, 자형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외제 화장품을 바르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가 무기력함을 느낄까 두려웠다. 내게 세상 전부인 그가 작아지는 꼴은 가만 두고 볼 수 없다.
옷장 구석에 금색 BYC 런닝셔츠 상자가 오늘도 쌓여있다. 독일에서부터 2023년의 서울집에까지 함께 해오니 이젠 정이 들 지경이다. 독일 주재 시절, 남편은 1년에 한 두번씩 한국으로 출장을 갔다. 어머니는 독일에선 속옷이 마뜩지 않겠다며 탄탄하고 질 좋은 양말과 러닝 셔츠를 바리바리 챙겨 보내셨다. 부산의 어느 재래시장에 어머니가 오랫동안 단골이신 속옷가게가 있는 모양이다. 속옷 가게에 가면 남자용 보단 여자용이 더 많을 터인데, 며느리 생각, 손녀 생각은 안나시다보다.
거인의 나라 독일엔 한국 평균 신장보다도 10cm가 작은 내게 맞는 옷을 찾기 쉽지 않다. 신발은 물론이고 브래지어, 팬티까지 컸다. 이번에도 친정에 부탁하긴 싫어서, 체구가 작은 편인 이태리나 스페인 브랜드에서 청소년용을 입거나 신었다.
한국출장을 다녀오면 쌓여가는 남편의 양말과 속옷을 보며
" 어머니, 시장 가시면 제 것도 좀 사다 주세요. "
하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말자. 딸 아니고 며느리고, 가족 아니고 남이다. 내 아들과 같이 사는 남이고, 내 동생과 같이 사는 남이라 여긴다면 뭘 바랄까? 추접스럽게 말이다.
" 아들, 샌드위치 먹고 싶다고?"
열이 높아 퀭해진 아들이 방긋해진다. 저 시슬리 립밤이면 네가 좋아하는 써브웨이가 20개이구나. 아껴 무엇하나 싶어 샌드위치로 질러버린다.
아직은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엔 솔직하지 못한 편이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배가 고픈지 아픈 건지 무감각하다. 15년 동안 삶에서 훈련받은 것은 시댁을 돌보고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을 배려하는 것이었기에 스스로는 하얗게 지워진 상태다. 나는 지워져 있을 망정, 아들은 그러면 안 되겠지.
엄마가 해주는 한국식 백반은 싫어도 독일식 빵, 샌드위치, 햄은 좋아하는 아들이 한국에 어찌 적응할까 걱정돼서 식성을 바로 잡아야겠다 했다. 그런데, 뭐가 옳은 걸까? 식성엔, 취향엔 그리고 개성엔 옳고 그럼이 없다. 그저 그러할 뿐이지.
딸이 셋인 집에 넷째 딸 쯤으로 생각해 주길 바랐다. 남으로 대하면, 뀌여 맞추고 더 배려하면서 사랑을 기대했다. 안 주겠다는 것도 그들의 개성이지. 배려를 구걸할 일은 아니다.
아프면 병원 가면 된다. 코 앞이 병원이라 기어서라도 갈 수 있다. 내가 아프면 그리하면 되고, 얘들이 아프면 부축해 가면 된다. 돌아오지 않는 배려와 돌봄은 이제 그만하자. 원망도 섭섭함도 바람에서 시작되는 것이겠거니. 독감으로 내 입술도 좀 트실트실한 것 같다. 아껴 쓰라고 어찌나 작은 병에 들었는지 10만 원의 가격이 무색한 립밤이나 푹 퍼 듬뿍 발라야겠다. 아들 바르라고 준 것이니 같이 사는 이가 쓴다고 뭐라 하겠는가 싶다. 뭐라 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