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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n 04. 2023

카카오가 사라졌다.

0104***77777

이미 번호에서 돈 냄새가 난다. 이런 번호로 개통하려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이 번호로 접속해서 학원 업무를 보라 했다. 어떤 핸드폰으로 누가 확인하는지도 모르는 체 건네준 번호로 접속한 카카오로 업무를 보랜다고 고지곧대로 따르다니....

 사회생활 나선 지 가 15년 차니까 좀 봐주시길. 출근하라는 말만 해도 감사했다. 아토피로 주부습진이 심해서 주방 알바는 못한다. 운 좋게 수능 점수 잘 나와 유명대 나와서 단순 사무직은 차마 날 키운 친정엄마가 받아들일 수 없다. 강남 동네 학원 데스크직 이면, '강남'이라 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이라, 물 닿지 않는 일이라 찢어진 손과 내 주변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얼마나 다행이야. 감사할 노릇이니 그깐 학원 잡무 하는데 24시간 읽혀 들어가는 카카오를 쓰라고 한다 해도 불만은 없일 리 없다.

 동생의 창업을 도운 1년은 경력에 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을 건 6개월이었지만, 난 여왕의 오후에서 흔적도 없는 사람일 수 있다. 글 쓰는 척, 기록을 남기는 사람인 바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돌봄.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바는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이들 학원 보내는 이인 척한다. 밥 잘하는 척, 가져다주는 돈으로 커피 사먹고 수다 잘 떨고, 집 안에만 머물러도 말짱했던 척했으니 업무용 카카오 게정을 줄 생각을 했을 것이다. 


카카오 계정 대문엔 학원 로고가 붙어 있다. 재원생들 엄마에게  학원비 안내를 하고, 신규로 등원하도록 어린 엄마들을 꼬시는 것이 주 업무다. 카카오 계정을 낡은 학원 PC로 불러 들어와 업무를 본다. 

오래된 스크린이라 누릇누릇 해지곤 하는데, 원장이 스크린을 보더니 '아직 쓸 만하면 그냥 쓰세요.' 한마디 한게 다다. 

 학원에 출근하는 시간으로 계산하여 시급을 지급한다. 출근 외 시간에는 핸드폰으로 학원 전화가 연결되어있어 24시간 학원과 연결이 닿아있는 셈이다. 뽑아 먹을 수 있는 데까지 뽑아 먹는다. 스크린도, 나도. 학원에 자리하고 있는 5시간의 비용으로 종일 학원을 지키고 있는 아줌마를 쓸 수 있다. 영리한 그녀다. 학부모들, 강사들과의 대화가 모두 읽힐지도 모르는 카카오, 작동되지 않을 때까지 써야 하는 망가진 스크린은 그녀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원장은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 나올까 말까였는데, 카카오를 날린 현장에 원장이 있어서 운 좋은 날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주변 아파트 주거인들의 핸드폰 번호로 단체 스팸문자를 보내야 하는 날이었다. 원장이 가장 신경 쓰는 홍보다. 강사들 말로는 돈 주고 사 오는 번호가 아니라 아파트 주차장을 돌아다니면서 차량 앞에 붙은 핸드폰 번호를 찍어 엑셀로 정리한 바라고 한다. 무슨 번호냐고 물었다가 알려고 하지 말고 묻지도 말라고 쏘아대는 통에 신경 끊은 지 오래다. 그녀가 스팸문자 발송에 열을 올리는 만큼, 500개의 문자를 직접 발송하고, 스팸 항의에 대한 욕설을 듣는 나는 식어간다. 금요일 저녁엔 홍보 문자 발송을 부지런히 발송 하라고 원장이 말하는 찰나에 PC의 카카오가 로그아웃 되었다. 

접속이 안된다. 곱게 색조화장된 그녀의 눈이 한껏 커졌다. 드디어 한 달 동안 나의 목소리가 실렸던 SNS란 접시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원장의 핸드폰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 그녀가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 이 새끼 전화 안 받네.. 야! 0104***7777 번호 카카오 건들지 말라했지! 엄마, 일해야 한다고." 

*나 두들겨 패야 되겠네 라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엄마의 통화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원장의 중학생 아들이다. 친구들과 게임 중인지  무심한 아이 목소리의 배경음악으로는 키보드의 '타 타탁' 소리와 또래 남자애들의 웅성거림이 깔린다.

어쩐지... 출근해 보면 접속해보면, 업무카카오톡으로 마라탕, 뿌링클, 앱 택시 등의 정보가 와 있었다. 원장님은 학원 가까이 강남 사는데 카카오는 강 건너 신촌에 이 카카오톡의 주인이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업무를 써넣은 카카오는 어린 원장 아들의 핸드폰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구나. 


원장이 할 줄 아는 SNS는 본인 카카오의 대문 그림 바꾸기다. 연희동에서 게임 중인 아들이 로그아웃 시킨 카카오 계정을 살려내라고  욕 해본들 원상 복구의 방법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인증 제한이 걸려 답답했다. 내 일이 아니지만, 내 일이다. 내 학원은 아니지만 내 학원이다. 책임감을 가지라고, 행함으로써 삶의 이유를 찾으라고 길러졌다. 일 하지 못한 채 데스크에 앉아 있으려니 불안함이 차오른다. 내 핸드폰으로 업무 카카오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요리저리 애쓰다, 개인 카카오를 날려먹을 만큼 열심이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카카오가 안되다니.......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 카카오가 안 돼, 얘들아."

"응. 알아. 카카오에 엄마가 사라졌더라고."

" 아, 알아? 히히, 알았어. 이따 봐. 엄마 조금 일찍 퇴근할게."

" 응!" 

동요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 덕분에 하얘진 머릿속 화면이 컬러로 재생된다. 얘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카카오가 작동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24시간이 흘렀다. 기껏 내게 쌓여있던 카카오 톡은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원장의 업무지시였으며, 장을 보고 쇼핑한다고 추가되어 있는 상업성 채널들로부터 온 소식이었다. 

 SNS활동 없이 지내는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걸어서 장 보러 다니고, 통화로 뭐든 이야기하며 30여 년도 더 된 친구들과 대면으로 만나는 엄마가 가끔 내게 내비치는 불안함의 정체는 엄마는 모르는 쑥덕거림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블로그도 브런치도 없으며, 한국 책을 마음 놓고 접할 수 없던 시절, 독일에서의 나는 국제학교 한국엄마들의 SNS에 한껏 신경을 부풀려댔다. 충만함은커녕, 주재원 와이프이란 정체성을 가진 해외 주재 전업 주부들 사이에선 좌절감만 맞보기에 한국 엄마들 단톡방 알림은 꺼두게 되었다. 어찌나 불안하던지......

인생이 당황스러운 순간에 아들에게 욕지기를 날리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는 지금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글인가 보다. 세상을 향해서 닿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기에, 10개 남짓의 좋아요 하트가 내겐 안심을 선물해 준다. 100이 안 되는 조회 수가 그만하면 괜찮아라는 의미의 네 잎클로버다. 

 돈 버니라 아들을 키우지 않았다고 하면 간단히 이해될 일이다. 어마어마하게 벌고 있으니 그녀의 아들은 친정부모님이 맡아 키워도, 같은 서울 안에서 따로 살고 있어도 뭐라 할 현대인은 없을 테다. 나 빼고.

원장에게 배려와 정을 쌓을 기회가 사는 중에 한 번은 다시 오길 기도해 본다. 나? 글에 기대어 사는 삶은 꽤나 충만한 편이다. 장문의 글을 쓰다 보니 SNS의 글엔 진심란 식은 죽 먹기다. 글쓰기는 흘러가는 시간 속 의미를 정리해 주는 친절한 장치인지라,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해 준다. 그러니 SNS 상의 짧은 글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까지도 곱게 곱게 나온다. 얼마나 축복인지. 

 내게 돌봄이란 업보가 주어진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도 감사하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도 않게 가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그녀가 하필 매일 마주하는 대상임에도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감사할 이유가 일단 오늘은 글꼭지 제공이다. 카카오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준 덕에 오늘도 브런치 글 하나 획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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