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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l 05. 2023

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성공이란 필연과 인연의 비빔밥이다. 게다가 성공이란 이름은 붙이기 나름이라, 완벽한 실패도 완벽한 성공도 없기 마련이다. 무사히 태어난 것만 해도, 지금 이 순간 키보드를 누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난 성공인 셈이다.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것, 어찌 보면 어렵지만 참으로 쉬운 일이기도 하다. 


집집마다 사교육비가 아이당 100만 원이 넘는 것은 보통이다. 학원 실장으로 2달을 일해보니, 오늘을 살아가는 부모들의 지갑이 훤히 보인다. 겨우 2달 만에 뛰쳐나왔느냐고 나를 곁에 두고 본 누군가는 팩트를 꼭 집어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한 달이면 전체가 보이고,  가치판단이 서며, 싫증이 나는 것을 말이다. 

시간당 333, 3만 3천3백 원의 가격이기에 초등학생의 수학학원 수강료도 30만 원이 보통이며, 고등 수강생의 경우 최대 70만 원을 내기가 부지깃수다. 70만 원이면 남편의 대기업 월급에 매달려 사는 내겐 한 달어치의 장보기 비용에 가깝다. 그 돈을 내고 학원을 다녀 시험 점수가 좋으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한 교실, 같은 선생님께 수강을 해도 점수는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작은 아이의 수학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의 수학 실력 정도야 따라잡으면 그만이지 했는데, 딸아이의 마음이 문제였다. 친구 없는 독일 생활에 여자친구 한 명 만드는 게 11살 생애 최대의 목표였기에, 자존감도 자신감도 떨어진 아이에겐 선행으로 무장된 이 동네 아이들 앞에서 조그맣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변 아이들을 둘러보니 수학이 아니 산수가 급한데, 한편으론 주변 아이들 수준을 보아하니 학원 어디도 보내긴 힘들겠다 싶었다. 한 공부는 했다 싶은 사람이 엄마이고, 개인과외도 10년을 했으니 공부도 성적도 가닥이 잡히는 나인지라 천천히 함께 가보자고 아이를 붙잡고 앉았다. 엄마랑 하자고 아이를 2년을 붙들었다. 2년이 지나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니면 누구와도 괜찮겠다고.... 


중학교 올라와 첫 단원 평가 점수가 60점이었다. 반 아이들 평균은 80점. 반에 친한 아이들이 차고 남치는 오늘의 딸은 여기저기 잘할 법한 애들 점수를 묻고 다니더니 시험지를 가방에 쑤셔 박아두었다. 과외를 시작한 지 고작 3개월의 시점이었다. 3월까지도 나와 함께 했으니 사실 저 단원평가 점수의 코치는 나인 셈이다. 

"타격감 1도 없는데?"

딸과 마주 앉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속상하겠다고 말하며 위로의 태세를 갖추었다. 딸이 허세를 부린다. 상관없다고 한다. 

음.... 

하마터면 딸은 엄마 속이기에 성공할 뻔했다. 나도 그런 딸의 말을 믿으면 순간 속은 편하리라.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와 마주한 지가 고작 13년이다. 독일에서의 제한된 생활 반경 덕분에 우린 더 똘똘 뭉쳐 외롭게 지냈으니 아이 속이 내겐 보인다. 


" 시험 볼 때마다 5점씩만 올리면 되지. 이거 봐봐. 요기 계산 실수한 거랑 부분 점수 깎인 거만 메꾸면 벌써 4점이야."

중학교 시험지를 들여다본다고 해도, 계산 실수인지 문제해석이 안된 건지 금세 보인다. 대학 진학률이 100퍼센트에 가까운 한국이지만, 중학교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싶은 엄마가 몇이나 될까? 지끈지끈 그대의 30년 전 기억을 되돌려야 하니 차라리 학원에 맡기는 것이 속 편하다. 대부분의 마음이 그러하니 나의 두 달짜리 학원 데스크 자리도 확보가 되었을 것이며, 걸어서 10분 거리의 학원가는 호황을 누리는 것일 게다. 

조언을 할 땐, 말을 고르고 골라야 한다. 엄마가 잘했으니 너도 잘할 것이라던지, 계산 실수는 쓸데없이 왜 하냐든지 하는 감정적인 말들은 접어 내 속에 쳐 박아둬야만 한다. 살면서 딸 앞엔 수없이 많은 시험이 있을 테지. 넘어지면 한 발짝만 띠어보자고 해보자. 아니 몸만 일으켜보자고 해보자.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성장, 1cm의 변화가 키보드를 누르는 내 스크린 건너편의 거대한 나무를 만든 변화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무는 자신의 성취를 순간순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딸에게 건넨 5점의 스토리는 내게도 매일 스스로 되뇌는 바이기도 하다. 


"엄마! 나 몇 점이게?" 

콧소리가 첨가된 아이의 전화 목소리에 5점이 올랐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폴짝 뛰는 아이가 앞에 없어도 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시원하게 치킨 쏜다고 하니, 말을 막아서면서 어떻게 5점이 올랐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못 견뎌한다. 내일까지만 데스크 업무를 보는지라 마무리하기 급해 배달 주문으로 아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퇴근해 부랴부랴 저녁을 차려내고 나니, 좋아라 시험지를 들고 온다. 

 한국식 대수와 연산에 대해서 곤란해하더니 방정식도 마찬가지였다. 과외 진도는 나가질 못해, 아이의 수학 진도는 학교보다 뒤처지기에 이르렀던 것이 지난달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자리를 지켰다. 저녁을 먹고 나면 3시간은 꼬박 앉아 문제풀이에 전념했는데, 골치 아픈 문제를 풀고 나면 스트레스받는지 뭔가를 자꾸 먹으려 했다. 

살면서 50점, 60점이란 점수받아본 적이 없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국제학교에서도 반에서 제일 잘하는 아이가 되려고, 가장 이쁨 받는 아이가 되는 기쁨으로 살던 아이라 중학교 첫 평가에서 아이에게 주어진 숫자는 우리 둘에게 낯설었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우리에게 내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내일이 당연히 주어질 것이란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삶은 지옥이기도 또는 천국이기도 하다. 눈 뜨면 다가오는 아침이 뻔한 하루이며, 눈에 띄는 변화 없이 소소하고 흔한 날이라면 굳이 몸을 일으켜 잠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날들이 내겐 많았다. 

그저 이부자리에서 내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우린 성공이다. 자기 전 내가 계획한 시간에 눈을 뜬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하루는 이미 성공이다. 핸드폰을 쥐고 스크린을 열며, 글자 하나하나를 인지하는 당신의 지금 이 순간은 성취로 가득하다. 


30분 후면 나라에서 제공하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인턴쉽 사전 교육에 참가한다. 막상 인턴으로 뽑히고 나니 일하러 나가기가 싫었다. 이력서 글쓰기에 대한 성공은 짜릿하지만, 내 앞에 펼쳐질 시급 만 원짜리의 총무 일이 또 얼마나 나를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까 싶어 두렵다. 사회생활 한지가 어언 20년인데, 삽질도 보통 삽질이 아닌 수습 불가의 사고나 치면 어쩌나 싶어 면접 통과라는 이 기쁜 시점에서 그냥 멈추고만 싶다. 

그리하여, 성공이란 무엇인지 되뇌는 바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곧 50인데... 지인들의 창창한 50을 그려보며 사회생활이고 나발이고 그 무엇도 시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거듭 나를 찾아온다.

그러니 순간순간 성공하고 있구나, 나는 1mm씩 자라는 들풀이구나 하며 생각을 다잡아 본다. 나 같은 들풀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좀 더디 자라는 나무들을 만나러 간다. 나만 들풀이구나 싶으면 외롭지만, 단 하나의 인연만으로도 되새김은 쉬워진다. 거울처럼 마주 볼 누군가에게 성공을 이름 지어준다. 그를 위해서 아닌, 나를 위해서이다. 보시라. 지금도 글 하나 뚝딱 성취하지 않았는가!  


사진: Unsplash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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