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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l 15. 2023

당신에게 기대하는 건

91년생 대표가 대학생 신분으로 창업을 했단다. 대학 내 창업 지원센터를 시작으로 5년을 채워가고 있으며, 현재 직원은 프리랜서 디자이너까지 총 8명이다. 마흔 중반의 인턴, 호박씨의 합류로 9명이 되었네. 

출근 첫 주였다. 사수는 93년생이다. 사수의 단축기 스킬에 졸다가도 하도 사수가 예뻐 보여 집중을 못하는 때도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15년, 20년 전으로 가본다. 나도 사수처럼 푸르렀을까 싶다. 혹은 나 또한 70대의 눈엔 싱그러우려나 궁금하다. 

그녀의 첫 직장이고, 만 2년을 채워가는 사수인데 그녀보다 느린 나의 프로그램 사용 속도에 그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사수는 물론이고, 대표 또한 무엇을 해라 또는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는 멘트는 날리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한다. 

" 어떤 거 같아요?"

" 경력 단절 되기 전 회사들은 어땠었나요?" 

그들은 내게 묻는다.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세요라고 한다. 그들은 앞서 나를 판단하고 정의 내리기를 주저한다. 




마침 퇴사한 학원의 급여일은 오늘 7월 15일은 토요일이다. 3일 전에 원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일정을 지키지 않는 그녀의 태도를 알고 있기에 일찌감치 알렸다. 

 인턴이란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일로 하루가 채워질 요량이지만, 사수는 경리와 회계 일을 내게 떼내어 주기엔 광고 홍보팀의 팀장인 동시에 유일한 팀원이기에 쉴 새 없이 업무를 쳐내고 있다. 그 바람에 사수가 업무를 넘겨주는 시간은 6시간 근무 중 절반이 채 안된다. PC 앞에 앉아 지난주까지도 몸담은 공동체에 대해 떠올리고, 원장과 현 대표를 비교해 볼 시간이 넉넉했다. 

읽고 씹는다. 15일이 휴일인데 14일에 이체되는지 묻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15일이 되었다. 같은 메시지를 복사해서 붙이고 답을 기다렸지만 이번엔 메시지 확인 하지 않고 숫자 1은 종일 메시지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전화는 스팸으로 처리되어 착신이 되지 않는다. 관리 사무소를 통해 음성적으로 얻는 주변 아파트 입주민들의 개인 정보, 핸드폰 번호로 한 달에 50건씩 문자를 보내니 통신사에 원장의 핸드폰을 정지시켰다. 그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카톡이다. 3일 전부터 급여에 대한 나의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고, 급여일엔 카톡 메시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인수인계를 받으며 원장과 소통할 방법을 고민한다. 사수가 건네준 업무를 받으며 이 회사 또한 나의 노동력에 대한 가치를 내동댕이칠 예정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묻는 말이나 대답하라는 식의 소통을 쏟아내는 원장처럼 대표도 돌변하면 어쩌나 걱정도 해본다. 일주일을 한 사무실에 있어도 업무에 관해서 그와 나눈 대화는 없으니,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일주일을 바라보고 마음에 안 드는 면을 몰아서 이야기하고 3개월의 인턴쉽 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라 할런지도 모른다. 



파트타임이라 다른 이들보다 2시간 먼저 퇴근하는데, 하도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조용한 사무실이라 퇴근 인사를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그리하여 사수에게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니 다음날 사내 메신저에 이렇게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 퇴근하실 때는 모두에게 인사 나누고 가시면 좋겠어요. (하트)' 

나이 먹은 아줌마는 메시지에 울컥한다. 이들의 소통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주니 이보다 더 달달할 수 없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입니다. 없는 듯이 왔다 가지 마세요. 내겐 사수의 메시지가 이렇게 들렸다. 

' 아직 인사 못 드렸네요. 늦었지만 모두와 소개하는 자리 12시에 마련하겠습니다.'

3일 차에 출장 나갔던 연구원, 아파서 결근했던 기술자가 사무실에 함께 하게 되자, 나를 알리라고 자리를 내어주는 대표다. 두려움이 앞섰다. 별로로 보이면 어쩌나, 오해와 편견으로 나를 판단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이런 내 걱정을 원장은 단숨에 없애주었다. 어제 종일 연락을 받지 않은 덕분이었다. 15명의 밥줄을 쥐고 100여 명의 아이들과 그 부모를 대하고, 법인을 만들어 대표의 직함을 달고 있는 이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과는 딴판이다. 학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10여 통의 보이스톡, 10여 통의 전화, 2번의 카톡, 1번의 문자 이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근무하던 지점에 전화하니 그녀는 없고, 얼굴을 보지 못한 후임이 데스크에 있는 듯했다. 이 분은 괜찮으려나 걱정이 더럭 들었다. 원장이 아끼는 신규지점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찾았다! 원장. 전화를 받은 실장에게 원장을 바꿔달라고 하니 바빠서 받지 않겠단다. 역시, 원장은 한결같다. 





 11시 47분 45초에 통장으로 574,011원이 찍혔다. 드디어 받아냈다, 월급.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몽땅 냈으면 싶다가도 사수와 대표를 떠올렸다. 후식으로 커피를 사준 대표와 어여쁜 나의 사수에게 매일 성수동표 볶은 커피콩의 제대로 된 아이스 라테를 사줘야겠다. 월요일부터 그리해야겠다. 

 인턴이 커피를 산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우리에겐 이상한 일을 벌일 자유가 있다. 이상한 일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낯선 만큼 짜릿할 수 있다. 새로운 만큼 도전적일 것이다. 

" 급여 당연히 드려야죠." 

 원장이 급여를 이체하고 보낸 카톡 메시지의 첫 문장이다. 그녀는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움직인다. 우리가 원장에게 기대하는 바의 최소한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배려와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소통 또한 세상을 오래 살은 이들에게 기대되는 바일 텐데, 그녀는 알지 못한다. 

 거듭거듭 세상이 그녀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많았을 터인데, 그녀에겐 입력이 되지 않았기에 출력도 되지 않는다.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공식은 틀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 깨달아 가는 새로움이다. 나오길 잘했다. 탈출한 보람이 있다. 세후 574,011원만큼 어치의 성찰이다.  


사진: UnsplashNikolai Chernich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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