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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l 22. 2023

90년 대생들은 밥은 알아서 먹더라.

"점심 안 드세요?"

디자이너가 눈치 보며 말한다. 스타트업 출근 2주 차 금요일이다. 기술팀 소속 한 명이 모니터 건너 내게 눈빛을 던진다. 점심을 함께 하려면 그들의 구내식당행에  서둘러 합류해야 하는데 어색하다.  경력 이음에 점심식사가 문제일 것이라곤 생각 못했는데, 곤혹스럽다. 


입사 첫날 11시 출근하라는 대표의 문자를 받고 나가보니 사수가 될 93년생, 그러니까 나보다 14살 어린 사수만 있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려니, 사무실이 진공처럼 느껴졌다. 앱을 매개로 광고와 컨설팅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사내 메신저로 일에 소통하고 소리 내어 소통지 않는다. 고요 그 자체다.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리는 키보드 소리뿐이다. 

밥은 먹겠지? 90년대 생도 사람이잖아 싶었다. 웬걸, 12시가 되었는데 사수와 단 둘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대표가 미팅이 있어 점심을 함께 먹지는 못한다며, 8천 원짜리 스타트업 건물 구내식당 식권을 내게 전해달라 했단다. 그러면서 사수는 자기 밥값은 자기가 계산한다. 신세계다. 내 밥값은 내가 낸다는 게 이게 이들의 정서다. 

입사 이튿날, 12시 10분이 되었는데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사수에게 점심 어떻게 하냐고 하니 도시락을 먹는단다. 이런! 기술팀 서 넛이 나갈 때 같이 구내식당으로 움직였었어야 됐구나. 나의 눈치가 모자라 점심식사를 혼자 해야 하는 일까지 생긴다니, 서럽다. 이들과 난 잘 지낼 수 있을까? 



 

식구라 부른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동굴 속에 횃불을 피우고, 주변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사냥감을 나눠 먹기 시작한 때부터였을는 지도 모른다. 불이 귀하고, 그 불을 꺼트리지 않게 마련하고, 입을 즐겁게 할 무언가를 나눠 먹음으로써 인간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보수적인 경상도 시댁에서 나를 흡수, 동화시키려고 하는구나 싶었던 순간이 밥 먹는 순간이었다. 고기는 별로 안 좋아하고, 빵이나 과자 같은 과자도 즐기는 식성을 꼬집어 짚으며, 나를 특이하다고 일컫으니 배신감이 들었다. 식성이 다른 나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떠밀어 내는 기분이었다. 15년을 지나 20년을 채워가는 공동체에서 다른 음식을 즐기고 좋아하는 이의 개성 또한 존중되어 옳다 싶어, 눈에 힘을 주고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말했다. 

" 특이한 게 아니라 다른 거죠." 

어머니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라며 한 발짝 물러나셨지만, 그럼 며느리 너는 무엇을 좋아하냐고 캐묻진 않으셨다.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이들과 동일한 메뉴를 함께 먹어야 하는데 그 기준은 어머니, 또는 셋이나 되는 딸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뿐인 아들 바로 남편이다. 

식성을 맞추며 우린 식구가 되어갔나 보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늘 포기하고 양보하면서 며느리가 되어갔다. 

밥이 이리 중요하다. 아니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게 우릴 공동체로 만든다. 




 다음날부터는 아침 30분씩 일찍 일어나 점심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독일 국제 학교 시절, 친구 없이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딸이 콜드 런치, 즉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독일 아이들은 햄, 치즈 샌드위치처럼 마른 음식을 점심으로 싸가지만 친구 없는 한국아이에게 힘이 되는 건 밥이다 싶어 아침이면 밥을 짓고 반찬을 했다. 삼각김밥, 김밥, 유부초밥, 주먹밥, 카레 등등을 준비하는 건 내겐 일도 아니다. 남의 나라에서 숙련된 도시락 메이커인 셈이다. 

 도시락을 들고 라운지로 간다. 아침을 먹지 못한 기술팀 3명이 음식 파이터처럼 식판 가득 밥과 국, 고기반찬을 먹으러 부지런히 가는 순간, 나는 점심 맛있게 드세요를 외칠 용기도 없이 책 한 권과 도시락 통을 들고 움직인다. 이 날을 위해서 지난 재독 기간 동안 밥 하는 연습을 했나 보다. 찰기 없는 이탈리아 쌀로 짓는 딸에게 만들어줬던 점심보다 백배는 맛나다. 혼자 김밥을 먹으며 말 나눌 사람이 없어 감탄을 문장으로 머릿속에 네온사인처럼 띄워본다. ' 와, 왜 이렇게 잘 만들었어?' 

이렇게 또 다른 나를 만난다. 내게 콜드 런치는 눈물의 음식이었다. 딸을 위로하기 위해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며 오늘은 학교 끝나고 누군가와 플레이데이트를 하길 비는 마음을 담곤 했다. 그냥 맛있는 한 끼가 아니었다. 딸에게 이 콜드 런치를 함께 할 식구 같은 이가 단 한 명만 생겼으면 좋겠다는 속셈을 담은 음식이라 맛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친구 없던 아이는 친구들과 모여있으니 마라탕 시켜달라 하기 바쁘다. 나 또한 세상의 변화에 몸을 맡겨 본다. 생각보다 음식 실력이 좋구나 하며 셀프 칭찬을 하며 야무지게 혼자 도시락을 먹어본다. 일로만 소통하면서도 식구가 될는지도 모른다. 밥은 알아서 먹고, 메신저 글로만 소통해도 조직문화란 게 만들어지겠거니 하며 90년대생인 나의 동료들을 이해해보려 한다. 

 투자 유치 한다고 늘 사무실 밖으로 사람 만나러 다니기 바쁜 대표가 사무실에 있던 출근 나흘 째, 대표가 식사들 하러 가시죠 하며 힘 있게 외치던 말이 난 왜 이리 반가운지! 어제 더운 부엌에서 땀 흘리며 구운 크로켓을 끼운 야심작, 크로켓 샌드위치는 없는 척하고 대표와 직원들을 따라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만든 음식에 한참을 못 미치는 단체를 위한 음식이라 까다로운 마흔의 호박씨 입맛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저 사람은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구나부터로 시작해서, 저들은 퇴근하고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등까지 알아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식구가 되어가는 게다. 밥을 함께 먹으며 우린 스스로가 누구인지 이야기한다. 

어쩜 내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는지 모른다. 이들에겐 이질적인 내가 인턴인 주제에 질척거리며 밥 좀 같이 먹자고 해야 할 것 같다. 91년생인 대표가 93년생의 나의 사수에겐 호박씨의 엉김이 낯설지만 인상 깊을 수도 있다. 밥과 식구의 의미는 오늘 당장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울며 싸던 콜드런치도, 내게 좋아하지 않는 소고기를 연신 권하던 시어머니, 기억들이 주는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게 된다. 

그나저나 월요일은 또 뭘 싸가나 싶다. 이렇게 나이 든 인턴이길 즐겨보리라. 사무실 한편 조그만 냉장고가 있으니 시원한 에그 샌드위치가 제격이겠다. 저녁엔 계란을 삶아 부셔 샌드위치 속을 준비해야겠다. 나의 인턴쉽은 내가 응원해 준다. 직접 손으로 싸는 점심 도시락으로 힘을 실어본다. 용기내라, 아줌마! 


사진: UnsplashPatrycja Jad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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