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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Jul 22. 2023

오죽하면 학교에서

2달의 학원 데스크직을 그만두고 나니 서비스직의 쓴 맛을 제대로 보고 있었구나 싶다. 별로였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나를 거듭 찾아온다. 


"어제 카드로 남편이 원비 냈다는데요?"

데스크 실장인 나의 퇴근, 저녁 7시 이후에 원생 아빠가 학원에 들러 학원비를 결제하고 간 것이다. 그런 줄 모르고,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학원비에 관해 물었다. 공손하게 원비 문자 확인하셨냐고 입을 띠었다. 잠시 후, 어제 학원비를 결제하고 간 아이의 아빠가 학원으로 전화를 한다. 

" 내가 어제 결제했는데, 그걸 왜 모릅니까? 서로 알리질 않아요?" 

지점이 세 개나 되는 학원이지만, 학원 시스템은 시스템이랄 것이 없다. 영세해도 학원문만 열어두면 제발 우리 얘도 맡아달라며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오는 곳이 '반포'라는 동네다. 그러니, 원장으로서야 학원비 결제 시스템 따윈 없고, 원비 결제일을 진행하는 실장이 업무의 불편함을 겪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학원을 다니는 얘들은 있고, 결제일을 맞추지 않아도 부모들은 언젠가는 학원비는 내니 말이다. 


학원 실장에게 돈 냈는데 왜 돈 달라는 연락을 하냐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딸은 유빈이다. 유빈이는 말이 고프다. 예쁘장하게 생긴 유빈이에겐 말이 절로 걸고 싶었다 할 수도 있지만, 유빈이는 제게 말을 좀 걸어주세요 하는 태세를 취하곤 했다. 수학 배우러 오는 학원에 왔으니 강사하고만 잘 지내면 될 터인데, 유빈이는 공부 생각이 없다. 유빈이의 엄마도 저렇하겠거니 싶었다. 관심에 배고프고, 돈이나 성적 같이 눈에 보이는 성과엔 신통치 않은 그런 미모의 여성일 게다.  

등원 문자가 유빈이 엄마에게 가도록 설정이 되어있어서, 학원비 문자도 유빈 엄마에게 전달된다. 그러니, 학원비 결제일이 열흘이 지난 그날, 결제는 전달과 같이 유빈이 아빠가 들러하겠지만 유빈이 엄마에게 학원비에 관한 전화를 걸었었다. 예민한 목소리의 그녀가 전화기 너머로 느껴진다. 유빈이 아빠는 유빈이와 유빈이 엄마에게도 내게 소리를 질렀듯, 답답하다는 느낌 가득한 소통을 하며 살 것만 같다. 

 시간당 1만 원을 받는 파트타이머지만, 일을 시작하면 시간에 얼마를 받는가 와는 상관없이 잘하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모두에겐 기본 장착된 인류애라는 거창한 이름 따윈 필요 없다. 얼굴 마주하는 이에게 미소 지어지고 싶다. 특히 내가 맞닿는 대상이 약자라면 말이다. 한참이나 어려 세상 나온 지가  10년여 남짓이 된 이를 바라보면 뭔가 해주고 싶단 마음이다. 이 마음엔 인지상정이란 태그가 붙여줘야 할 것이다. 

 내게 소리를 지른 유빈이 아빠와 통화를 마치고 학원으로 이제 막 들어오는 유빈이, 이 둘 사이에서 시소를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유빈이에게 화풀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죄송하단 말을 내게서 두 번이나 듣고 나서야 씩씩 대던 유빈이 아빠는 전화를 끊었고 마침 유빈이는 등원했다. 

 너희 아빠 왜 이 지경이냐고 말하고 싶었다. 오늘은 처진 어깨를 하고 들어오는 유빈이에게 상냥하게 3시간이 넘는 수학 수업 잘 받으라면 파이팅 해주는 친절 따위는 베풀지 않고 싶다. 어떻게 하면 내가 느낀 비참함을 유빈이도 느끼게 해볼까 하는 꿍꿍이가 마음 저 편에서 떠오른다. 

  겨우 한 통의 전화로 호박씨라는 사람의 알맹이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어떡했을까? 교실에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이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을까? 

법조인이건 국회의원이건 의사건, 20억 인 아파트에 살건 30억 인 아파트에 살건 8살은 그저 8살이다. 1학년은 이제 막 학교에 발을 디딘 어린 생명들이라 존재 자체로 예쁘다. 

누가 뭐라건 한 개인의 역사로 보아, 내게 맡겨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 학원이라고 해서 그들을 학원비로 보거나, 학교라고 해서 아이들을 노후 연금으로 바라보면서 일을 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혹여 그렇게 일한다면, 스스로 살 맛 나지 않는 시간을 보낼 터이다. 그러니 우린 최선을 주어진 아이들, 소명 그리고 닥친 일들에 대해서 친절하게 살고 싶다.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공경과 경외가 사라진 순간 스스로 부서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학교는 부지런히 덮었다.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서 빠르게 의미 부여를 하고자 했다. 시스템의 무능함을 인정하기엔 학교는 너무나 얄팍하며, 학부모들은 인정머리가 없다. 가해자가 된 이들에겐 같은 무게의 고통이 지워질 것이다. 가해자의 가족 구성원,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대상에게 또 다른 가해가 주어질 것이다. 남의 자식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한다면 당신의 자식 눈에선 더한 것도 나올 수 있다. 


그날 학원 문으로 들어서는 유빈이에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 저런 부모와 사는 유빈이는 오죽할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위하는 바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이 시스템 앞에 무릎 꿇어 내 안의 인간다움이 박살 나는 꼴을 두고 볼 순 없었으니까! 23살의 그녀에게 닥친 일은 무엇이었기에 그녀는 스스로를 내려놓아야 했을지 궁금하다.


  우리의 이런 궁금증을 학교는 풀어줄 생각이 없나 보다. 부랴부랴 학교가 e 알리미를 통해 내놓은 가정 통신문 어디에도 그녀의 자살에 대한 답이나 의혹은 없다. 학교가, 학생이, 학부모가 그녀에게 가해한 바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할 뿐이라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문장만이 알리미 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반포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속도만큼이나 학원비도 높아져만 간다. 북새통을 이루는 학원가의 밀도만큼 학교는 쪼그라든다. 부디 학교가 권위를 갖길 빈다. 그리고 학교란 공동체를, 공교육을 지키고 있는 어벤저스인 선생님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학교의 이름에 학교 폭력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숨기고 감출 수록 학교는 더 은밀해지고, 범죄 집단 마냥 비밀스러워질 것이다. 또 다른 그녀, 제3의 희생자가 없으려면 졸지 말아 주길 빈다. 

 매미 소리로 가득 찬 이 도심을 해치고 그녀의 학교 앞에 메모지 한 장을 붙이러 가야겠다. 내 걸음으로 5분이면 가 닿을 곳이 그녀가 죽음을 맞았던 현장이며, 10분이면 내가 박살남을 느꼈던 수학학원인지라 오늘은 집에서 쓰는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진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사진: UnsplashVictor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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