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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17. 2023

예술 강사 보단 활어 인턴

"엄마, 요샌 신나 보이지 않아. 일 재미없어?"

딸은 정곡을 찌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내겐 솔직함을 넘어선 투명함으로 다가선다. 

 

도망갈 기회가 있었다. 강의 기회가 생길 판이었다. 인턴에 합격하고 여성발전센터에서 인턴 합격자들을 위한 워크숍이 열리던 날이었다.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온 연락. 기다리던 소식 어쩌면 한참을 바라마지 하던 정확히 그 일이었다. 말 그대로 꿈이 이루어진다 수준이었다. 

 그림을 보고 글을 쓰며 치유를 맛보는 작업으로 강사가 되고 싶었다. 그림 보면 힘이 나고, 글을 쓰면 살 맛이 나고 남들 앞에서 떠드는 일이야 가장 좋아라 하는 일이니 몸이 부서질 만큼 힘들어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수명이 100세가 넘는다는데, 남은 목숨줄의 절반을 바쳐야 할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들뜨고 신나는 강의 제안이었다. 

내게 강의를 제안한 Y가 운영하는 미술심리치료센터에게도 낯설고 새로운 기회이긴 마찬가지였다. Y가 미술심리치료 센터를 오픈한 지 반년이 되지 않은 초창기에 검색을 통해 그녀를 발견했다. 작년 4월, 그녀를 뜬금없이 방문한 것은 나였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지만 Y와 나는 마치 오랜 시간 알았던 것처럼 3시간의 대화를 통해 나이 들어서 만들기 그리 어렵다는 친구가 되었다. 

시간에 서너 명으로 구성된 미술 심리치료 센터에서의 수업을 1년을 끌어오며 Y 또한 공간과 역량에 한계를 느꼈던 차 Y의 센터가 위치한 지역 주민센터에서 지역사업에 선정이 된지라 타이밍이 절묘했다. 당장은 천만 원짜리 지역사업이고, 그녀의 손에 떨어지는 건 시간당 3만 원도 안 되는 강의료지만 좁은 그녀의 치료센터가 자리한 아파트 상가에서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게다가 동 주민센터에서 성공하면, 안양시로 확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녀는 선정이 되자 나를 떠올렸다. 보조강사로 파트너로 함께 나아가길 제안했다. 바로 그날이었다. 경력단절 여성으로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이름 붙여지는 날, 내겐 꿈의 일이 펼쳐졌다. 

 여성센터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고도, 인턴직으로 출근하는 데에는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양다리의 진수다. 워크숍 다음날부로 4호선을 타고, 1시간이 넘게 걸리는 Y의 센터를 찾았다. 신나게 Y와 예술 강의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도 사실 속은 시끄러웠다. 인턴 3개월 동안 내겐 안정적인 수입이 주어질 예정이다. 인턴으로 합격한 스타트업처럼 고정적인 수익은 보조강사든 전임강사든 당장은 예술로썬 나올 수 없음을 머릿속 계산기로 두드리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주민센터 강의는 내년 1월, 인턴직은 당장 다음 주이니 닥치는 대로 생각하고, 끌리는 데로 결정하리라 판단했다. 나답지 않다. 미리, 먼저, 남보다 앞서 준비하고 걱정하는 나였었다. 



"Y와 하는 건 주먹구구식 아닌가?"

" 고정적인 수입이 나오는 데에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남편과 아들은 스타트업 편에 섰다. 남편은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하고, 끈기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했다. 남편은 말 그대로 팩폭, 팩트 폭격을 한다. 아들도 남편과 다르지 않다. 보이는 데로, 상황 그 자체로 읊어내 린다. 

학원 실장직으로 학원 출근 한지 한 달 만에 퇴사 선언을 하고 2달을 버텼다. 여성센터에서 듣던 아동심리치료 자격증은 그만두었다. 친동생의 카페 창업을 도모한 지 6개월 만에, 카페 출근을 중단했다. 그도 이전에, 20년 전 인수인계도 없이 도망치듯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의 사전에 타인과의 일이란, 또는 협력을 통한 공동체로서의 경제 활동은 1년 이상을 지속해 본 적이 없다. 엄연함 사실이며, 누구보다 상황을 또렷이 알고 있는 이는 바로 스스로다. 


고래고래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다. 난, 엄마를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세상 큰 소리로 내지르고프다. 그리고 글, 글쓰기를 남편에게 비밀로 하고 있으니, 아이들은 알고 있지만 읽지 않으며 관심 없으니 살며 글을 포기한 적 없다고 하고 싶다. 

이 정도면 되는 거 아닌가? 엄마, 글쓰기. 누군가는 이 두 가지는 절대 할 수 없다며 두 손 두 발 들고 사라졌을 수 있는 일인데, 온 힘을 다해 이 두 가지에 구구절절이 매달려 하루치씩 살아가는 중이라고 당당하게 남편과 아들에게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 출근 열흘이 되자, 이들이 보이고 내가 보였다. 실수투성이에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나 자신과 매일 6시간씩 맞닥뜨리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좋아하는 것은 잘하고, 잘하는 것만 하면서 살고 싶다. 어렵고 힘들며, 쓴 약처럼 쉬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낯섦은 세상 눈 감는 날까지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얄팍하게 살겠다고 선언해야지 마음먹었다.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엑셀 단축키는 배워서 뭐 한단 말인가? 일주일 간 직원 9명의 스타트업이 내가 맞닥뜨린 업무는 야식 영수증 처리와 휴가 관리였다. 고작 이런 일과 선생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예술 강사 자리를 맞바꿀 수는 없다는 논리가 선연하게 떠오른다. 그래! 그만 두자. 




 

 인턴 기간이 한 달을 채우면 서울시 여성발전센터에 리포트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센터가 제공한 문서엔 한 달간 내게 주어진 업무에 대해 자세히 적는 란이 있고, 그 아래엔 나의 사수가 나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다. 

경영관리든 광고업무든  사수는 말이 없다. 노션에 기록하고, 문서로 남기며, 사내 메신저로만 소통한다. 내가 퇴근한 4시 이후의 그녀가 남겨두는 업무 배정은 으레 아침 시간 출근하여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세팅되어 있다. 인수인계하고 업무배정을 하는 96년생의 젊고 어린 사수와 나눈 음성으로의 대화는 한 달이란 시간 동안 10분 남짓일 게다. 

" 호박씨님이 쓰신 내용 참고해서 저도 작성할 께요." 

맡게 된 업무에 대한 디테일을 작성하고, 그녀가 채워 넣을 란을 알려주며 문서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나에 대한 평에 주책맞게 또 눈물이 난다. 갱년기 맞다. 시도 때도 없이 눈에서 물이 줄줄 나온다. 


' 낯선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업무를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나이 많은 인턴, 그녀보다 15살이 더 먹은 노션의 ㄴ도 모르는 나에 대해 쓴 사수의 글씨는 젊고 삐뚤다. 엑셀의 모든 기능에선 꼬마마녀의 빗자루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이 구사해 내는 글씨는 아오리 사과처럼 푸릇한다. 

사수에게 비치는 나는 이렇하다. 낯선, 씩씩한, 나.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더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될까? 확률은 떨어지지만, 남편이 다시 주재 발령을 받는 다면 주재원이라는 타이틀과 대기업이라는 배후를 업고 다시 유럽으로 향하게 될 게다. 그도 아니라면, 사는 동안 천연색으로 선명하게 낯선 곳에 맨 몸으로 생전 처음 해보는 일에 던져질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즉, 지금 오늘 이 자리는 내게 주어진 최후의 회춘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기득권이란 꼬리표 붙는 게 죽기보다 싫다. 가진 자로 보이는 것도 싫고, 늙는 것 더 싫다. 목에 깁스한 듯 뻣뻣하며 제자식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로는 살지 않을 테다. 예술 강의도 강남 엄마도 나를 무르고 얄팍하게 만들게다. 

그러니, 오늘도 사수의 문장을 안고 2호선 지옥철에 오른다. 대기업도 아닌,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계산되는 서울시 후원의 인턴직에 임한다. 이게 나다. 활어처럼 진짜 살은 나. 늙지 않겠다, 가진 자가 되지 않겠다. 나아가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부터 그려낼 예정이다. 

 그 모습은, 멋진 엄마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에게 어른으로 기억되는 존재, 이것이 내가 나아가고 싶은 모습이지 않을까? 서른, 나를 엄마라 칭해준 이들에게 진짜 엄마이고 싶어 15년을 끈덕지게 한결같이 살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 UnsplashKyaw T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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