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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26. 2023

퇴근이 설레시나요?

"그전 남자 친구가 준 거지?"

옛 남자친구 이야기를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남편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사는 동네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꽃꽂이 수업을 듣는 온라인 친구 J는 워킹맘이다. 근무로 퇴근도 늦은 데다가 꽃꽂이 수업도 듣지 못한 터라 수업 재료인 꽃들만 픽업하려고 들를 예정이라며 연락이 왔다.

반갑다. 퇴근하고 만날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만인가? 요즘 나의 생활 패턴을 살펴보면 밥 하러 일어나는 출근 전과 밥하러 집에 오는 퇴근 후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떻게든 남은 힘을 끌어모아 저녁을 차리고 나면 소파와 한  몸이 된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누운 연락 하나 없을 핸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웬 떡인가? 그녀를 만나러 나서는 길은 가을이 한가득이다. 처서 지난 게 분명하다. 게다가 그녀가 안겨준 해바라기와 소국으로 남편의 심기도 긁어볼 수 있으니 더 좋다.

 

남편의 입에서 지나간 인연에 대한 언급이 나오니 바쁜 척 비싼 척해야 하나 싶다. 퇴근 후의 일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남편처럼 그 남자친구도 대기업 해외영업직 근무였다. 남편과 첫 번째 만남을 가진 후 전 남자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출장 다녀오는 길에 향수를 한 병 사 왔고 양재동에 들를 일도 있으니 퇴근 후 잠시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가 퇴근길 양재동을 들를  일이 있을 턱이 없다. 나를 주려고 그 많은 면세점 향수를 고르고 골랐을 그가 느껴졌다. 남편과 처음 만난 던 양재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나 설렁탕을 먹고 향수를 건네받은 후 집으로 향했다. 그에게 설렁탕처럼 밍밍한 안부를 묻었고 향수에 대한 감사인사를 깎듯이 했다. 그가 준 향수를 뿌리고 그 주말에 남편과 두 번째 만났고, 그에겐 다신 연락하지 않았다.

당시의 썸 타는 남자, 남편을 만나기에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퇴근 시간 7시가 가까워오면 설레기 시작한다. 이 이상한 회사에서 일하는 나, 이상하다가도 그를 만나면 괜찮은 나로 변신하니까. 출근을 하면서도 퇴근 후 남편과 뭘 먹고, 어딜 가고,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싶어 걸치고 나갈 옷, 신발, 손톱컬러를 계산했다. 내겐 퇴근이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었다. 일이 끝나면 하루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로 다시 시작하는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인 날이 있었다.


아들이 홀로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때론 딸과 아들이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하는 길은 즐거워야 할 것만 같은데, 그렇지 않은 날이 대부분 인다. 퇴근하려고 컴퓨터를 끄고 의자에서 일어나기조차 귀찮을 만큼 뒷목이 뻐근하고 허리가 시린 날이 있다. 3개월짜리 인턴이라 내게 회사의 사활이 걸린 것도 아닌데, 퇴근 준비로 업무일정을 보다가 도로 앉아야 싶은 날도 있다. 건물에서 성수역까지 내 걸음으로 10분인데, 느릿느릿 질질 걸어가다 보면 15분이 걸리기도 한다.

4시에 타는 2 호선은 한산하다. 파트타임으로 이른 퇴근인 여자 사람 한 명 앉을자리쯤은 늘 있는 편이다. 눈을 감아본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딜까? 고작 2달 전 6월엔 생각해 본 적 없는 시간, 2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내가 낯설어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쩌다 난 여기 있는 걸까? 아, 난 엄마지. 집에 가면, 아침 설거지와 저녁밥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집에 가면, 아이들의 하루를 물어야 한다. 딸의 기분을 살펴야 하고, 아들의 핸드폰 사용기록 앱을 열어 봐야 한다. 학교 급식이 오늘도 맛있었는지 또는 맛이 없었는지 묻고, 저녁밥을 맛나게 먹을 수 있고 지친 그들을 달랠 정도에만 머물 수 있는 양의 간식을 제공해야 한다.

 나의 안부를 누군가 물어줬으면 좋겠다. 또는 하루동안, 재취업 기간 동안 느낀 바와 동일한 경험한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으며 맞장구 쳐주고 싶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살을 섞지 않는 완벽한 남과 나누고 싶은 위안이 내겐 많다. 아마도 나는 외로운가 보다. 밥을 하고, 가정을 살피며, 가족 구성원들의 기분을 살펴주는 쓰임 외의 목적으로 내가 필요했으면 좋겠다.




군포에서 1시간을 이동해 온 그녀는 저녁도 먹지 않았다.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저녁 시간 커피는 못 마시는 나이가 되어버려, 술은 전혀 못하는 체력이 되어버렸기에 따끈한 차 한잔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서둘러 집에 가야 한단다. 그녀의 아들과 남편의 끼니는 해결이 되었지만, 왠지 얼른 집으로 향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그녀의 얼굴에 선명히 떠오른다. 지하철 역까지 그녀를 바래다주며,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얼굴로 성수역으로 향하겠지 싶다.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 않은, 함께이지만 또 하나이 고는 싶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마음으로 나의 경력이음이란 시간은 흘러간다. 이렇게 내 마지막 젊음도 사그라들 것이다. 두 남자와 양다리 타며 퇴근시간을 기다리던 어린 나도 흘러간 일이다. 철들지 않은 마음은 늘 그날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어서, 오늘도 퇴근이 설레길 바란다. 하루하루가 짜릿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울고 웃고 마음을 나누는 타인과 늘 시간을 공유하며 살고만 싶다. 무리한 바람은 아닐까 자꾸 되물어본다. 글로 써두고 한참 화면을 들여다본다.

호박씨, 여자, 40대 후반, 애가 둘, 남편 한 명, 장녀, 인턴. 바라본다. 설레는 퇴근을 기도해본다. 가능할까?



사진: UnsplashRob Po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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