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Aug 26. 2023

부모로 살려면 쫄지 마라.

학원 데스크직을 그만두는 데 친정엄마도, 남편도 대번 반대했다. 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데스크에 앉은 내가 어떤 기분인지도 묻지 않은 채 엄마는 한 번 시작했으면, 지속적으로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런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히 들으며 살아왔다. 부당하면 눈감고, 힘들면 참는다. 내가 살아온 방법이다. 

 참고 참다 보면 일명 화병이 나곤 한다. 말이 화병이지 지금으로 치면 우울증이다. 감정적으로 상처 입었는데, 기분을 읊을 대상이 없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아버려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경험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결국 우울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남편의 반대는 재밌었다. 퇴근하고 저녁 먹고 나서 골프 가야 하는 그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고 길길이 소리를 질러댔었다. 

" 6시 반까지 돌아와!"

6개월간의 침묵을 깬 그의 외침은 학원을 그만두라는 길길이 소리지름과 같았는데,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했다. 심지어는 원장을 들이받으려고 하는 순간마다, 원장의 편에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오너의 입장에선 이럴 수 있다거나 노동법상 문제 될 만한 돌발 행동 하지 말라며 한껏 몸을 사리라고 조언해 주었다.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원장은 견디거나 버티면 안 되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은 선명했다. 

"엄마, 데스크직 진짜 뭐 같아."

"남의 돈 버는 일이 다 그런 거지."

"남편은 왜 저런 걸까?"

"남자들 다 똑같아." 

70을 지나가는 친정엄마에게서 나오는 답들은 일관되는데, 평생에 걸쳐 내게 줬던 메시지 그 자체다. 말도 안 되는 약국 임대 계약을 맺고 짬 날 때마다 악덕한 건물주를 욕하고, 속수무책으로 코로나의 시간 내내 월세를 감당하던 나의 부모, 그들은 한마디로 졸아있다. 싸울 줄도, 권리를 요구할 줄도 모른다.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이들에게 '당신들 때문에 나의 감정이 상처 입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뱉어본 법이 없는 삶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라도, 나부터 졸지 말아야겠다. 괜찮지 않다고 부르짖어야겠다. 




"실장님 때문에 학원 운영이 엉망입니다."

원장이 보내온 문자에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의 시험지 채점을 해주고, 풀어둔 연필을 지우개로 지우고, 그녀의 간식 심부름을 하는 그런 일을 하는 자리가 실장이다. 시간당 1만 원의 페이를 받는데 퇴근 시간 후에도 개인 핸드폰으로 착신 전환이 되어있어 신규 학생 영업을 위해 엄마들의 상담을 해야 하는 그런 자리다. 그런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대접했던 그녀가 퇴사 20여 일 후의 월급일에 연락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 

부지런히 그녀의 핸드폰으로 연락했지만, 받지 않길래 그녀가 그 시간에 있을 법한 학원 지점으로 전화를 했더니, 거기 있더라. 

" 학원까지 전화를 하다니, 심하군요."

하더니, 그녀가 하는 말이 학원 사정에 대한 토로였다. 지점 실장 한 명 그만뒀다고 해서 힘들어진 학원이었다면, 그만두지 않게 잘해주지 그랬어. 물론 그녀가 퇴사 전 보낸 문자에 보면 그녀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내게 잘해줬다고 했다. 20년을 경력이 단절되고 집 밖으로 나선 나의 데스크직 기간 두 달 동안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었어도 일일이 말하진 않았다는 점 정도이지 않을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용기를 쥐어짜보았다.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남 듣기 싫은 말, 그 짜릿함을 맛보야겠다 싶었다. 손을 떨며 그녀의 문자에 답을 했다. 

"학원 운영이 엉망이라면 그건 일개 실장인 저 때문은 아니겠지요. 원장님의 학원이시지 제 학원이 아니잖습까?"

알아들었나 보다. 돌려 말했지만, 대 흥분한 그녀는 문자를 받은 시간으로부터 3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열받음을 토해냈다. 문자와 카톡을 보내더니 급기야는 전화하라는 카톡까지 남겼다. ( 학원 광고 문자를 불법적으로 발송하는 바람에 그녀의 모든 핸드폰은 통화금지 상태다.) 보이스톡 하면 될 텐데, 나보다 고작 2살 위의 원장은 보이스톡 기능을 알지 못함이 분명하다. 

신난다. 게다가 스스로가 얼마나 기특한지. 이런 인간 종류를 금세 알아보고 퇴사 결정을 빠르게 내린 호박씨 칭찬하고 싶고,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다. 게다가 그만둘 수 있는 이 상황도 얼마나 감사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대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글을 쓰기로 나섰다. 말 길을 잘 알아듣는 아이들이 생각하고, 괜찮은 부모가 되고파서 아이들의 행동거지와 말을 일일이 단속하고 충고했다. 과연,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남에게도 내밀 자신이 있는가? 전혀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나다. 우린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하라고 말이다. 그 결과 내겐 가혹하고 남에겐 친절하며, 나를 파괴하고 남을 살린다. 비겁하게 졸아서 착한 사람이 되려고만 한다. 

착한 사람은 착한 부모는 아니다. 더군다나, 착한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부모가 착하다니... 내 앞에서 본인 아들에게 쌍욕을 날리던 원장처럼 경우 없는 부모가 안되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단절된 경력을 잇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던 것은, 글 쓰기를 죽기 살기로 매달려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일 테다. 40년 동안 옳다고 믿은 나를 옭아매는 잣대 앞에서 졸지 말기, 원하는 바이다. 졸지 않게 된다면 그 후엔 어찌할지는 글이 내게 알려줄 예정이다. 미리 걱정하지 않으리라, 전처럼. 


출근한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친정엄마는 연락이 없다. 연락을 받지도 않으시는데 퇴근하다 힘든 날 가끔 엄마에게 전화해서 전처럼, 어린 내가 그러했든 징징거려 볼까 하다 만다. 졸지 않으려면 해야 할 행동강령, 1번은 엄마와 상담하지 않기다.  이렇게 세상 앞에서 허리를 피고 나아가야겠다.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여적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러할 바람 한 가지를 위해서는 고아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짜 부모가 되는 것, 내 한 가지 바람이다. 

워낙 선 넘는 오너를 맞닥뜨리다 보니, 아이들에게 전해줄 교훈이 넘쳐난다. 어디 선 든 초심자의 운은 없다는 사실! 20년 만에 새로운 영역에 나서면 맞다고 뜨리는 인연은 별로일 확률이 크다. 조심하자고 말해줘야겠다. 

또 민폐스러운 인간을 스치고 나면 그다음 인연은 사실 누가 와도 감사하고 반갑다. 지금의 회사를 바라보는 나처럼 말이다. 

" 호박씨님, 글 쓰신다고 하셨잖아요. 그 능력 사용할 수 있게, 우리 함께 커가봅시다. 해외 경험 살리셔서 해외영업 팀장님 되실 거예요. " 

빈 소리라도 달콤한 말이다. 어린 현 대표가 함께 성장하자는 말보단 글 쓰는 사람으로 이름 지어준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고맙다. 그는 글의 힘을 아는 것 같다. 이렇게 고마움으로 충만한 순간도 온다는 경험 또한 아이들에게 전해줘야지. 오늘은 이제 그만 소리를 듣더라도 그들을 앉혀두고 중얼중얼 해보리. 



사진: Unsplashmali desha


매거진의 이전글 퇴근이 설레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