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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05. 2023

일상을 지키는 사람들

"엄마, 조심해서 들어와."

종합운동장역쯤이었다. 기사를 어디서 봤냐고 물으니, 검색은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보았다고 했다. 오후 3시 45분, 볕이 무르익다 못해 숨 쉬는 공기를 달궈놓은 더위의 한 중간이 나의 퇴근 시간이다. 아침밥 챙겨 주고, 점심은 대충 먹었을 얘들 생각에 저녁 뭐해줘야 하나 하는 마음에 바빠지는 발걸음은 지하철을 타면서 쉼을 가진다. 가방엔 늘 책 한 권이 들어있어서, 혼자 먹는 점심 도시락에 마치 반찬처럼 책이 함께 한다. 근무시간 6시간 동안 내내 스크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급한 연락이 아니고선 핸드폰 들여다 보기엔 눈이 피곤하다. 퇴근시간 눈도 쉴 겸, 얼른 집으로 아이들에게 돌아가자 하는 나의 마음에도 여유를 선물할 겸 해서 독서를 한다. 

 인턴쉽으로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 사무실은 2호선 성수역이며, 출근은 강남역 또는 교대역으로 하고 있기에 신문상 무차별 칼부림이 언급되는 지역 대부분을 통과한다. 게다가 서현역은 가족들의 치과가 위치하는 곳이다. 백화점은 치아교정을 하고 있는 딸아이와 지하철에서 내려 치과로 가려면 통과해야만 하는 이동경로다.

 아이들의 전화를 받고 나니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퇴근시간 한산한 2호선은 고요함뿐이다. 방학인 꼬마들이나 놀어온 외국인들을 제외하곤 더위가 최고조인 이 시간에 움직이는 이들은 사실 행색이 초라한 편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대부분 피로에 지친 데다 더위까지 겹쳐 그들의 기운에서 노역 같은 삶을 느낀다. 

옆에 앉은 이의 화면을 흘깃 본다. 카카오톡을 열었다가 닫았다 한다. 뭐 그리 달리 이 시간에 이야기할 이가 있겠는가? 화면에 고정되어 떠있는 성경 문구가 보인다. 이들에겐 아직도 종교가 힘이 되는 것일까? 나이가 어린 이들은 하릴없이 웹툰을 보거나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고 있다. 그래, 핸드폰 속 짧은 영상이 주는 얄팍한 즐거움이라도 그들에게 위안이 된다면 다행 인지 모른다. 

 그런데 왼쪽에 앉은 이는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가방을 메고 엉덩이를 좌석에 걸터앉아 있다. 이 더운 날 그는 마스크를 끼고 있고, 낡은 면 마스크 끝엔 오바로크로 마무리된 실이 늘어져 있다. 투명하고 건조해 보이는 그의 피부는 더위로 트러블이 났는지 여기저기 불긋하다. 

얘들이 조심히 들어오라 했다. 저 사람은 잠실에서 승차해 내 옆자리에 앉아있다. 잠실은 무차별 칼부림 예고에 경찰과 군대가 대기하고 있다 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책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의 옆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삼성역이다. 3 정거장만 버티면 돼. 오늘따라 낮시간 2호선은 왜 이리 한산한 걸까. 벌떡 일어나 객차를 옮겨 걸어 나갔다. 객차 2개를 이동해가 출입문 앞에 서니 거울에 내가 비친다. 그리고 내 뒤에 누가 서있는지 거울을 통해 확인해 본다. 이게 뭐 하는 짓란 말인가? 




 사내 메신저로 너무 무섭다는 코멘트를 주고받는다. 치과를 소개해준 친정 동생도 서현역에서의 급습해 무섭다며 카톡을 보내왔다. 일상이 무서울 수 있는 것을 일찌감치 느끼고 살았던 나라, 어찌 보면 무덤덤하기도 하다. 

매일 장 보러 가는 슈퍼에서, 일상으로 내게 주어진 공간에서 차별과 오해로 불쾌함을 맛보고 나면 몸을 사리거나 반대로 용감해지기도 한다. 독일이 나를 구박하거나 말거나 혼자 다시 장 보러 나갈 것이다 칼을 갈고 나면 사실 마음 반대쪽에선 무너져 내림을 느끼곤 한다. 힘든데, 혼자는 싫은데 남편은 겪은 일이 아니라고 동의하지 못하거나 시간이 없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겪을 일을 이야기하면, 독일을 데려온 사람은 남편이니 독일에 대한 불만은 그에 대한 불만이라 여겨져 듣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삭히고 쌓아두다 보니 글을 쓰고만 싶어졌다. 겪은 고통으로부터 의미부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동양인에다 여자이기까지 하다. 걔다가 난 성인 여성 치고는 꽤 작기까지 하다. 나이보다 어려 보여, 독일에선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신장이니 약체 중 최약체였다. 그럼에도 혼자였다. 불쾌한 일들은 홀로 있을 때나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때 발생하곤 했고, 아이들 앞에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더 당황스럽곤 했다. 

그런 일상은 5년이 펼쳐졌다. 물론 3년 차가 넘어가면서는 일상 속에서의 괴로움은 정도를 낮춰갔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개척하고 맞닥뜨려야 할 새로운 상황들이 생겨났고, 다시 또 혼자 나서서 맞닥뜨려야만 했다. 


 독일에서 돌아와 내가 겪은 공황장애란 결국 고통의 시간들에 대한 외상후증후군 같은 것들이었으리라. 일상을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가난하지도 자본가이지도 않은 나는 중산층이며, 중산층으로 살고 싶어 하는 남편과 산다. 그러니 무너져 내리는 중산층을 목도하며, 불안하지 않게 단단해지려면 내겐 글이 필요하다. 

 가족에게 기대 보지만, 내게 필요한 건 피를 나누지 않은 철저한 타인이다. 글을 읽고 공감하며 고개 끄덕여주는 남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린 공동체다. 일상을 지켜나가는 서로에게 등을 두드려주는 소시민이다. 

그러니, 더 이상은 소시민의 삶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서도 아프지 않고 살아 돌아왔는데 한국에서 와서 뭔들 못하겠냐고 말하곤 했었다. 사실이었다. 내게 주어진 말이 통하지 않으며, 법을 알지 못하며, 외국인인 조그마한 여자사람으로 살아간 시간들도 이겨낸 나인데, 손바닥처럼 훤한 서울에서 뭔들 못하겠는가 큰소리를 쳤다. 상처를 치유하며, 고통의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꽤나 단단해진 나는 이제 스스로를 글쓰기를 통해 오롯이 바라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리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을 법한 일상을 할리우드 영화 속 톰 크루즈 마냥 액션 영화처럼 살아간다. 스턴트 없이 맨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벼랑에서 떨어지는 건 배우만이 아니다.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는 워킹맘, 돌아아와 아이들이 핸드폰과 SNS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지는 않는지 살피는 엄격한 엄마, 지구를 위해서 배달음식을 절제하고 너덜너덜 해진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저녁 준비를 하러 향하는 주부. 

우린 일상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이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표창을 하는 바이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야말로 천국이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Antoine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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