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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Sep 19. 2023

당신에게 초심이란

취업이 되면 새로운 시각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이 바뀌면 새로운 정의가 내려진다.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그리고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송두리째 바뀌는 상황으로 기꺼이 빠져든다.

주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사는 게 옳은 일이라 여겼다. 부모, 시누, 남편 연배가 든 이들이 내게 바라는 바를 해줘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 생각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기준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맞추다 스스로가 누더기가 되기도 한다.



회시가 위치한 4층엔 직원 10명 남짓의 스타트업들이 10개 사가 있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라운지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 복도 한편 조악한 가짜 선인장이 놓인 선반의 먼지를 치우는 작업을 하시는 청소부를 감정 없이 바라보긴 쉽지 않다. 내가 15년 넘게 집에서 해왔던 돌봄이다. 4시에 퇴근하면 여전히 하는 일이기도  하다.

60대일까, 아니면 더 나이가 들었을까? 청소부와 나와의 나이차이는 사수와 나만큼인 20살 정도 날까? 누군가와 인사하거나, 의사소통할 기운을 풍기지 않은 채 청소를 하고 있는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가 나를 쳐다봐주길, 인사할 기회를 주길 기다려본다. 나이 든 여성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누구도 원치 않는 건물 돌봄, 건물 청소의 일이다. 그러니 그녀의 모습은 누군가의 미래일 수 있다.

 어쩌면 그녀의 돌봄은 로봇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눈 마주칠 생각 없이 라운지를 쓸고 닦는 그녀를 보며, 얼마 전 장만한 로봇 청소기를 떠올렸다. 하도 기특하고 대견해서 로봇 청소기를 사용하며 경쾌함을 느꼈다. 인간이라면 그 누 국도 원하지 않는 단순 노동을 감정 없이 해내니 죄책감 갖지 않아도 된다. 청소 아주머니의 존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미안함은 로봇 청소기를 사용함으로써 사라진다. 얼마든지 기계는 부려먹어도 된다. 그러니, 로봇 청소기는 기특할 수밖에.

기계는 느끼지 않을 자괴감도 덜어준다. 청소 아주머니가 담당하는 4층의 그녀 자식 뻘 되는 이들에게 인사도 바라지 않으며,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오로지 일만 하는 그녀가 매일 무너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한다. 남의 일이 아니니까... 기계였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 취업과 함께 내게 자꾸자꾸 닥친다.




 

 이리저리 잴 상황이 아니라 여긴 건 스스로 내린 판단이었다. 어떤 과정을 대해야 하건 어떤 사람 시댁이나 친정 식구보다야 수월하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공황장애와 신경쇠약으로 약해진 심력과 체력으로 몸으로 장시간 해야 하는 바를 할 수 없었기에, 사무직이라면 그 무엇이든 땡큐였다. 한 번의 면접으로 나를 채용해주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나에게 주어진 일은 모든지 다하는 것, 경영관리다.

집에서도 하던 일이지 싶었다. 남편의 월급을 받아 쪼개 쓰고, 아껴본다. 물건을 사들이고,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에 생길 수 있는 거리들을 처리한다. 예를 들면 그들의 끼니, 그들의 옷, 심지어 그들의 마음까지도 말이다.

뭔가 다른, 멋있는 워킹맘의 삶을 살게 될 거란 기대를 나도 모르게 했나 보다. 워킹맘의 삶이란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말이지, 일하는 남성과 동일한 인격체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란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내게 주어진 일은 여전히도 뒤치닥 거리들로 가득하다. 영수증을 처리하고 월차와 연차를 처리하다가 영업도 하고 전화응대도 한다. 전방위로 뛰는 중이다. 멀티가 가능한 인간이라는 걸 어찌 회사는 이리 잘 알고 뽑은 건지 신기할 지경이다.

뒤치닥 거리의 종류가 유난히 하기 싫은 일만 몰리는 날이 있다. 오늘처럼 말이다. 개인의 성향이나 적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출근하자마자 내게 바래어지는 것들이 호박씨라는 인간이 제일 싫어하는 것들로 가득 차는 날이 발생한다. 자괴감 또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 여긴 어디고 난 누군가에 대한 생각이 스멀 올라온다.

초심을 찾아야 하는데 뜻대로 되진 않는 날은 청소부 아줌마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녀가 혹시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일 수도 있다. 인사하길, 또는 인간으로 대접받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비록 그녀가 내 인사가 낯설어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심히 힘들어서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날이면 그녀의 화장실 청소 시간에 화장실도 들러보고, 라운지 청소하는 요일에 라운지에 나가 두리번거려본다.

초심을 찾아야만 하는 나의 이야기는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기에, 연대를 그리워하나 보다. 공유와 소통이 초심을 소환하는 대는 특효약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사회생활 선배인 남편과 함께 걷는 저녁 9시를 기다리기 힘든 날, 혼자 모니터 앞에 앉아 눈물이 핑 도는 날은 괜스레 컴퓨터 앞을 떠나 4층을 돌아다녀본다.

연대와 공감, 그리고 소통을 찾아서 말이다. 내게 초심이란 사람이다.


사진: UnsplashJosh 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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