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찾기

by 호박씨

살면서 '본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시간과 돈일 게다. 연인과의 헤어짐에서 본전 생각이 자꾸 나는 건 시간과 돈을 많이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당신을 향해 누군가가 시간과 돈을 끝도 없이 조건 없이 지원해 준다면, 어떤 기분인가? 당신에게 그 누군가의 전부가 주어진다면, 그것도 시간의 한정이 없이 말이다. 그 누군가의 삶이 끝나기 직전까지도, 그 누군가가 겨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를 제외하고 몽땅 가진 걸 싹 다 당신에게 준다면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이번 주 호박씨의 테마는 본전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아무리 거슬러봐도 내 인생 밑진 인생이고 피해자이며 끝도 없는 인내와 희생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며 울고 불고 하소연을 했다. 남편을 붙들고 긴긴 하소연을 했다. 목요일 마침 그가 일찍 퇴근하였길래 그의 저녁 식사 시간 30분을 본전 못 돌려받는 억울한 이 인생에 대한 한풀이로 채웠다. 남편은 저녁으로 차려낸 소고기 볶음밥을 1/3이나 남겼다. 한풀이 절반밖에 못한 기분인데 남편은 저녁상을 치우고 부랴부랴 산책을 하러 나갔다. 폭포처럼 이미 쏟아져내린 감정이 식탁 앞에 흥건히 남아있는데 내 사연을 들어줄 이는 사라지고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가 원망스러웠다. 원망의 화살을 받을 사람이 남편으로 바뀌고 나니 속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본적 달라고 나무랄 대상은 1시간의 산책이 끝나면 돌아올 예정인, 돌아온 남편을 혼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하던 대로 하면서 살고 싶어 한다. 나라고 다를까? 큰 아이에게 내 상태를 이야기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큰 아이는 울어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도 별 말이 없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을 듣고서야 일찍 자라고 한마디 하는 게 다이다. 큰 아이에겐 내 짐을 덜어놓을 여유가 없으며, 내 짐을 자식에게 덜어서도 안된다. 부모가 할 짓이 아닌 거지. 아이에게 내가 보여줘야 할 건 본전 찾지 않을 테니 나만 믿으라는 신호일 터.

저녁 밥상은 큰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한쪽에 에어팟을 꽂은 아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컨디션이 안 좋다며 아이와 눈을 마주치자,

"엄마, 일찍 자."라고 한다. 간결한 문장이 아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렇다. 큰 아이는 저런 게다.

작은 아이는 눈치를 보다 잘 준비를 부랴부랴 한다. 말 걸어보다 대꾸하지 않으니 얼른 제 할 일로 돌아간다.


식구들에게 내 시간을 맞추고 희생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쓴 건 분명 나였다. 본전. 그놈의 본전이 뭐라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었나 보다. 그들의 기분을 헤아려줬다고 생각했겠만, 큰 착각 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머리를 때려댄다. 내 시간을 모두 그들에게 바쳤고, 내 저녁 시간을 그들을 위해서 쏟아부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저녁 식탁에 함께 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일방적인 위함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나는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내 감정을 공유했을 것이다.

본전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을 상대는 분명 알아차린다.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내게 본전을 내민 이는 없었다. 내 모든 시간을 그들에게 쏟아부었다는 게 호박씨의 테마인데 누가 그 테마를 잡겠는가? 감히 명함도 못 내밀만큼 나는 공고히 내가 피해자임을, 해결되지 않는 피해자의 카테고리 한가운데 나를 단단히 뿌리 받아두었었다.





회사는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과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신비롭고도 특수한 공동체다. 내겐 아주 격렬한 탐구 대상이다. 회사가 나를 받아준 것만 해도 고맙다는 생각이 내겐 컸다. 1년여를 고마운 마음에 체력이 되는 한에서는 헌신을 했다. 그런 헌신은 오늘처럼 믿음이라는 보답으로 돌아온다. 가끔가끔 동료들이 더 이상 나를 나이만 든 경력 없는 이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렷이 깨닫는 순간이 오면 감사함이 솟구친다. 그러니 회사에서 나는 본전 찾기라는 가족 안에서 내가 갖고 있는 주제를 벗어던지는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기꺼이, 과감히 집어던지고야 말아야겠다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대표가 건넨다. 결혼을 앞두고, 주택을 장만하고 싶은 소소한 마음과 커리어 고민 또한 조금씩 조금씩 내민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 사정도 나눠야겠지. 그렇게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신뢰의 한줄기 빛이 쏟아진다.


본전을 찾으려고 하면 곁에 있는 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며칠을 퇴근과 동시에 "폭싹 속았쑤다"를 보니라 열을 올렸다. 무조건 믿어. 무조건 잘되라는 말이 내겐 살을 도려내 듯 아프게 다가왔다. 그토록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금병이는 아버지로부터 무지하게도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금명이든 다 부러워서 딱 죽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크지 못했다고, 친정이고 시댁이고 다들 내게 본전만 내밀었으니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그리고 오늘 실낱같은 신뢰를 맛보며 그 거미줄의 끈질김에 기대어 몸을 일으켜 본다. 회사든 집이든 그 어디에서든 "금명"은 못되더라도 "금명"의 아버지는 될 수 있다. 그렇다. 본전을 모르는 존재, 전설 속 누군가 같은 사람. 이제 내 목표는 "양관식"이다.


사진: Unsplash의 meriç t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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