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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 앞에 서서

by 호박씨

서현고. 98학번. 연세대. 대학교수. 이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꺼이꺼이 소리 내서 울던 12시간 전의 '내'가 다시 또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시간 앞에 무기력해지기에 눈물이 고이고, 그녀가 하는 말은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다잡어야 한다. 지나간 시간 속 불행은 거기에 남겨두고 오늘을 잘 살기 위해 질투심과 오만함을 내려놔야 한다. 장이 신호를 보낸다. 나를 삭혀하는 순간이 오면 배가 꼬일 듯이 아프다. 뇌, 감정과 장은 나라는 임상 하나만 놓고도 어찌나 선명히 알 수 있는지.





인천 글로벌 캠퍼스의 오픈 캠퍼스 날이다. 글로벌캠퍼스의 존재를 안 지가 수년이고 겐트대학교에 대한 상상을 해 본 지가 만 1년이 넘었다. 혼자 먹은 마음을 겐트대는 알 리 없다. 마치 누군가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키웠는지 헤아릴 수 없듯이. 어떤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세상은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의 교수가 될 수도 있는 저 사람이 아이의 교수가 될 날을 기대하며 나는 숨죽이고 기다려야 한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잘난 나를 내세우고야 말아야 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는 없는 것. 나 하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오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이게 내 최선. 그렇다면 오늘을 견디는 것 또한 내 몫인 걸.

2명의 젊은 청년들이 겐트대학교 졸업생으로써 젊은 교수와 같은 마이크를 집어 들고, 같은 무대에 섰다. 한 해에 100명이 안 되는 졸업생들 중에 저 자리에 오르는 이가 될 때까지의 여정은 굽이굽이 힘겨웠겠거니. 그렇게 다정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여교수도 바라봐줘야겠거니.

아침 먹으면 배 아픈 건 기본이고 꼬이는 배를 쥐어 잡고 화장실을 대여섯 번 가는데 일상인 요새라, 송도까지 가는 좌석버스를 타기 전 먹은 거라곤 생수 반 병이 다인데 배가 또 아파왔다. 겐트대의 강당은 좁은 복도식 의자가 10개 정도 붙어있는 모양새라 배 아프다고 나가기엔 민폐가 뻔했다. 게다가 강당이 수용가능한 인원에 넘치게 예약을 받았는지 기다란 의자 사이 복도 계단에까지 방석으로 자리를 마련해 둔 상태. 도대체 이 학교 광고는 언제 끝나는 걸까, 분위기 파악 다 되었는데 라며 겐트대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난 아이를 이 학교에 구걸해 가면서 보낼 생각 없다는 나름의 의미 부여로 글로벌 캠퍼스 건너편 쇼핑몰에서 20여분 시간을 보내고, 버스 내리자마자 바로 날 맞는 연세대학교 국제 캠퍼스도 누비다 보니 강의가 시작하는 시간보다 1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강당 바깥에 서있는 키 큰 학생들 사이에 서있다간 교수의 소개가 하나도 안 들려 비집고 들어갔건만, 11시 방향의 서현고, 연세대 마크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나니 비집고 들어온 1초 전의 행동이 후회막급이었다. 이 어리석음과 욕심을 어찌할 것인가?



겐트로부터 서쪽으로 바다 끝까지 가면 오스트엔데, 즉 동쪽 끝이라는 이름의 해안도시가 있다. 런던에 가는 비행기 값을 아끼겠다고 우리는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첫 런던 방문에 작은 아이는 열이 펄펄 끓어 꼬박 호텔에서 지내야만 했다. 고열에 어찌할 바를 몰라, 낯선 도시에서 아이를 잃을까 봐 무서움에 벌벌 떨던 날은 전부 공짜인 런던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타온 항생제로 해결되었지만 유럽대륙으로 건너온 날에도 나는 작은 아이가 다시 아플까 봐 여전히 기억을 붙들고만 있었다.

오스트엔데에 도착한 날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유럽의 겨울은 한국의 강마른 겨울에 비하면 추운 것도 아니지만, 해변가 그 거센 바람을 며칠 전 호텔방에 드러누워있던 아이가 통으로 맞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죽을 맛이었다. 남편은 출장으로 왔었던 이 도시가 하도 좋아, 굳이 여길 들르자 했었다. 한시라도 집에 돌아가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도, 그는 기어코 그의 마음에 들었던 도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만다.

바닷가 앞엔 고급스러운 호텔들이 쓸쓸한 겨울의 끝을 지키고 있었다. 어디 한 군데 들어가서 뭐 하나 마시면서 바람을 좀 피하고자 하니 남편이 돈 아까워하는 눈치다. 유럽은 어디든 들어가면 자릿세가 비싸다. 10년 전 음료 한잔에 팁까지 인당 만원씩은 줘야 했고, 아이라고 해서 머리로 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 한 명당, 메뉴 하나. 거기에다 팁까지 주고 나면 5만 원은 털리는 데 당시 남편의 계산으론 5만 원은 참으로 아까운 돈이었다.

겨우 눈치 보며 들어간 카페에서 큰 아이가 주문한 핫초코는 스위스미스의 미국식 달콤함을 기대한 우리의 생각을 박살 냈다. 저녁 시간엔 카페인 때문에 커피도 못 마시고, 따뜻한 차는 맹물에 티백 담근 거라 아깝고. 여러모로 우리 가족은 카페는 안 되는 인간들이니 남편의 계산은 정확하지만 나는 괜히 분했다. 그냥 돈 쓰는 거지. 그냥 앉아 있는 거지. 비록 아이가 기대하고 기다려서 나온 핫초코가 정확하게 초코를 녹인 밀도 높은 끈적한 액체일 망정, 그 독한 벨기에 놈들이 공짜 구경은 하나도 못하게 하려고 해변가에 앉을 데 하나 마련해두질 않았으니 이 끈적한 액체라도 앞에 두고 앉아야 쓰겠다고.

그렇게 속으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던 나를 엄마라고 손잡고 졸졸 따라오던 아이들, 그런 나와 아이들에게 그곳을 보여주겠다고 긴 시간을 온전해온 젊은 아빠였던 남편. 그렇게 시간은 어리석고도 속상하게 속절없이 흘러갔었다.



남편은 유난히 벨기에를 좋아했던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은 적당한 지저분함과 저렴한 가격, 만만한 나라 벨기에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꼈다. 스페인을 좋아했던 것처럼 그는 콧대 높은 것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아들의 성적은 바닥을 향하고 있고 겐트대학교도 진학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한 해에 이천만 원이 되는 비싼 학비를 지불해야 하니 아이가 다니겠다고만 하면야 내게 있는 모든 것, 시간을 팔아서라도 보내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학교가 아이를 받아줄지 또는 아이가 학교를 선택할지 나는 알 수거 없다. 졸업률이 10% 밖에 되지 않고, 한국 대학의 2배가 넘는 필수 이수 학점을 감당해 낼 수 없다면 내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해도 결과는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출발하던 그날 반나절이 지나 작은 아이가 차에서 토를 했었다. 그 순간도 차를 돌릴 수는 있었겠지만 우리는 구역구역 런던을 향했었다. 어떻게든 작은 아이는 떨치고 일어났지만 첫 런던 방문에서 해야 만한다고 계획했던 스케줄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집으로 건강히 돌아왔고, 또 그렇게 유럽에서의 날들을 낯설고도 실수 연발 속에서 살아갔었었다.

삶이라는 게, 한 생명을 성인으로 세상에 내밀어 낸다는 게 어쩌면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건 맞다. 나의 내일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며, 오십에 훨씬 가까운 나이에도 다다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알 수 없어 불안해하고, 이루지 못해 불행해하는 오늘의 나 또한 여전히도 갓 태어난 듯 미숙하기 짝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나를 길들여본다.


교수님. 저랑 동갑이시네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 아이 입학원서 넣으면 잘 받아주십시오. 우린 분당 그 어디선가 학원에서 함께 앉아 있었을 수도 있고, 서현역 노래방 어디선가 옆방에서 고래고래 시험 끝난 기쁨을 만끽하였을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들. 제 잘난 맛에 사는 엄마 만나서 고생 많이 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 누구에게 못된 소리 한 번 할 줄 모르는 착한 아이입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욱하기도 하지만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다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디,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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