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
10여 년 동안 비료와 농약 없이, 퇴비를 만들어 밭에 뿌리고 유기농 농사를 했다.
그 후, 리장집 창고에서 비료를 팔 기 시작했다.
하얀 싸라기 같은 요소 비료, 갈색 알갱이의 과석, 붉은색 가루의 염화가리 비료가 40킬로 포대에 담겨 있었다. 10여 리 떨어저 있는 리장집 창고에 가서 비료를 사서 지게로 지고 왔다.
요소비료는 옥수수 포기밑에 한 숟가락만 주어도옥수수가 쑥쑥 자라고 염화가리를 주면 곡식들이자라지 않았다. 요소비료를 사러 가면 요소비료 한 포대에 염화가리 한 포대를 끼워 팔았다.
그 시절엔 동네에 리어카 있는 집이 한집도 없었다.
요소비료 한 포대(40킬로)와 염화가리 한 포대(40킬로)를 지고 오면 어깨는 빠질 듯이 아프고, 허리는 끊어질 거 같았다.
돈을 주고 샀지만 염화가리는 지고 오다가 길가에 버리고,
조금만 주어도 곡식이 쑥쑥 자라는 요소비료 만 지고 왔다.
길가엔 농부들이 지고 가다 버린 염화가리가 포대째로 여기저기 있었다.
몇 년 후, 요소비료는 농작물의 키를 키우고, 염화 가리는 열매를 키운다는 것을 알고부터 버려진 염화가리 포대를 볼 수 없었다. 비료만 뿌리고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여름날 땀 흘리며 퇴비를 베지 않아도 편하게 농사할 수 있어 좋았다. 해가 더해갈수록
비료를 더 많이 뿌려야 농사가 되었다.
비료 2포대 뿌리던 밭에 3포대를 뿌려야 되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비료를 더 많이 뿌려도 예전처럼
곡식들이 잘 여물지 않았다.
보약 같은 퇴비는 안 주고 공장에서 만든 화학비료만사다가 뿌렸으니 농작물들은 약해지고 병충해는 더 심해 젔다. 퇴비를 주지 않으니 땅은 점점 굳어지고 산성(곡식들이 자라지 못하는 땅)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