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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녹슨 칼 11화

재물손괴

by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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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사건의 시작은 12월에 일어난 잔혹한 살해 현장을 발견한 김순희(82세)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애지중지 키우던 닭들이 잠자던 그 닭장 안에 무지막지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시불 누구야!!!!!!!!!!!




순희(82세)는 거의 평생을 닭을 먹여살려 왔다. 이따금 잡아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계란을 얻는 목적이었으며, 그렇기에 큰일이 있지 않는 이상 닭을 잡아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닭들의 모이를 챙겨주었고, 혹여나 답답할까 봐 아침에 닭장문을 열어주고 밤이 되어서 닭장으로 닭이 돌아오면 나름의 점호를 하고 문을 닫곤 했다. 그러던 어느 12월 말, 닭이 몇 마리 죽어있었다. 이건 분명히 사냥당한 흔적이었다. 기분 좋게 손자들을 먹일 계란을 수거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이런 참사의 현장을 보니 화딱지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흰둥이(3세)는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다. 이 멍청한 주인 놈이 나를 풀어주는 이 오전 시간에, 요 아랫집으로 가서 일단 그 집 개와 친분을 쌓아야만 한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자주 눈에 띄고 같이 어디 놀러 가고. 뭐 그러다 보면 나의 등장에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법. 사냥은 인내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치밀하게 긴 시간을 두고 참을성 있게 행동에 나섰다. 주인 놈이 주는 그 말라비틀어진 애견용 육포보다야, 이 살아있는 신선한 고기가 더 맛있는 거 아니겠어?



구삼이(5세)는 이 자꾸 내려오는 흰둥이 놈을 보고 짖는 것도 이젠 귀찮아져 버렸다. 저 미친놈 또 내려왔네. 근데 좀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뭐.



이렇게 구삼이의 경계 태만으로 인해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닭이 처음에는 3마리가 희생되었다. 근데 이놈 잡아놓고 잘 먹지도 않고 두 마리는 재미로 잡은 모양이었다. 순희는 이런 점에 더욱 화가 나버렸다. 이거 이렇게 해 놓으면 어디 써먹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개를 주거나 버려야 하니까. 먹지도 못하고, 계란의 생산도 줄어버리고. 뭐 그런 거지. 이 우리 집 개노무시끼는 밥 처먹고 뭐 하는지, 울화가 치밀어올라서, 머리를 콩 쥐어박아버렸다.



깨갱.......



순희는 벼르고 있다가 그 흰둥이 자식을 쫓아가면서 돌두 던져보았지만, 꼬부랑 할머니가 된 자신의 몸뚱이는 전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 간파한 흰둥이 놈은 도망가는 척하고 순희가 따라올 수 없는 거리에서 놀리듯이 관망했다. 이런 화병을 어떻게든 푸는 방법은



수양(55세)는 순희를 돌보러 시골집으로 퇴근을 한다. 이런 생활을 한지는 거진 1년 정도 되었다. 그날 밥을 먹는데, 순희의 하소연을 들었다. 저 윗집 흰둥이 개노무시끼가, 자꾸 닭을 잡아 직인다고. 얄미워 죽겠는데, 윗집 사람은 개도 안 매놓고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근디 엄마 윗집에는 누가 살아? 아니 그 이사 온 사람인데, 외지인이라고. 그렇구나.



사실 수양은 순희가 성치 않은 몸으로 닭을 매일 먹이는 것이 사실 좀 보기 그랬었다. 왜냐면 저번 겨울에 얼어있는 비탈을 밑에 있는 닭장으로 가다가 넘어져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놈의 계란 따위는 사실 마트에서 사 먹으면 그만이기에, 이번 기회에 닭을 아예 처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순희의 마음이 다친 것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리는 점이었다.



그렇게 순희가 82세에서 83세로 넘어가는 겨울에, 총 10마리의 닭이 죽어버렸다. 순희는 울화가 치미는 것을 넘어서 많이 속상했다. 계란의 생산량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저 개노무새끼. 겨울이 넘어가면서 윗집 개 주인의 마음이 변했는지, 개를 마당에 묶어놓아서, 닭 연속 사망사건은 일단 종료되었다. 자꾸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 순희는 분노가 자신을 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잊어버리는 쪽으로 진화를 했기에, 이 일도 금방 잊어버리게 되었다. 다만 그 일이 생각나게 하는 일이 생기면,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뜬금없는 분노를 참느라 애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잊어버린 척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던 겨울이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3월 초 수양은 윗집 남자를 만나게 된다.



어유 안녕하세요. 윗집 사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겨우내 개를 자주 풀어놓으셨나봐요, 우리집까지 내려와서 우리집 개랑 자주 놀던디


아 우리 흰둥이가 여기서 놀았나보네요, 풀어놓으면 부리나케 어딜 꼭 가던디


근디 이게 참 우리 엄니가 마음이 아파서


집안에 무슨 일 있어유?


그니께, 이게 우리 엄니가 몸두 션찮으신디, 닭을 매일 맥이느라고 고생란 말이에유


예, 참 노인분들이 그런 소일거리가 참 좋쥬


근디 이게 밥 맥이러 가면 죽어있구


이 얼라


담날에도 죽어있구


이 워쩐일이래유?


그니께, 엄니 말씀으로는 흰둥이가 죽였다고는 하시는디


이 어이구......


참 마음아파하셔서.


지도 저기 워디여, 부여에서 닭을 맥였었는디, 이웃집 개놈이 직여가지구


어이구....


참 마음이 아팠단 말이쥬... 이거 워쪈디야.


그냥 그렇다는 말이쥬


일단 알것습니다


야 들어가봐유


예 모쪼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웃집 남자는 수양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지가 암만 생각해봐두 기냥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거 같아서유


이? 야녀유~


근디 또 이집 주인 할머니한테 말씀 드리구 돈을 드리는 것은 지가 생각해 보니께 아픈 기억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같기두 하구


이이? 아녀유~ 근디 또 마침 엄니가 마실 나가셔서 집에 안계시긴 하네유


지가 별건 없구 돈이라두 드리는게 도리에 맞는 것 같아서, 한 오만원이믄 섭섭치 않을까유?


지는 이정도믄 된다구 보는디, 오만원이믄 엄니가 섭섭해 하실거 같은디


그러면 마리당 만원씩 해가지구 한 십만원 드릴게유


이정도면 엄니가 그래두 마음이 덜 아파하시겠네유


모쪼록 죄송합니다


아녀유 살다가 보믄 이런일두 있는거쥬


들어가볼게유


예~ 안녕히가세요~



수양은 돈을 순희의 침대 옆에 두고 집에 가기 전에 전화를 했다.



엄니 윗집 사람이 참 괜찮은 사람이에요 *#@#!$!해서 돈 거기다 놨어유



이 모든 관경을 지켜보던 수양의 아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뭐야 저게 무슨 이상한 대화지?"


시골이 경상도인 수양의 아들의 친구는 이렇게 생각했다.


"뭐야 저 음흉한 것들"



그래서 니 할머니는 아직도 닭 키우냐?


니 먹고 있는 계란찜이 거기서 나온건데?



암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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