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녹슨 칼 10화

화목보일러

by 고라니
KakaoTalk_20241212_163216804.jpg?type=w1




그러니까 그게 화목보일러 문제였다.


매 겨울이면 나무를 해서 쌓아놔야 했고,


보일러는 자주 고장이 났으며


매 시간마다 나무를 넣어야 했다.



기름 보일러로 바꾸자고 매년 말했지만, 그건 그냥 그대로 있었다.



몇년 전에는 보일러를 교체했다.


낡은 화목보일러에서 새로운 반짝반짝 화목보일러로.


어제 화목보일러를 꺼냈을 때에는 완전히 시커먼 굴뚝청소부 같았다.




3월에 집을 떠난 이종성씨는


이제 집에 돌아오면 화를 낼 것이다.


원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는편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립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괴팍한 노인네


까칠한 노인네였지만은



그래서 당신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아빠는 어제 보일러를 바꾸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이제 할머니는 장작을 신경 쓸 필요조차도 없게 되었다. 나는 왜인지 마음이 허전해졌다. 할머니는 이제 집에서 편하게 집 난방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글쎄 그게 할머니가 좋아하실지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병원에 며칠씩 가실때면 전화해서 할머니에게 장작 잘 넣고 따듯하게 자라고 꼭 하루에 한번씩 전화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추울까봐 장작을 늘 확인하셨다. 장작은 연료가 아니라 관심이었다. 까칠하고 무뚝뚝한 그가 가장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관심이었다.



가스 보일러는 잘은 모르지만은 - 화목보일러만큼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확실히 더 편리하겠지. 더욱이 매 시간 확인하며 장작을 넣을 필요가 없다.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아들에게 전화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들 것이다. 듬직하게 보일러를 고치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따듯하게 지켜보던 할머니는 이제 따듯한 겨울을 보내게 돌 것이 분명하지만, 어딘가 가슴이 아파온다.








도끼질 할줄도 모르는 덩치만 큰 애였던 나에게 도끼질을 알려준 둘째큰아버지와 그걸 열심히 연마해서 하루종일 도끼질 하던 나의 모습을 따듯하게 지켜보던 할아버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내 손자가 장작을 다 패 놓아서 이번 겨울을 문제 없다고 나를 칭찬해주던 낮설지만 따듯한 그의 모습을 보던 그날의 방안의 온기를 돌게 하던 화목보일러.



그 보일러 안 장작더미 안에 사촌누나와 함께 넣어놨던 고구마와 감자들이 익어가는 그 모습을 언젠가는 잊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은,



온기만큼은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KakaoTalk_20241212_162600026_01.jpg?type=w1







keyword
이전 09화만담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