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을 3명을 뽑으라면,
최양락,
장동민,
그리고 희안마을에서 병아리 봉고차를 타고 다니는 버즈 라이트이어 이게 내 의견이다.
항상 허리를 곧게 피고 저 자세에서 팔만 어정쩡하게 내린 상태로 서서 이야기를 하신다
저 형님 저기서 또 저러고 있네. 멀리서 자세만 봐도 알아. 노란색 병아리 봉고차에 저 자세로 서있으면 저 형님이여. 나이가 무슨 70이 넘었는데 얼굴이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해. 체력도 좋고, 허리도 엄청 빳빳해.
내가 그 할아버지를 처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몇 해전 시골에서 잠깐 며칠 있을 때 잠깐 나눈 대화 이후였다.
넌 누구 아들이냐? 보니까 수양이 아들 같은데
네 저 이집 셋째아들 아들입니다.
이야 그니께 불은 수양이네.
이 말을 끝으로 타고 온 외출용 소나타의 문을 쾅 닫고 가벼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할아버지는 단순히 희안마을 동네 주민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집과 먼 친척 관계에 있는 집안 어른이셨다. 나의 아버지의 아저씨뻘 되는 분이셨다. 후에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나타나서는,
야 인마, 너 내가 누군지 아냐?
대충은 아는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엄마가 네 증조할머니의 사촌 되는 관계여 수양이가 잘 안 알려 줬구먼, 언젠가 한소리 해야겄네. 다음에 물어보면 알아야 한다. 알겠지?
넵….!
그분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는데, 그건 화려한 입담이었다. 한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는데,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을 재밌게 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마을의 대표 코미디언이다.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몇 개만 소개해 보자면
1. 저짝에 사는 철수 있잖아유, 나랑 10살 차이 나는디, 내가 아저씨뻘이란 말이에유. 근데 요 몇 해 전부터 자꾸 형님 형님 하는겨, 글쎄 이놈이 하는 말이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고, 10살밖에 차이 안나믄, 동네 형이니께, 이제부터 형이라고 한다고 그러네. 그래서 내가 야이놈아, 내가 니 아저씨 뻘인디, 어떻게 형 동생 이러고 사냐. 어디서 맞먹으려고, 꿇어 인마! 참 요즘 나이먹으니께 자꾸 별놈들이 다 와서 맞먹으려고 한다니께요.
2. 내가 나이가 70이 넘었어도 피부가 팽팽혀. 그게 다 침기름 들기름 때문인디, 내가 일 년에 들기름 츰기름을 한 말을 먹어. 아니 그걸 들이 마신다는 게 아니고, 얘는 무슨 말을 못 알아 들어 – 그러니께 나물 먹고, 비빔밥 먹고, 어디 넣어먹고 그렇게 먹으면 한 말은 거뜬히 먹는다는 말이지. 느끼하게 어떻게 목구멍으로 기름을 들이부어.
3. 옥자는 너무 말이 많아 (혼자 앉아서 40분가량을 만담을 조져놓고).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데, 말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그걸 까먹는단 말이지. 걔는 머릿속에 있는 말이 다 나와. 말을 많이 해서 자꾸 똑똑한 척 다 하는데, 사실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과정에서 자기 밑천이 다 나온다니께. 그니께 걔는 말을 좀 줄여야 하는데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그게 되남.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주변 사람만 힘들지 뭐. 말을 많이 하면 재미라도 있어야 하는데, 맨 자기 얘기만 자기 불쌍한 얘기, 잘한 얘기만 주구장창 하니 원. 아니 또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말 많지 목소리 크지 옛날부터 그랬어.
4. 우리 어머니가 30살에 과부가 되셔서, 지금까지 - 100살 가까이 되셨으니께, 70년을 혼자 사시면서 고생 많이 하셨지. 장사하시면서 나를 키우셨으니까. 지금은 이제 요양원에 계시지. 아이구 우리 어머니. 이집 큰할머니 그러니께 내 고모하고 우리 어머니하고 친구였는데. 고모는 이제 떠난 지 10년이 넘었구. 우리 엄마도 이제 이 동네에 없네.
이렇게 재미와 감동 유익함을 주다가도, 마지막 10분으로 모든 것을 날려먹는다.
그러니께 Z가 말이여 완전 순 깡패놈이잖어, 니네는 그런 놈 절대로 뽑지 마라.
이 빨갱이 놈들.
그분의 정치적 견해는 존중하는데, 꼭 정치 얘기는 재미없게 해서 들을 맛이 안 난다. 듣던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면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아서, 그냥 하나 둘 자리를 뜨는 편이다. 정치 얘기가 나올 때쯤이면 다들 웃다가 치칠 때 즈음이어서, 그런 것도 있다. 결국 하나 두울씩 자리를 떠서 저 넘어 집으로 돌아간다. 아마 정치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앞에 재미있는 얘기를 막 한 것 같은데 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재미가 없어서야 원. 결국 본인도 말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뭔가 손해를 보고 가는 느낌이다.
지치지도 않는지, 그러고 다른 곳으로 가서 똑같은 얘기를 똑같은 바이브로 계속하더랬다. 보통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옥자나 본인이나 내 생각에는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물론 옥자보다 곱절은재미있었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은 실수를 해서 결국에는 별 실속 없이 말만 많은 사람으로만 귀결된다는 점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