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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녹슨 칼 08화

인간 이종성 관찰기

by 고라니


이번 주의 목표는 – 할아버지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다. 그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인물이었고, 또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는 말하자면 – 조사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의 평균적인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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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시쯤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는데,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 그 다음에 8시쯤에 아침을 먹기전에, 닭장 문을 열어두고, 밥을 먹기 전까지 뉴스를 시청하신다



- 아침을 잡수시고, 일을 하기 전에 티브이를 보면서 커피를 드신다. (거의 그렇다.)



- 10시쯤에 일을 하기 시작하신다. 저번 주 까지는 죽은 나무를 베어 오는 것이었다. 그 나무는 할아버지의 엔진톱으로 잘려서 트랙터로 가지고 와서, 집 마당에서 도끼로 가공된 후 시골집의 화목보일러로 들어간다



- 점심을 잡수시고 나서는 나무를 그라인더와 엔진 톱으로 패기 좋은 크기로 자르신다.



- 그리고 막 패신다.



- 저녁은 6시에 잡수시는데, 그 전에 내 고향 6시를 틀어놓는 것이 국룰이다.



- 7시에 충청, 대전 뉴스를 중간쯤 시청하시면서 엔진톱의 날을 정비하신다. 그리고 주무시러 방으로 들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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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단순한 일상이다. 매우 성실한 – 겨울 농부의 일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농한기인 겨울이라고 집안에만 있으며 쉬시는 법이 없다. 내일도 일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오늘 최선을 다하시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흥미로운 이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싸움이다. 그들의 싸움 내용을 듣다 보면 흥미로운 점도 많고, 어떻게 60년이라는 세월을 둘이 보내왔는가 경외심이 들기도 한다.



보통의 싸움의 전개양상은 이렇다.



- 할머니는 항상 할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래서 일하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요구한다



- 그런 요구는 사실 할아버지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일을 상당히 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내가 봤을 때, 그냥 할아버지가 하던 대로 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할아버지는 듣고 흘리고, 일을 하던 대로 한다. 대부분 할머니의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 할머니는 자신의 말이 무시당했음에 마음이 상해서, 다시 화를 내면서 말을 한다.



- 할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면서,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말을 한다. 물론 논리적이거나 합당하게 말을 해서 할머니를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신다.






이러다가 할아버지나 할머니 두분 중에 한 분이 이 상황에서 탈출한다. 이러다가 조금 있으면 또 싸운다. 항상 가만히 보자면 서로 참다가 싸우시는데, 두분 다 참을성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고, 언변이 부드럽지 않기 때문에, 툭 던진 한마디에 싸우신다. 어제의 싸움의 양상을 예시로 참고해 보자.






옥수수 모종을 심는 과정에서의 일이다.



할머니: 모종판을 땅 위에 바로 놓지 말고 비니루를 깔고 그 위에다가 놓아야 한다


(할아버지는 비니루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모종판을 놓기 시작한다.)


할머니: 땅이 울퉁불퉁해진다. 잘 놔.


할아버지: (갑자기 극대노) 땅위에다가 놓으면 다지면서 놓을 수 있어서 땅이 고루어 지는데, 비닐을 밟으면서 하는데, 땅 울퉁불퉁하다고 지럴이니 원.






이런 식이다. 난 듣다가 밖으로 나가서 강아지랑 놀았다. 뭐 그런거지.



두번째로 흥미로운 사항은 할아버지의 식성에 관한 것이다. 난 평생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밥을 드시면서 맛있다고 한 것을 본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예민한 감각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익은 김치는 드시지 않는다. 익은 김치를 할아버지는 “썩은 김치” 라고 표현하신다. 또 짜거나 단맛이 나는 반찬을 싫어하신다. 할머니는 짜게 드신다. 평생 중간을 찾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평생 짜다고 불평하셨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게다가 우리 아빠도 그렇고 내가 관찰한 대부분의 충청도 사람들은 뭐가 맛있어도 정말 엄청나게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닌 이상, 입밖으로 “맛있다” 라는 말을 꺼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맛있으면 – “먹을만 하다” 내지는 “양호하다” 정도로 끝낸다. 혹은 말없이 그릇을 비운다. 아마 할아버지 인생 평생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었어도 “맛있다”라는 말을 한 것이 손에 꼽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음식이 맛있다고 하신 것을 딱 한 번 봤는데, 달래간장 콩나물 비빔밥을 잡수셨을 때였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시고는, 내 어깨를 두드리시면서,







“맛있으니께, 한 그릇 더 먹어라”



이건 보기 드문 극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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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할머니는 음식을 정말 잘 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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