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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녹슨 칼 01화

폐가

by 고라니


아주 어릴 적에 아빠에게 할아버지가 귀신을 보았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살면서 3번의 귀신을 본 경험이 있었는데, 한번은 면사무소에서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하다가 동네 꽃상여집 앞에서 한번은 삼륜자동차를 타고 출장근무를 가시다가 언덕에서, 마지막은.. 아빠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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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골에서 집에 돌아오면 시골의 풍경을 다시 생각해 볼때가 있다. 아주 옛날의 시골과 어제 내가 있었던 시골. 아마도 마을에 발이 달려서 움직이는 일은 없을것이 분명하니,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는 사람들 밖에 없을 것 이라는 결론에 당도하곤 한다. 다만, 전기가 부족해 엄청나게 어두운 밤은 분명히 지금과는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해가 지고 나서 동네를 돌아다녀 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밤에 마당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별들과, 신정호, 가족묘가 있는 뒷산의 실루엣 정도였다.




시골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물들이 있다. 겨울 방학 때 시골에서 몇 일 지내면서 할머니와 마을회관을 가다가 마주한 다 쓰러져 가는 벽돌집은 항상 생각나는 시골의 이미지 중 하나이다. 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담쟁이넝쿨이 집의 대문을 삼켜버렸고, 기와는 무너질 대로 무너져 집 안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 친구분께서 여기 사세요?” “아녀.” “그럼 여긴 누가 살았어요?” “…...”




오래된 교회건물이 생각이 났다. 전형적인 교회의 모습이나, 크기는 요즘의 대형교회만큼 크지는 않고, 예배당만 있을 것 같은 크기 정도이다. 주변은 긴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으며, 첨탑은 약간 기울어 있고, 안에 들어가 본다면 십자가가 기울어 있을 것 같았다. 마을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그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교회도 다녀보고 절도 다녀보고, 점집도 자주 돌아다녔다고 했으니, 저 교회에도 들어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교회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교회건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 푸른색 지붕인지 아니면 팥죽색 지붕이었는지 조차도 희미하다. 시골집 앞에 허름해 보이는 집 옆 샛길로 들어가면 있을 것만 같은 그 교회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선명해 졌지만, 네이버 지도의 위성사진으로 찾아봐도 어디에 있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 귀신 이야기를 들은 해 추석, 밤에 잠을 자려다가 문득 할머니께 할아버지가 귀신을 보았다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었다. “아유, 말도말어, 갑자기 니 할아버지가 잠자다가 말이여, 소리를 소리를 지르는겨, 나도 놀래가지구 일어났지. 그리구 무슨일이냐고 물어봤단 말이여…… 몇번 있었는디, 한번은 무당을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단 말이여. 내가 참 항상 감이 좋아가지구 망정이지 저인간 나 아니었으면....” 시골집 안방에 못으로 고정되어있는 부적이 생각났다.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허공을 보고 있었고, 눈은 동그랬는데,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새근새근 주무시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장롱 앞에 서있는 옷걸이는 밤에 보면 사람처럼 생겼다. 그날 밤에 나는 그 옷걸이를 유심히 노려보다가 잠에 들었고, 악몽을 꾸었다.




무슨 색깔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교회 안에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 여기서 뭐하세요?” “이, 우리 손자 왔어?” 나를 보기위해 고개를 돌린 할아버지의 얼굴은 자꾸만 변해갔다. 교회건물은 불타기 시작했고, 붉은 태양 아래, 파릇파릇하게 자라있는 긴 잔디 사이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구름은 두둥실 떠가고 있었고, 교회는 점점 연소되고 있었다. 다 불타고 쓰러지기 시작하자 뒤에 있었던 꽃상여집이 보였다. 그 앞에는 세발자동차와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였다. 하늘은 높고 태양은 모든 것을 태울 것만 같았고,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알 수 없는 그 생명체는 타들어가는 불길속에서 자꾸만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열기에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 옷걸이와 할아버지의 자세가 겹쳐서 보였다. 옆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할머니가 숨을 정상적으로 쉬시는지 확인하고 나는 안심하고 다시 잠에 들기 위해서 노력해 보았지만, 이미 동이 트고 있었고, 닭이 울어대서 다시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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