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에 아빠에게 할아버지가 귀신을 보았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살면서 3번의 귀신을 본 경험이 있었는데, 한번은 면사무소에서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하다가 동네 꽃상여집 앞에서 한번은 삼륜자동차를 타고 출장근무를 가시다가 언덕에서, 마지막은.. 아빠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었다.
가끔 시골에서 집에 돌아오면 시골의 풍경을 다시 생각해 볼때가 있다. 아주 옛날의 시골과 어제 내가 있었던 시골. 아마도 마을에 발이 달려서 움직이는 일은 없을것이 분명하니,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는 사람들 밖에 없을 것 이라는 결론에 당도하곤 한다. 다만, 전기가 부족해 엄청나게 어두운 밤은 분명히 지금과는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해가 지고 나서 동네를 돌아다녀 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밤에 마당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별들과, 신정호, 가족묘가 있는 뒷산의 실루엣 정도였다.
시골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물들이 있다. 겨울 방학 때 시골에서 몇 일 지내면서 할머니와 마을회관을 가다가 마주한 다 쓰러져 가는 벽돌집은 항상 생각나는 시골의 이미지 중 하나이다. 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담쟁이넝쿨이 집의 대문을 삼켜버렸고, 기와는 무너질 대로 무너져 집 안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 친구분께서 여기 사세요?” “아녀.” “그럼 여긴 누가 살았어요?” “…...”
오래된 교회건물이 생각이 났다. 전형적인 교회의 모습이나, 크기는 요즘의 대형교회만큼 크지는 않고, 예배당만 있을 것 같은 크기 정도이다. 주변은 긴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으며, 첨탑은 약간 기울어 있고, 안에 들어가 본다면 십자가가 기울어 있을 것 같았다. 마을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그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교회도 다녀보고 절도 다녀보고, 점집도 자주 돌아다녔다고 했으니, 저 교회에도 들어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교회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교회건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 푸른색 지붕인지 아니면 팥죽색 지붕이었는지 조차도 희미하다. 시골집 앞에 허름해 보이는 집 옆 샛길로 들어가면 있을 것만 같은 그 교회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선명해 졌지만, 네이버 지도의 위성사진으로 찾아봐도 어디에 있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 귀신 이야기를 들은 해 추석, 밤에 잠을 자려다가 문득 할머니께 할아버지가 귀신을 보았다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었다. “아유, 말도말어, 갑자기 니 할아버지가 잠자다가 말이여, 소리를 소리를 지르는겨, 나도 놀래가지구 일어났지. 그리구 무슨일이냐고 물어봤단 말이여…… 몇번 있었는디, 한번은 무당을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단 말이여. 내가 참 항상 감이 좋아가지구 망정이지 저인간 나 아니었으면....” 시골집 안방에 못으로 고정되어있는 부적이 생각났다.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허공을 보고 있었고, 눈은 동그랬는데,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새근새근 주무시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장롱 앞에 서있는 옷걸이는 밤에 보면 사람처럼 생겼다. 그날 밤에 나는 그 옷걸이를 유심히 노려보다가 잠에 들었고, 악몽을 꾸었다.
무슨 색깔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교회 안에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 여기서 뭐하세요?” “이, 우리 손자 왔어?” 나를 보기위해 고개를 돌린 할아버지의 얼굴은 자꾸만 변해갔다. 교회건물은 불타기 시작했고, 붉은 태양 아래, 파릇파릇하게 자라있는 긴 잔디 사이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구름은 두둥실 떠가고 있었고, 교회는 점점 연소되고 있었다. 다 불타고 쓰러지기 시작하자 뒤에 있었던 꽃상여집이 보였다. 그 앞에는 세발자동차와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였다. 하늘은 높고 태양은 모든 것을 태울 것만 같았고,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알 수 없는 그 생명체는 타들어가는 불길속에서 자꾸만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열기에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 옷걸이와 할아버지의 자세가 겹쳐서 보였다. 옆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할머니가 숨을 정상적으로 쉬시는지 확인하고 나는 안심하고 다시 잠에 들기 위해서 노력해 보았지만, 이미 동이 트고 있었고, 닭이 울어대서 다시 잠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