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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녹슨 칼 02화

아틀란티스

by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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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100년도 넘은 일이여. 나도 몰러.”





82세의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할아버지의 답변은 신경질 적이었으며, 불친절 했다. 용기를 내서 물어봤지만, 뭔가 더 알아낼 수는 없었다. 신정호 저수지는 언제나 아주 깊었고, 탁했으며, 바람에 물결이 요동쳤다.



1926년이었다. 일제시대때 신정호의 자리에는 원래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을 기억하는 주민은 꽤나 최근까지 살아있었다. 나의 증조할머니는 그 마을을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시골집에 가면 황도 캔을 사 놓으셨다가 나와 나의 사촌들에게 먹여 주셨고, 집의 뒷산의 도토리와 밤을 부지런하게 주워서 산을 청소하시던 나의 증조할머니. 나의 할머니에게만 가장 가혹했지만, 그녀의 손자들과 증손자들, 그리고 아들들에게는 한없이 따듯했던 고집불통의 여자는 저수지 안의 마을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마을에 남은 2명의 할머니 중에 한 분이셨다.



처음에 신정호 밑의 마을에 대해서 들었을 때 나는 황금의 도시 아틀란티스가 생각났다. 그 마을은 김씨 집성촌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호수 주변의 마을에는 많은 김씨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 중에 증조할머니는 지주의 외동딸이었으며, 증조 할아버지는 외동딸에게 상속될 땅을 관리할 데릴사위로 그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바다 밑의 도시 아틀란티스. 증조할아버지에게 그 마을은 황금이 흐르는 아틀란티스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저수지 밑의 마을과 황금의 도시의 남은 기록과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는 없다.



증조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겨울에 세상을 떠나셨다. 심장이 멈추는 사망선고는 의사가 내리지만, 생활과 관성의 사망은 그보다 더 먼저 멈춘다. 생활과 삶의 관성이 멈춘 삶의 소멸은 빠르게 할머니의 기억을 갉아먹었고, 처음에는 증손주들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 다음에는 손주들의 이름을, 마지막에는 자식들의 이름을 잊어버리셨다. 마지막으로 잊어버린 것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침대 앞 이름표에는 커다랗게 할머니의 이름이 써있었다. ‘김씨’ “아빠, 증조할머니 이름이 진짜로 김씨야? 그 일박이일에 나오는 김씨?” “어, 그게 아니라, 옛날에 증조할머니 아버지, 그러니까 고조할어버지께서 면사무소에 호적을 등록하러 가셨는데 말이야, 그 김씨는 맞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나셨나봐. 그래서 “그 김씨는 맞는데,,, 김씨 김씨,,,,,” 이러다가 호적에 김씨로 기록되었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데요.” “그러게 말이야. 근데 옛날엔 그런 일이 많았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난 아직도 증조할머니의 진짜 이름이 뭐였는지 모른다.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큰아버지와 아버지, 작은 아버지 내외와 나의 사촌들은 할머니의 요양원에 음식을 싸 들고 가서 면회를 했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았고, 어떤 날은 비가오는 날이었던 것 같다. 요양보호사가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고, 항상 사고 치지 않고 조용히 계셔서 보호사들이 관리하기 좋은 할머니라는 말을 꼭 해주었다. 그럴 때면 큰아버지와 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어떤 할머니들은 늙어서까지 다른 할머니들을 왕따시키기도 한다는 말을 하면서 나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면회를 갔을 때 할머니는 우리가 싸간 맛있는 여러 종류의 전들과 잡채를 잘 잡수셨다. 그게 나의 기억 속 김씨할머니의 마지막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빠는 매번 보청기를 해드렸다면 치매는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증조할머니께서 떠나셨다는 소식은 학교에 있다가 들었다. 아침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라니야, 할머니가 오늘을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 증조할머니는 마을에 가장 오래 거주한 주민이었다. 저수지 밑의 마을의 주민이 떠났다. 이름도 잊어버리고, 원래 고향의 모습도 잊어버린 채로 떠나버렸다. 장례식장에서 큰아버지와 아빠는 계속 되네었다. “호상이야… 이정도면 호상이지. 암.” 호상이라는 말이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그때는 누군가의 죽음에 호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누군가의 죽음은 그 죽음자체로 숭고하고, 모두가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 있던 할머니의 고통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호상이라고 말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해 보였다. 그때는 15살이었고,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증조할머니의 죽음의 과정이 우리에게는



“호상이야… 이정도면 호상이지. 암”



그렇게 마을의 마지막 김씨는 모든 것을 여기에 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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