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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녹슨 칼 05화

가택연금

by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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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는 거위가 3마리 있었다. 세 마리 모두 성격이 아주 고약했는데, 조금만 수가 틀렸다 싶으면, 고개를 빼들고, 두 날개를 처들고 꾸에에엑 소리를 내면서 사람에게 대들기 일쑤였다. 두 마리는 매우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인데, 이 둘은 별문제가 없었다. 이따금 대들기 시작할 기미가 보이면 막대기를 들고 꽁지를 쫓아가면, 빠져라 도망을 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머지 한 놈인데, 이놈은, 커다란 오리 행세를 하고 다닌다. 오리들을 집 주변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줏어처먹고 다닌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하루 종일 꾸에에엑 소리를 내면서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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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며칠 전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거위 놈이 오리들의 신변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근래에 보니깐은, 저 멀리까지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에 지럴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일 예로, 우리 집 주변의 땅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땅인데, 개발을 한답시고, 모래 언덕과 사막을 만들어 두었었다. 그 언덕 끝에는 이웃집이 있었는데, 끝까지 가서, 이웃집 개한테 지랄을 하고 다니는 것을 할아버지가 발견했다. 또 우리 집 뒷산에는 3마리의 들개가 사는데, 가끔씩, 우리 집으로 내려와서 닭이나 오리들을 사냥해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닌 돌멩이를 집어던지면서 욕지거리를 하셔서 집 마당 안은 문제가 없었는데 오리들은 멀리까지 나가니까, 개들의 공격에 아주 취약했다. 하여튼 저놈의 거위 놈을 풀어놓았다가는, 오리들이 몰살당할 판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나는 저 거위 놈을 잡아다가 우리 안에 매어 놓기로 했다.



우리의 작전은 이러했다. 약간 찢어진 그물이 있었는데, 그걸로 거위를 잡아서, 까꾸로 뒤집은 다음 다리에 줄을 매서 우리에 놓는다. 난 약간 무서웠다. 왜냐면, 거위한테 물리면 기분이 아주 더러울 것 같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쥐도 수틀리면 문다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속담처럼 까꾸로 매달았다가는 거위 놈이 무슨 짓을 할지 가늠이 안되었다. 또 뭔가 일이 수틀리면 할아버지가 나를 인간 이하의 시선으로 쳐다볼 것만 같았다. 일단 거위를 잡아넣기 전에 거위를 잡을 그물을 수리해야 했는데, 할아버지는 노끈 다발을 던저주셨다. 난 이 시골에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특히나 이런 기술적인 일은 더 그랬다. 일단 아무렇게나 줄을 집어넣고 묶고, 자르고 그러고 있었는데, 역시나 한소리 들었다. “아이구, 아직도 하나 꼬매고 있네.” 다시 할아버지를 따라서 열심히 엮었다. 그렇게 그물이 완성이 되었다. 조금 엉성해 보이기는 했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안에는, 오리 녀석들과, 거위 3마리가 있었다. 녀석들은 인간의 침입을 반기지 않았다. 거위 우리는 사슴 우리로 쓰던 큰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3개의 공간이 있었다. 하나는 화장실같이 생긴 작은방이었고, 하나는 입구와 연결된 거실, 마지막은 질퍽한 진흙으로 되어있는 방이었다. 우리는 거실로 들어갔는데, 거위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에에에ㅔㅔ엑” 이런 소리를 지르면서 진흙방으로 도망갔다.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거위녀석들은 마당에서 인간들에게 덤비던 용기는 어디 갔는지, 아주 겁에 질려서 구석에서 비명을 질렀다. “꾸에에에에ㅔㅔ엑” 아주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일단 할아버지와 나는 무리들과 커다란 오리 행세를 하는 꺼뭇한 거위 놈을 오리와 얌전한 거위 두 마리와 분리해서 놈을 거실로 모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고는 방의 문을 판자로 닫아버렸다.



이 녀석과 우리 둘, 포유류 둘과 조류 한 마리만 거실에 남았다. 이놈은 이리저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흰 털과 흙먼지가 날리고, 나는 녀석을 구석으로 몰고, 할아버지는 망으로 잡으러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마당에 있던 개는 마구 짖어대면서 이 재미있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거위 놈은 덩치가 너무 커서 좁은 거실을 뛰어다녀봐도 도망을 칠 수가 없었다. 드디어, 거위 놈을 잡았다. 힘이 어찌나 센지, 마구 저항했지만, 목이 제압되어버려서 비명만 질렀다. 할아버지는 곧 오른발을 잡고 거위 놈을 까꾸로 뒤집었다. 조금 열려있던 문틈으로 개가 들어왔는데, 거위는 개를 물어버릴 기세로 부리를 벌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 발을 묶을 노끈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다.



줄은 밖에 있었다. 줄로 묶기 전에, 일단 진흙 방안의 오리 무리들과 거위 둘을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나는 막대기를 들고 진흙방으로 들어갔다. 놈들은 이번에는 구석에 몰린 쥐의 처지였으므로, 최후의 발악을 준비하는 듯이 나를 정면으로 보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리를 한 대 먼저 처 버렸다. ‘선빵 필승이다’ “딱” 그다음은 쉬웠다. 내보내고, 묶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오리들은 녀석 없이도 잘 돌아다녔다. 그전에 비해서 멀리 돌아다니지는 않았는데, 그건 좋았다. 우리 안에 묶인 거위 놈은 하루 종일 소리를 질러댔다. 이따금 줄에 묶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뛰어나가려다가 넘어지고 하는 것만 빼면은 뭐. 사실 그게 불쌍해 보이는 것이지만 할아버지는 별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이내 거위 놈은 잊어버린 채 다른 일을 하느라고 바쁘셨으니까. 묶어버린 것이 11시 즈음인데, 4시까지 소리를 질러댔다.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와 소리가 작아졌다. 그러다가 지도 체념해 버렸는지, 별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리들은 원래 그들이 그렇게 다녔다는 듯이 엉덩이를 씰룩대면서 잘 다녔다. 거위 놈은 까먹어 버렸나 보다.



문득 묶인 놈이 가택 감금을 당했었던 아웅 산 수치 여사나 감옥에 감금되어 버린 넬슨 만델라와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나도 금방 잊어버렸다. 우리는 옥수수 종자도 돌봐야 하고, 장작도 패야 하고, 개밥도 주어야 하고, 산 밑의 밭도 갈아야 하고, 거름도 뿌려야 하고….. 할 일이 산더미였기에, 그놈의 처지를 보장해서 잘 해주기에는, 하루가 너무나 짧았다. 그동안 풀어준 것도 많은 것을 감수한 일이었는데, 자기 복을 알아서 차뻐린 거지 뭐, 누가 거위에게 거기까지 가면 안 된다고 일러 줄 수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냥 그렇다. 할아버지가 처치 곤란이라고 생각하거나, 키우는 데에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금방 없어질 놈들이니까.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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