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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녹슨 칼 04화

우연

by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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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환자냐?




지팡이를 짚어야 할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대한 외할아버지의 대답이었다. 할아버지는 역정을 냈으며, 그 이후로도 환자 취급을 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화를 내셨다.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삶이란 죽음의 흔적을 지워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방도 깨끗이 치워야 하고, 깨끗이 씻어야 하고, 살아있는 동안 주변을 잘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따라왔고, 어떤 이들은 흔적도 없이 찾아온 죽음을 대면하기도 한다. 아 그렇게 죽음의 흔적을 존재도 잊을 정도로 지워왔건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대부분 우연의 연속이었다. ‘하필이면’의 연결이다. 그중 하나라도 어겨졌다면, 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사건들이었다. 나의 증조할아버지의 죽음도 그러했다. 비극의 시작도 운이었다. 어쩌면 무엇인가의 성패는 대부분 우리가 좌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교통사고였다. 세발 자동차가 거의 전부였던 그 시절에 교통사고라니, 믿을 수 없겠지만, 그건 얼마간 사실이었다. 왜냐면 그 시대의 트럭이자 트랙터는 소였기 때문이다. 달구지에는 엑셀은 없었지만, 브레이크는 있었다. 누가 소를 쓰겠다고 하면 소의 주인은 하루치 품앗이를 대가로 빌려주곤 했다. 마을에는 고정적인 일소가 있었다. 암소였는데 발정기였다. 달구지에는 많은 양의 화물과,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과, 그 외의 사람들이 타 있었다. 1960년대였다.



60년대에는 서울에 있는 병원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었다. 아니, 서울에 있는 병원이 어떤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고, 그런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재력이 있는 사람이 이 시골 바닥에는 없었다. 의료보험도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그 존재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 소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으며, 건강한 사람 먹고살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돼지도 먹지 못해 야위었다. 개들은 잔칫날이 되면 평소에 먹지 못한 밥을 너무 많이 몰아먹어서 너무 커진 배 때문에 걷지 못하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물론 매일 잔칫날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일 년의 364일 정도는 배고픈 날들이었다.



음주를 즐기시는 편이었다. 그날도 읍내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 한잔 걸치고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은 자주 있었으며, 음주를 하고 차를 몰면 음주 운전이지만, 달구지를 몰면 그건 뭐였을까? 잘은 몰라도 그때 당시의 그런 사람은 더러 있었다고 한다. 음주 단속을 하는 경찰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며, 달구지를 단속하거나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의 “저 사람 또 한잔 걸쳤구먼” 이란 말이 전부였다 안전불감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마는, 그때는 모두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날이 있다. 습관대로 하고 싶지 않은 날. 우리 할아버지한테도 그날은 평소와는 다른 뭐 그런 날이었다. 소학교밖에 안 나왔지만은 특유의 가지고 있는 영특함이 있어, 농사일 대신 면사무소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항상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셨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2개가 있는데, 빙 돌아오는 길과, 최단거리로 오는 길이었다. 자주 다니는 길은 후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습관대로 하고 싶지 않은 날.



집에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 둘째 할아버지, 셋째 할아버지, 고모할머니, 막내 할아버지 등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큰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의 나이 차이는 별로 나지 않았다. 막내 할아버지는 10살 내외였으며,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렸었으나, 할아버지의 빠른 대처로 건강하게 자라는 중이었었다.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서 고쳐왔다. 뭐 그런 거지. 아무튼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둘째 할아버지 정도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면사무소의 공무원이었기에, 농사일을 돕는 것은 덩치도 있고 힘도 강하던 둘째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항상 칭찬은 고사하고 일 시켜놓고 술 먹고 와서는 좋은 소리 하나 하지 않던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만 쌓이던 중이었다. 아무튼 대가족이었다.






소를 빌려야 했다. 마을의 일꾼, 그 집 소는 그랬다. 내일 품앗이로 일을 해주기로 하고 소를 끌고 시내로 나갔다. 일단 내일 일을 해주더라도, 오늘은 온전히 내 소유나 다름없으니까, 밭일도 시켜야 할 텐데, 일단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니 시내로 가야지. 시내에서 물건을 달구지에 많이 싣고 오려고 하는데, 어쩐지 김 씨가 불렀다. 그곳은 막걸리 주조장이었고, 참새가 어떻게 방앗간을 지나치냐, 그런 생각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얼큰하게 먹다가, 나와야지 이런 생각으로… 어이쿠 이제 집에 가야겠다. 내가 말이야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 집 사람이란 말이지…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일본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온 이야기,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결혼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집으로 가야지 그렇게 되었다. 발걸음도 무거웠고, 달구지도 무거웠으며, 소도 무거웠다. 그러나 하늘은 높았고, 매연 하나 없었으며, 코에서는 얼큰한 술 냄새가 적응되어 느껴지지 않는 뭐 그런 느낌이었다. 집에는 가족이 많았으며, 나는 가장이지만 집에는 장성한 아들 우리 첫째 종성이가 있으니 뭐 내가 없어도 큰 문제는 없을 테지. 빚은 많지만, 야 참 종성이가 말이여…..



달구지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타 있었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부터, 코 흘리는 동네 초등학생 아기들, 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줌마들, 지게를 지고 있는 아저씨 등등 다들 이제는 집으로, 다들 집으로 가야지. 몇 명이 타고 몇 명이 내리고 그러다가, 내리막이었다.




어. 어? 어! 어?



발정 난 암소가 내리막에서 뛰기 시작했다.



달구지에는 브레이크가 있다.



암소가 뛰자 다들 뛰어내렸다.



달구지에는 아무도 없다.



나도 뛰어내리긴 했는데.




저 소를 내가 뛰어서 잡으면 멈추지 않을까? 내 달구지도, 내 소도 아닌데 하루 품삯 값인데. 고장 내거나 소가 도망치면 며칠을 일해줘야 하지? 난 빛도 많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미 뛰고 있었다. 조금만 …. 조금만 뛰면. 더 빨리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잡았다. 어?



몸은 앞으로 고쿠라 졌는데, 손은 소를 잡고 있었고, 다리가 땅에 끌리다가 결국 손에 힘이 빠졌다. 나무 바퀴와 흙바닥과, 길 중간에 있는 짱돌 사이에 내가 있었다. 종성아 나 살려라, 종성아.




***



그냥 그날은 그러고 싶었다. 그 길로 가고 싶었다. 세상에, 그게 사실 옳은 일이었을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차피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사고가 났을 것이고, 어차피 의사는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서울로 갔으면 달랐을까?



아버지는 달구지 밑에 깔려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동생들과 내 안해가 와있었다. 아버지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다. 이건 천운이다.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에서도 아직 못할 겁니다."



이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모셨다.



아버지는 곧 돌아가실 것이고,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느껴졌지만, 이제 앞으로 다가온 나의 인생의 고난에 대한 연민도 크게 느껴졌다. 지금 이 상황이 슬픈 것은 빚이 많은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점 이겠지. 이건 불효일까 아니면 상황에 맞는 감정인가. 난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다음 날은, 그 다다음 날은. 이제는 나도 승부를 봐야겠지. 앞으로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 이게 끝인가?



***



“종성아 나 살려라! 종성아!” 오빠는 출근하고 없었다. 둘째 오빠도, 셋째 오빠도 있지만, 아버지는 큰오빠만 찾는다. 아버지는 죽만 드신다. 너무 아파하시는데, 딱히 뭘 해줄 수 없어서 계속 울음만 나온다. 아버지는 곧 돌아가실 거야. 슬프게도 그렇다. 난 오늘도 큰 솥에다가 물과 쌀을 넣고 미음을 끓이고 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시고, 나도 그랬다.




1주일이었다. 아버지는 줄곧 큰오빠만 찾으시다가 돌아가셨다. 마지막에는 가래에 숨이 막혀서, 그렇게 말도 한마디 못하고. 그렇지만, 귀에 자꾸만 맴돌았다. “종성아 나 살려라! 종성아!” 폐에 갈비뼈가 만든 구멍이 뚫린 채로. 그렇게 되었다.



그 목소리는 70이 넘었어도 그렇게 생생하다.






야 참 요즘 같으면 수술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그죠?



그게 저기 저수지 있는 곳에 밑에 밭에서 사고 난 거지? 난 어렸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녀, 그거 저기 어디냐 저짝이었지.



그 소가 발정만 안 났어도 말이야



누가 뒤에서 브레이크 보조만 잘 해줬어도



술 안 먹었으면 그냥 뛰어내리는 판단을 했을 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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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할아버지의 화장이 진행되던 중 울음을 멈추고 하던 말들이었다.



이중 하나만 진짜로 지켜졌어도. 뭐 그런 거지 뭐.



2024년 3월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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