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시골에 모여서 뉴스를 보는데 뜬금없이 할아버지가, “경상도 놈들이 이 나라를 다 해 처먹고 있어.” “그러게요, 통일신라 놈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죠 뭐.”라고 큰아버지가 말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김장을 해야 되는 시기가 와버렸다. 몸이 근질근질 했던 나는 집에서 나와서 빨리 일을 하고 싶었기에, 김장을 하는데 따라가기로 했다. 아빠는 어제 저녁에 먼저 떠났고, 엄마와 나는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먼저 와서 무와 배추를 다듬어 놓은 큰엄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서 아마 해야 하는 일은, 나는 일단 – 숙련된 김장꾼이 아니기 때문에, 배추의 속을 채우는 일을 시키지 않을 태니 무거운 배추들을 밭에서 따서 나르고, 무거워진 김치통을 옮기는 일을 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마을을 산책하며, 나의 기억속에서 분명히 자리하다가 사라져버린 마을의 교회를 찾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출발할때부터 엄마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보였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큰엄마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갔다. 직장인인 엄마와 작은엄마, 원래 토요일 일요일에 김장을 하는 전통과는 다르게 금요일부터 시골로 내려가서 많은 작업들을 해버린 큰엄마,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나도 마음이 불편해 졌다. 항상 차를 타고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아침도 못 먹고 달려왔다. 도착해보니, 마당에 배추와 김치속이 방수포위에 잘 정리되어 있었고 11월의 찬 바람이 쌩쌩불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주방에서 밥부터 먹었다.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천천히 밥을 먹었다. 엄마는 그럴 수 없었다.
아빠는 자꾸 시간을 물어봤다. “고라니야 지금 몇시야?” “나 시계도 안차고 오고 핸드폰도 집안에 있어서 모르겠어요,” 말은 느리지만 행동은 엄청나게빠른 할머니와 큰엄마 큰아빠. 그들의 보초에 맞추어서 최대한 하려고하는 행동도 느린, 엄마 아빠와 나는, 그들 사이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무거운 김치통을 쌓아두었고, 엄마는 뚜껑을 닫기전에 소금과 시레기를 뿌렸으며, 아빠는 김치속을 채우고 있었다. “동서, 여기 육수좀 넣어.” “애미야, 소금좀 더 넣어라.” “고라니야, 휴지가지고 와서 내 코좀 풀어봐.” “고라니야, 빨리빨리 해야지 뭐하는겨? 빨리 장갑끼고 와서 제대로 해봐.” 현관에는 장갑이 엄청나게 많다. 나는 까만 장갑을 끼고 돌아왔다. “그 고라니는 말이여, 진짜로 충청도여, 외가 친가 위로 3대가 충청도인데 어쩔수가 없지뭐.” 아산 토박이였던 아빠가 이런 말을 하다니 참 유감이다. 놀랍지도 않다.
계속 시덥지 않은 농담들을 던지며 일을 했다. “고라니는 그렇게 빨라서 군대가면 어쩐디야,” “어쩌긴 뭘 어쩌, 군대가면 잘 하겄구만, 선임이 아주 좋아라 할껴,” “헤헤 그래요?” 나는 그런가보다 하고, 내 일을 했다. “동서, 난 이 집안 사람들 말하는 게 참 이해가 안 돼.” “형님 저도 그런가보다 하는거죠뭐.” “참 충청도 사람들 알 수가 없어. 그리고 동서, 어제 우리가 다 해놓아서 좋지?” “어휴 형님 힘드셨겠어요, 덕분에 편하긴 하네요.” “형수님은 경상도 사람이니까 알 수가 없쥬.” 우리는 다같이 하하하 웃었다. 파랑색 방수포위에서 시뻘건 김치속을 만지면서.
오전에 작업을 끝내고, 점심을 먹기 전에 피곤함에 잠에 들어버렸다. 물건이 쌓여있는 소파에 조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 내 몸을 구겨넣어서 억지로 누웠다. 일어나 보니, 아빠는 이미 등산 동호회에 가버리고 없었다. 오늘도 나는 아빠의 대체 노동력이었다. 시골에 오면 밥맛이 좋으니까, 밥을 마구 퍼먹었다.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속이 더부룩해져서 그 교회도 찾을 겸 해서 산책을 나갔다. 분명히 글을 쓰면서 이 마을을 생각했을때는 존재하는 건물 이었다. 몇일 전 그 건물에 대한 글을 다 쓰고 집 앞 카페에서 나서면서 그 교회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시골 집 앞집에 옆 밭 위에 있었던 그 건물을 찾으러 나섰다. 마을 길을 천천히 걸었다. 마을에 도베르만을 키우는 사람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를 보고 무자비하게 짖어댔다. 철장안에서 목줄을 하고 있었다. 그 집 길 건너에 내가 찾는 건물이 있었다. 폐목장이 있었다. 밭 너머에 있었고, 긴 풀이 가득 자라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또 들어가볼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랬다. 교회가 아니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집안 어른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물어보자. 물어보자 생각은 했지만, 다들 다른 일을 하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나도 일했다. 장작더미를 쌓아둘 기둥을 만드는 일. 할아버지와 큰아빠와 나는 일을 계속 했다. 나는 기술이 없으니까, 또 보조만 했다. “큰아빠?” “이?” “신정호 밑에 마을이 있었어요?” “이.” 정작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못 물어봤다. 왜인지 필요한 질문을 해야할 때면 이상하게 긴장이 되어서 정작 물어봐야 할 것은 못 물어보고, 물어본 것에 대해서는 만족 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 항상 그랬다. 일은 금방 끝이 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티브이를 봤다. 야구를 하고있었다. 한국시리즈 – 평소에는 야구를 잘 보지 않지만은, 시골에 오면 야구가 재미있다. 어른들이 야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때 둘째 큰아빠가 왔다. “니 아빠는 어디가고, 너랑 니 엄마만 있냐?” “대타입니다.” “니가 대타여?” “이사람 산에 갔어요.” “이놈 또 산에갔어요? 참 내원.” 둘째큰아빠와 나는 야구를 계속 봤다. 둘째 큰엄마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엄마와 큰엄마는 비음을 내며 반겨주었다.
사과를 깎아먹다가, 둘째 큰아빠와 장작을 패러 나갔다. “이? 너두 해보러구? 위로 해서 내려올때 배에 힘을 주고 콱 하고 하면 쫙 갈라져. 해봐.” 너무 두꺼워서 쪼개지지 않을것만 같은 나무를 내 앞에 텅 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연신 – 최선을 다해서 도끼로 내리쳤다. “잘 안쪼개 지지? 그냥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해봐. 알려줄꺼는 다 알려줬으니께, 연습하면 될껴.” 결국 나는 방법을 터득했고, 커다란 나무를 쪼개 버렸다. 지나가던 할아버지는 “이제 고라니가와가지구 장작해도 되겄다.” 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도 아무 생각없이 나무를 내리쳤다. 엉성한 자세에 힘만 잔뜩 들어가서 도끼 자루로 나무를 패서 도끼가 자꾸만 공중으로 튀었다. 그러다가 힘도 빠져서 도끼자루가 손에서 자꾸만 도망쳤다. “어후 동서 나는 재 옆에는 안갈래, 도끼로 한 대 맞을 것 같아.” “…”
엄마와 나는 저녁을 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어머 동서 벌써 가게? 원래 김장은 일박 이일인데.” “예 월요일에 일 해야 해가지구요, 형님은 언제 가시게요?” “우리도 가야지 이제. 아니다 어머님, 막내 온다는데, 내일갈까요?” 할머니의 얼굴이 펴지며 “아녀, 가려면 가야지 뭐, 별수 있남.” 작은아빠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와 나는 떠났다. 온몸이 알에 배겨서 차에 타기도 힘들었다. “고라니야 우리 너무 수고했어.” “엄마 진짜로 수고했어요.” 동생들에게 해줄 수육거리와 엄청나게 무거운 김치통을 오래된 차에 싣고 집으로…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