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단 이 글에 앞서서, 중국을 지지하는 사람도, 미국을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냥 국제뉴스를 좋아하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복수전공하는 평범한 학생임을 분명히 해 둔다.
최근에 미국의 공화당계 정치 활동가 찰리 커크가, 22세 청년 타일러 로빈슨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단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의 문제는 다들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일단 치워두고, 이 문제로 인해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 중에 하나를 다루고자 한다.
지미 키멜쇼가 무기한 제작 중단이 되었다. 찰리 커크의 사망에 대한 발언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면이 있으며, 지미 키멜이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은 "실력이 없어서 제작이 중단된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지만, 그가 이런 류의 자신에게 비판적인 토크쇼들을 불편해 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후 다른 토크쇼들이 이런 상황을 보고 풍자하고 나서자, 라이센스를 박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의 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아니, 여태까지의 제국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모든 제국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영원해 보이던 패권국도 결국에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미국이 가진 파워는 확실했다. 중국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점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두드러지는 점은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했다. 이 점은 대한민국과도 확실히 차별점을 가지고 있었다.
서스럼없이, 유명 정치인들, 대통령을 코미디의 재료로 사용해서 신랄하게 비판해도 웃어 넘기고,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도 서스럼 없이 다루고, 이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던 그 미국은 지금 사건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불편하다고 제작 중단을 시키는 이 행태는, 모든 방송과 SNS를 검열하는 중국의 행태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비단 제작 중단 조치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찰리 커크의 죽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언급을 한 입국자들을 입국 거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말과 글에는 힘이 있다. 누군가를 설득시킬 수도 있고, 설득을 당할 수도 있다. 동조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미국의 힘 중 하나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수용과 받아들였던 점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출발부터 다민족, 다문화 였다. 백인이 주류라고 말을 하지만, 그 백인들도 한 국가에서 나온 백인들이 아니고,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모인 백인들이었다.
요즘은 어느 때보다 정보가 흘러넘치고 있다. 가짜뉴스도 너무 많고, 진짜뉴스도 가짜뉴스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 어느 것도 믿기가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 척하면서도 유저가 좋아할 만한 정보를 알아서 추천하면서 스스로를 사고적 상자에 가두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 누구도 설득하려고 하지도, 설득당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로, 반대편을 공격하려고 열심이다.
가짜뉴스도 문제이지만, 가짜뉴스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 진짜뉴스여도 진실성과 사실성을 호도함으로써 위기를 탈출하는 전략도 성행 중이다. 진짜 정보여도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라면, 그 정보는 이제 가짜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인간이라면, 심지가 있어야 하고, 자신만의 의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색이자 개성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에는 설득당할 용기와, 누군가의 잘못된 생각을 설득할 힘이 있어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고도 생각했다. 요즘의 사태와 사건들을 보면 잘 모르겠다. 고집과 심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사실이 아닌 정보가 홍수처럼 판을 치는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취재와 정보 수집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 요즘은 데이터도 많고, 통계도 다양하게 열려 있지만, 그것이 편향되게 제공되기도 한다.
이것이 덜 배워서 잘 모르거나, 귀찮아서 성실하고 꼼꼼하게 찾아보지 않아 속아 넘어가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지금은 개인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밖에는 잘 모르겠다.
찰리 커크는 총기 규제를 반대했고, 다민족 사회와 젠더 이슈에 대해서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독교적인 사상을 설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지하던 총기로 인해 목숨을 달리하게 되었다.
모든 말은 해도 되지만,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나 말에 대한 대가로 죽음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또 필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에게 힘을 실리고 그의 발언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들이 끼쳤을 사회적 피해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2023년 한 해 동안 총기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은 약 4만 7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총기 규제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화적, 법적, 경제적 이유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 어디든 분열과 양극화가 트렌드이다. 정치적인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문화적 양극화도 심각하다. 아무도 들어주려고 하지도, 들려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분열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좌파와 우파는 거의 없고, 반대편을 지칭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는 듯 보인다. 바르고 옳은 사실에 한해서는 설득을 당하는 것도 용기이고, 결단이자, 발전적인 유연한 마음 상태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우리만의 방 안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만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많고 다양한 정보를 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나와 이야기 하는 것은 수많은 나 일 뿐이다.
토론도 없고, 생산적인 논의도 배제한 채로 다양성을 혐오하고 있다. 설득은 상대를 전제로 상대방의 언어로 해야지 될까 말까인데, 다양성에 대한 지나친 존중으로 인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거부반응이 일어나, 서로 상종 조차 하기 싫어하는 지경에 이르러, 상대에 대한 존중의 언어로 상대를 정성스럽게 설득 하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찰리 커크의 죽음에 대해서 깊은 애도의 표시를 했다. 심각한 총기 난사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모든 사고에 대해선 일일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건 전임 정부도 그러했다.
필자는 총기 사고로 인해서 매년 죽어나가는 몇만명의 미국인들과, 찰리 커크의 죽음 둘 사이에 어떤 죽음이 더 무겁고 숭고한 죽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다 애도하고 싶다.
다만 이 글때문에, 나중에라도 미국 입국을 거부당한다면, 그건 좀 슬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