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나미

by 고라니

Go away 공민지 cl 2NE1 산다라 박. 박봄 봄이 왔습니다. 로이킴의 봄봄봄 듣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봄이 왔는데요. 전 이 큰 중환자실에 혼자 있습니다. 왜냐구요? 저번주에 어떤 사소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DT에 대해서 아십니까? 여러 의미가 있지만, 저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드라이브 스루입니다. 그러니까, 전 휴일마다 "드라이브 스루 투어"를 즐깁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 동네에 있는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세끼를 해결하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금요일에 쓰레기 봉투를 사러갑니다. 가득찬 봉투를 일요일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버립니다.


참 신기한게,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음식이 나와있잖아요? 얼마나 재미있는 경험인지. 편리하기도 하구요. 차를 끌고 갈 곳이 있는 느낌이라서 약속을 나가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인지 전 나가기 전에 최대한 꾸미고 나갑니다. 새 옷도 입고, 향수도 뿌리고. 아 무엇보다, 세차를 꼭 합니다. 깔끔한 차를 타고 들어가면 뭔가 있어 보이니까요. 토요일에는 본네트에 제 얼굴이 쨍하게 반사 될 때까지 세차를 합니다. 작은 경차라서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경차가 저의 취미에 가장 적합한 차종인거 같습니다. 특히 레이는 각진 네모 모양이어서 매장 입구와 출구에 레고처럼 딱 알맞는 느낌입니다. 이 차가 제 첫차인데 말입니다.


처음에 사러 갔을 때, 딜러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납니다. 전 사실 레이를 생각하고 간 것이 아니었어요. 원래 중고차를 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첫차는 중고차로 사야 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서요. 아무튼 그전에 차를 산다는 기분을 내고 싶었습니다.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뭘 사러 들어가면 대접받는다는 느낌과 깔끔한 매장 거기에 엄청나게 친절한 직원의 환대 같은 거 말입니다. 그날도 사러 들어갔는데 커피부터 주시더라구요. 정장을 입고 갔거든요. 뭔가 제 인생에서 비싼 물건을 산다는 생각에 신이 났거든요. 명품가방이어도 하나 사려고 백화점에 사모님들이 이쁜 옷 입고 들어가잖아요. 근데 차는 더 비싸니까, 더 고급의 물건을 사러 가니까, 저도 차려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차를 사러 오셨죠?


제 말끔한 정장을 보고서는 일단 비싼 차의 카탈로그를 가져다주는 거예요. 저는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까, 대부분의 차가 제가 생각하던 가격 이상이었습니다. 근데 막 박차고 나올 수가 없더라구요. 그러면 뭐랄까..... 능력이 없어 보이잖아요. 쪽팔리게 도망쳐야 할거 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 저에게 차란, 드라이브 스루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을 시켜주는가. 이 두 가지면 오케이입니다. 기왕이면, 빨간색이었으면 좋겠다 정도? 왜냐면 어렸을 때, 처음 봤던 스포츠카가 빨간색이었거든요. 아버지의 낡은 차를 비웃듯이 지나가던 1차선의 - 햇빛이 반사될 정도로 쨍한 붉은 스포츠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레이가 좋은 차입니다. 경차라서 경제적이고요. 안에 공간도 넓구요. 보시면..... 빨간색도 할 수 있습니다. 자 풀옵션으로 하시면......


무슨 옵션이 있나요?


뭐 여러 가지 있습니다. 바퀴 휠 옵션, 안에 내장 시트 옵션, 내장 디스플레이 옵션...... 다 하시면 2000만 원 정도 나오겠네요. 그런데, 그럴 바에는 조금 더 해서, SUV를 사실수도있스....


전 레이가 좋습니다. 혹시 에반게리온 아시나요? 저는 아야나미 레이를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레이가 좋습니다. 다만, 빨간색은 에반게리온 2호기의 색이지만요.


당장 견적서 드리겠습니다. 기다리세요!


이렇게 차를 샀다. 이 말입니다. 아무튼 별 대화 없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예산을 넘어가는 차였는데, 그건 중고차를 살 예산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어쩌다 보니, 차 담보 대출과 경차 한대가 생겼어요. 전 레이 안에서 많은 곳을 갔습니다. 스타벅스도 가고, 맥도날드도 가고, 버거킹도 가고 나름의 방문 의식이 있었는데, 갈 때마다 음료를 레이에게도 한 모금씩 주었습니다. 고생했으니까요. 그렇게 2달 정도 탔나, 차가 점점 아프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병원에 갔습니다. 아픈 레이를 타구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아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잘 안 나지고. 잘 안 일어나지는 거 같구요.


평소에 뭘 드셨나요?


아 휴일에 드라이브 스루로 스타벅스와 햄버거집을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패스트푸드를 많이 드시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단 검사 한번 해보시죠. 환자분 일단 검사실로 가시죠. 2층입니다.


못 올라갈 거 같은데요?


엘리베이터 탑승하시면 됩니다. 아니면 에스컬레이터나요.


병원의 엘리베이터의 좋은 점은 넓다는 것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바퀴 달린 침대를 타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한 깊은 공간을 가진 엘리베이터. 저도 그런 엘리베이터를 레이와 같이 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주차타워였는데, 레이를 위한 엘리베이터였죠. 안타깝게도 레이는 그 타워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전 영화를 보러 갔죠. 당시의 여자친구랑요. 지금은 여자친구가 없습니다. 좀처럼 생기지 않는군요.


아무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비용이 좀 나왔습니다. 보험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작년에 건강검진 연도였는데, 그때 받을 걸 그랬습니다. 그 이후로 별문제 없이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다만 레이는 점점 상태가 나빠졌어요. 분명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운전 실력이 늘어서 회사도 같이 다녔거든요. 아무래도 이건 질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제가 이별 후 우울증을 좀 겪고 있었어서, 레이 안의 공간이 우울의 공간이 되었거든요.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는 게, 그렇다고 음주운전을 한 적은 없습니다. 뭐, 운전자는 술을 안 먹었으니까요. 다만, 자꾸 레이의 시동이 꺼졌습니다. 숙취를 겪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레이와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우리 집은 주택이었으니까요. 눈을 감은 레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일은 뭐랄까, 온몸의 구멍에서 물이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좀 가려진 거 같아서 좋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거 같네요. 근데 다 듣고 나면 다 일리가 있는 말일 겁니다.


점점 더 레이를 깨우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밥은 잘 먹는데, 잘 가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잘 못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떤 저속 노화 전문가의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요, 혈당 스파이크에 의한 졸음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 고급 휘발유를 넣어줘야 하는구나. 그리고 건강한 습관을 들여야 하는구나. 슬프게도, 어떤 날에는 드라이브 스루에 가지 못했습니다. 레이가 도저히 일어나지 못해서요. 전날에 분명히 고급 휘발유도 넣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고급 휘발유가 혈당 스파이크를 더 유발하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 커피는 아메리카노만 담백하게 마시거든요.


그러다가 저번주에 레이가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듯싶더라고요. 우린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였지만요. 점점 겨울이 지나가고 있고, 날씨도 풀리는데, 이건 레이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레이와 병원에 갔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죠. 그런데, 자꾸만 괜찮다고 돌려보내는 거예요.


환자분, 환자분 이번에 검사를 해 봤는데, 결과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별 이상이 없습니다.


아니 별 이상이 없다고 이 약쪼가리만 주고 보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희가 어떻게 해 드릴 도리가 없어요. 아니면 입원을 하시고 추적 관찰을 하시는 게.....


당신은 의사면서 왜 이런 책임감 없는 말을 하십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환자를 데리고 올게요.


환자분이 아픈 게 아닙니까?


굿 이브닝 종합병원. 엄청나게 큰 로비와 깔끔한 병원 내부. 그리고 높은 건물이 특징입니다.

그럼 뭐 합니까. 병을 고쳐주지 못하는데. 난 위급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사는 아무래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어요. 위급한 환자는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 중환자는 중환자 실로.


저는 레이를 데리고 중환자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열린 문 안에서, 레이를 고쳐줘야 할 의사들이 그리고 돌봐줘야할 간호사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가는겁니다. 레이는 힘찬 심장소리를 내면서 고쳐달라고 의사들을 쫓아갔어요. 참고로 전 레이를 방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레이에겐 자유의지가 있잖아요? 그건 참 후회되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레이는 검사를 해야했습니다. 검사실을 찾으러 로비로 나갔습니다. 근데, 참 병원이 얼마나 환자에게 불친절한 구조로 되어있던지, 레이는 그나마 큰 문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옆에 벽을 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기기긱 신음소리를 내면서 불꽃이 양 옆으로 막 튀었습니다. 그런데, 검사실은 2층에 있잖아요.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습니다. 그러나, 중환자 실과 연결된 문을 지나가자마자 로비에서 잠이 들어버렸어요. 4명의 중환자와 함께, 그리고 10명의 신음하는 부상자들의 워셔액은 레이 앞에서 보호색이었습니다. 처참하게 깨진 유리창과 환자들의 비명소리 사이로, 검사실에 도달하지 못한 레이의 거친 가레낀 숨소리가 멎어가는 것을 대시보드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었습니다.


운전석에서 고개를 들면서 레이와 저는 연기가 피어나는 소리와 냄새, 이따금 타일이 떨어지는 최소한의 소음 사이로 정적이 덮어버린 로비를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차 문을 열고 나왔는데요, 그 의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정적이 깨지고 수많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특히 의사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어요. 너무 시끄러웠거든요. 작고 샤프한 안경에 반사된, 손톱자국이 가득한 레이와, 그 안에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소리는 작아지고, 눈 앞이 어두워졌습니다.


일어나 보니까, 병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왜냐면, 돌아다니는 의사들이 여기가 중환자실이라고 그랬거든요. 어제는 형사들이 왔습니다. 저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거 몰라? 근데 난 이렇게 생각해. 아프면 뭐가 청춘이야 아프면 병원을 쳐 가야지 병신새끼야. 차가 아프면 정비소를 가고.


누가 레이의 속살을 보는 게 싫습니다. 그래서 레이에게 제 속살과 전 여자친구의 것을 보여준 것을 후회합니다. 형사님은 좀 못 일어난다고, 심장을 파서 누가 검사하면 좋을 거 같습니까? 아니면 발기부전 검사를 하러 가서, 해면체까지 분리하면, 소리 지르실 거 같은데요. 전 아무튼 이 병원을 퇴원하면 레이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갈 생각입니다. 이번엔 돌체라떼로 말입니다.


형사들은 제 말을 듣다 말고 잠깐 담배를 태우러 나갔습니다. 전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습니다. 그런데 일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왜냐면 한쪽 팔이 안 올라가서요. 커다란 수액이 옆에 걸려있고, 아파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팔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으로 겨우 잡은 것은


영화티켓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에도 있네요. 202_년 11울 20_ . 비포 선라이즈. 5관- 6시 30분 ㅅ작. 좌석 F10 .


점점 글씨가 지워지고 있네요. 전 지금도 중환자실에서 지냅니다. 뭐 그렇다고요. 레이 따위는 다시 사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전 이제 차량 담보대출도 상환할 수 없는 병원신세를 지고 있어서요. 듣기로는 치워서 어디 폐기되기 직전이라던데. 빨리 괜찮아져서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저도 점점 괜찮아지는데,


레이도 그럴걸요?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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