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입니다.

by 고라니

김진호 씨는 오늘도 출근을 한다. 지독하게 홀애비 냄새가 나는 작은방을 나선다. 구겨진 이불과 컵라면 쓰레기, 어제 먹은 맥주 캔들이 점점 좁아져 가는 문틈으로 보이다가 이내 회색 문으로 대체되었다. 사실 김진호 씨는 홀애비냄새를 모른다. 그냥 어제 왔던 여동생이 냄새가 난다고 일러주었을 뿐이다. 자기 귀 뒤에서, 그리고 정수리에서, 마지막으로 코끝에서 나는 냄새를 모른다. 그렇지만 후각이 마비된 것은 아니었다. 샤넬 향수 냄새, 바디 미스트 냄새, 싸구려 엘라스틴 샴푸 냄새는 좋아했다. 아무튼 문 앞에서 축축한 복도의 냄새를 따라가다가 강한 락스향이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얼굴을 찡그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파란 버킷과 그 안에 대걸레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장화를 신은 청소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

.

.

.

.

김진호 씨는 아주머니를 살짝 보려다가 말았다. 코끝을 찌르는 너무 깔끔한 냄새가 났다. 괜히 뭔가 어색해진 틈에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던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휴대폰, 지갑, 아이코스.

.

아주머니가 내렸다.

.

띵. 6시 30분. 진호 씨는 회사가 9시 출근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10분. 지하철을 타고 회사 근처 역까지 2시간. 역에서 회사까지 10분.


약간 달이 보이는 하늘 아래로 진호 씨는 걸어갔다. 1분 일찍 도착한 플랫폼에 만원 지하철이 들어왔다. 진호 씨는 항상 지하철 창문에 기대서 밖을 보았다. 온통 시멘트 벽이었다. 이따금 게임 광고가 나왔다. 김진호 씨는 지하철을 타면 서 있는 편이었다. 앉아서 창문을 보려면 반대쪽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지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고개를 뒤로 돌리거나. 바닥을 보던 시선을 옆 사람의 귓구멍으로 옮긴 다음에,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항변처럼 급하게 뒤로 꺾어야 하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내릴 때, 담이 오거나 혹은 고개가 원래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

그래서인지 김진호 씨는 1달 전, 거북목증후군을 진단받았다.

거북목증후군이 있으시군요. 그러니까, 이 질병이 뭐냐면....

아 저도 많이 봤습니다. 우리 회사 사람들 중에 거북목 없는 사람이 없어서요..

근데 이 질병은 좀 다릅니다. 요즘 점점 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김진호 씨 같은 경우에는 말이에요, 쇄골 밑에 공간이 좀 넓어서, 목을 넣었다가 뺏다가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 늘고 있어요. 환자분이 벌써 이번 달에 7번째입니다. 전염병도 아니고, 학회에 가서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


이따금 지하철은 지상으로 올라갈 때가 있었는데, 김진호 씨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에는 해가 떠오르고, 점점 밖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아파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아파트들은 뒤로 달려갔다.


아파트들이 달리기를 멈추었다. 반사적으로 목이 쑥 들어갔다.

- 위급한 상황이면 알게 되실 거예요. 그게 평소에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충격이나, 혹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척수가 알아서 판단합니다.

기웃 - 쿵.


곧 기관사의 방송이 들려왔다.


"후후... 아. 아.. 그 전력 문제가 생겨서 일시적으로 정지했습니다. 보고했으니, 빠른 시간 내에 대처반이 출동해서 출발할 것입니다. 너무 당황하지 마시고, 지시에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들 집단적인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다들 사연은 다양했다. 김진호 씨는 가만히 들었다. 대부분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학교에 가는 학생도 있는 듯했다. 지하철이라는 공짜 교통수단을 타고 유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겨울 지하철은 곧 사람들의 숨으로 채워졌다. 히터도, 꺼진 이 작은 컨테이너 박스는 춥고 습한 상자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다들 땀을 흘렸다. 동시에 춥다고 느꼈다. 집단 오한 상태였다.


"....저기요... 제가 공황장애가 있는데요.... 문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

.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여기서 도저히 문을 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문... 문.... 문 열라고 십새끼야 시...시발 시발 시발!!!!!!!!!"


그게 몇 년 전부터, 지하철 칸마다 있던 문이 사라졌다. 그래서 맨 앞 칸 사람들은 저 끝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날의 지하철은 너무 사람이 많아서, 끝과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이 너무 작았다. 김진호 씨에게 주어진 공간도 협소했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마르고를 반복했다. 패딩 안에 정장 안에 제모 한 지 오래된 겨드랑이에 불쾌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김진호 씨는 숨을 조금씩 가쁘게 쉬었다. 마침내 누군가의 공황 섞인 절규를 들었을 때, 갑자기 주변인들의 악취가 느껴졌다. 지하철은 다리 위에 있었다. 그러니까, 밖은 낭떠러지였는데, 여는 순간 문밖의 사람은 튕겨나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게 김진호 씨의 상황이었다.


다리 밑은 강이 흘렀다. 태양은 어느새 모든 모습을 들어냈다. 8:30. 그 남자는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피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쿵쿵 위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소리를 질렀다.


"아니. . . . 문을 열어 달라고, 숨이 안 쉬어진다고 !"

"선생님 그렇게 뛰시면 숨이 더 막혀요. 여기서 문을 열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나.... 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어"

" 우리 모두 나가고 싶죠. 선생님 그런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요"


옆에 있던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타이르려는 시도를 했다. 모두들 숨죽여 바라보았다. 그렇게 천천히 상황이 좋아지는 듯했다. 남자는 점점 평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김진호 씨는 그리고 그 옆의 모든 사람들은 집단 독백적 안정을 찾았다.


후.. 후... 다들 고생 많으십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좀 오래 걸릴 듯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시면.........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회사에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부장님 차장님 그리고 연락을 해야 하는 곳에 문자와 이메일 - 그리고 증거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밖에 멈춰있다는 위태로운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 창문으로 몰렸다. 김진호 씨는 점점 작아졌다. 그 순간


시.... 시벌... 언제까지... 언제까지!!! 언제까지!!!!!!! 진정되었던 남자는 창문을 향해서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 푸른색 그라데이션 글라스 틴팅이되어있던 창문이 - 붉게 변해갔다.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고, 어쩔 수 없는 공간 안에서 최소한의 안전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넘어지고, 밟히고, 그러다가 아무도 아무 곳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김진호 씨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 "어떻게든 제시간에 오세요. 오늘 중요한 발표를 한다고 해 놓고 이렇게 하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장님도 오신다고 했는데, 발표자가 늦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부서는요? 우리 팀은요? 김진호 씨도 이제 승진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문자가 와 있었다. 그 문자를 다 읽자 전화가 왔다.


"야 나 부장인데, 어떻게든 와. 죽어서라도 와. 뛰어서라도 와. 아니 수영을 해서라도... 근데"

"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네!!!"


김진호 씨는 빠르게 지쳐갔다. 점점 정신적 탈진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모두들 창문에 머릴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찰나의 순간에 앞에 여자의 가방끈 사이로 공황상태의 남자의 눈이 보였다.


문 옆에는 작은 상자가 있고, 그 상자 안에는 레버가 있다. 그 레버를 당기고, 문을 당기면 - 아니 당겨줘. 제발. 너도 나가고 싶잖아?


어.... 어.... 어.....? 어......!


사람들이 우수수 다리 밑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괜찮다. 다들 거북목증후군이 있는 회사원들이니까. 아까 공황이 걸렸던 남자는 시원한 공기를 느끼면서 떨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김진호 씨는 고개를 쇄골 뒤로 넣었다. 팔도, 다리도 몸통으로 접어 넣었다. 손과 발 그리고 몸통과 머리만 살짝 보였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물속에서는 박태환보다 빠르다고. 넌 스펀지도 안 봤냐?


.....근데 육지거북은 수영을 못해.


다행히 난 바다거북이야.


김진호 씨는 누구보다 빠르게 강을 헤엄쳐갔다. 푸른 물과 도시의 폐수 사이로, 회사가 있는 곳이 보였다. 세계에서 폭이 넓기로 소문난 강을 횡단하고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서 이따금 고개를 들었다. 다리 위에 차들이 보였다. 물이 아주 탁했다. 다리 위에서 경찰과 실랑이하는 사람이 보였다. 물 거품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진호 씨는 수영장에서도 무조건 물 안경을 쓰는 편이다. 눈 관련 질환에 걸리기 싫었으니까. 또다시 고개를 들자 밤섬이 보였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아침을 거르고 왔다. 그리고 거대한 육지가 보였다. 8시 50분. - 물론 휴대폰이 젖어서 시간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지나가는 시내버스 전광판이 보였을 뿐이었다.


수영복을 이럴 때를 대비해서 챙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물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부르는 김진호 씨는 물 비린내로 가득했다. 물론 김진호 씨는 몰랐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뿐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김진호 씨 뒤로 하나둘씩 물 밖으로 나왔다. 피크닉을 하던 사람들, 러닝을 하던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를 타던 동호인들까지, 다들 멈추어서 사진을 찍기 바빴다.


.....어머 저 사람들 출근하는 거야? 연차라도 쓰지.... 어허 지민아, 엄마가 흙 먹지 말라고 했지!


평소에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우리처럼 자전거도 열심히 타고 하면 거북목은 안 걸렸을 텐데. 아니 저런 걸 찍고 있네 저 아줌마들은


불쌍하다 불쌍해... 어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접었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쭈욱 펴서 털고 뛰어가는 정장 입은 사람들을 보고, 모두들 경악을 했다. 그 순간에도 지하철은 멈추어 있었고, 뛰어내리지 못한 사람들은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 공황에 걸렸던 남자는 문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태웠다. 지하철 안은 금연공간이었다. 연신 기관사는 방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코스는 담배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띵-


김진호 씨는 또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누군가 뛰어들어왔다. 그 사람도 흠뻑 젖어있었다. 어제 들어온 인턴이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었다.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회의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앞에 발표하는 사람은 김진호 씨가 아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사장은 웃고 있었다. 9시였다. 김진호 씨는 화장실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틀고 구석구석 씻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젖은 휴대전화와 축축한 지갑이 나왔다. 그러다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또다시 팔 다리, 목을 접었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회의가 끝난 사람들은 웃으면서 화장실로 들어왔다.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김진호 씨가 발표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야. 이 대리 다시 봤어 아주 결과가 좋았어 이번에 - 사장님도 좋아하시고 말이야. 어 근데

누가 화장실에서 거북이를 키우는 거지?"

ChatGPT Image 2026년 2월 26일 오후 04_08_54.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