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운전을 하면서, 멀미를 안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조수석에 타는 것과 뒷좌석에 타는 것. 나는 원래 멀미가 엄청나게 심했다. 얼마나 심했냐면 - 멀미가 너무 심해서 차를 타는 일 자체가 정말 곤욕이었다. 해결 방법은 창문을 열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멀미약을 마시는 것 정도가 있었으나, 그 어느 것도 시원한 해결 방법이 아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일 자체가, 가까운 휴게소에서 휴게소로 숨을 참고 다이빙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멀미는 말끔하게 사라진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집과 멀리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버스를 1시간 넘게 타야 했는데, 그 시기를 아무런 문제 없이 넘기고 졸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인식의 문제일 수 도 있겠다. 멀미는 멀미를 하는구나 라고 인식하는 순간 바로 기가막히게 찾아온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멀미를 생각하지 마. 그래서 멀미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옆에서 계속 떠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계속 음악을 틀어주거나, 창문을 열어주거나,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 잠들게 만들어 주는 사람도 있다. 다만,
너무 시끄러워서, 아니면 너무 추워서, 더워서, 멀미가 날것 같아!
라는 비 멀미자들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투정은 결국 멀미를 내 머릿속으로 초대하곤 했다. 입스라는 말을 듣자마자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지 못하는 질병에 걸리는 투수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진단는 하나로 모였다.
"기가 약해서 그래, 기가."
그래 기가 약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 사슴농장을 하던 할아버지는 기가 약한 나를 위해서, 사슴 뿔에서 나온 피와 한약재가 들어간 물을 섞어서 먹게 하셨다. 정말이지 멀미가 나는 비린 맛이었다. 어쩔때는 잘못된 구멍으로 넘어가 기침을 하기도 했다. 사슴을 통채로 잡아먹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걸 먹으면 용감해지고, 밥도 잘 먹고, 엄마 아빠말도 잘 듣게 된단다. 사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는 녹용을 숙취해소로 썼다고 하던데, 아이들은 술을 먹으면 주체할 수 없게 된다. 할아버지가 모든 사슴을 처분하고 나서는, 태권도 학원에 다녔다. 아마 태극권 학원이 있었다면 거길 갔을 것이지만, 집앞에 가까운 도장은 태권도장이 유일했다.
차라리 옆 건물에 기체조 전수관에 보냈어야 하는거 아닌가 아무튼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관련이 있었다. 나는 선수가 하고 싶었는데, 그 도장이 망하고 다른 관장에게 도장을 팔면서 나도 그 도장을 떠나왔다. 지금은 발차기 하는 법은 알지만, 다리가 안올라가는 안 유연 인간이다.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가끔은 성장기때 만큼 밥을 먹고 싶다. 하지만 나를 보면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성장을 멈추었다. 다만 기는 강해지는 듯 한다.
초등학생때에 비해서 지금은 덩치도 커지고, 힘이 세지고, 더 이상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젠 기가 세진 것일까? 난 귀신 따위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귀신은 지평좌표계를 고정하는 신비한 존재라던데, 이제 난 그에 관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완전히 정지된 존재라는 이야기 일텐데, 아니지 그 반대일까?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우리의 정적이어보이지만, 엄청난 속도의 우주선을 어떻게 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천장을 빙글빙글 돈다. 처음 질문을 잊어버려서 찾기 시작하면
정지된 상태에서 멀미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그 이유 뿐만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큐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는 거대한 타원의 푸른 우주선에서 우주여행을 이미 하고 있는데, 뭐 그렇다고 한다. 어쩌라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거대한 멀미를 겪고 있다. 모든 순간에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스스로 돌고, 태양 주위를 돌고, 그 태양은 또 다른 무언가 주위를 돌고, 모든 것의 집합들은 또다시 움직이고 - 감기에 걸린 머릿속 같은 사고 흐름들이 머릿속을 잠식시켰다.
틱
퓨즈가 나간 전구는 잔상을 남긴 채로 여전히 켜져 있는 척했다. 요즘은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서, 전기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언젠 그랬냐 싶겠지만, 요즘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은 자고 먹고 입어야 하는데, 그중에 난 포기해야 한다면 입는 것을 포기할 셈이었다. 누가 이 방에 들어온다고, 난 나체로 있어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 방 안에서는.
틱
퓨즈가 나가고 합선이 되었는지 두꺼비 집이 내려갔다. 뭐가 문제일까. 평소에 암막 커튼을 치고 산다. 조금이라도 빛이 들어오면 잠에서 깨어나고, 한번 일어나면 잡에 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방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이내 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중절모를 쓴 사내였다. 서서히 다리가 없어졌다. 이내 등을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은 옷걸이였다. 커다란 옷걸이. 커다란 코트가 걸려있었고, 위에는 중절모가 걸려있었다.
너무 조용해서 이명이 들렸다. 이명이야말로, 고문과도 다름없기에, 빨리 이명을 치우기 위해서 - 바닥에 귀를 가져다 대고, 소리에 집중을 했다. 눈을 감았다.
귀가 바닥과 접촉하기 직전에, 점점 작아지는 틈 사이로 바닷소리가 들렸다.
취 쉬 이이이
숲
귀안에 공간이 진공상태가 되었고, 어떤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 듯했지만, 그건 느낌뿐이었고, 바닥 아래 보일러로 데워진 온수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났다. 열기가 확 올라오면서, 뺨을 바닥과 분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띵동
.....
띵동 띵동
.....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다. 뜨겁고 눈 따가운 햇살을 대비하며 손으로 앞을 가리고 손잡이를 돌렸지만, 보이는 것은 깜빡이는 센서등 아래 서 있는 사람이었다. 김장 조끼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파마였으며- 오른쪽 손에는 강아지를 들고 있었다. 그 강아지도 나를 신경질적으로 째려보았다.
아줌마인지, 여성스러운 아저씨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에 이 오 우 오 아 으
AHhhhhhh ehhhhhhhh eeeeeeee ohhhhhhhh
아에이오우아에으아아이으
아무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입은 보통, 느리게, 빠르게 더 빠르게, 아주 빠르게 엄청나게 빠르게
총각! 분리수거 좀 잘하라고.
멍 멍 멍
아 넵.....
죄송합니다.
문 손잡이를 잡고 문쪽으로 당겼다. 빠르게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더 빠르게 사람과 강아지가 사라졌다. 진공포장된 가구를 집에서 열어보는 비디오를 역재생 하는 모습 같았다. 슈수슈슈슈슈슉
암막 커튼을 거두었다. 창문 밖으로 태양과 달이 야바위 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구토를 했다. 멀미
멀미를 막는 방법, 멀미약 아이스크림 그리고 휴게소.
차에서 내려서 휴게소에 들어가렴.
우주선에 침입한 에일리언을 죽이는 방법. 우주 밖으로 쫓아낸다. 그러니까, 아무튼 그러니까. 갑자기 앞으로 가다가 멈추면 대시보드에 머리를 박잖아. 나의 작은방은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전과 반대로 가는 비행기를 타도, 혹은 지구 밖으로 나가도. 내가 나간 사이에 지구가 떠나가면 어떻게 하지? 이 작은 공간의 독재자인 나는 선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아아아아아. 제가. 제가제가제가제가.....
발표하려는것은이지구를탈출하려는계획입니다일단은이작은나라밖으로나가서상황을파악하기전에이암막커튼을올리고밖을볼생각입니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
이 모든 것을 멈추는 방법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이 거대한 우주선의 브레이크는 "역추진"이라고 불리웠다. 반대쪽으로 추진을 하면 일단 멈추게 되겠지. 모든 엔진을 공전의 반대쪽으로, 자전의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만들도록 추진한다. 이게 나의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화석연료를 다 합해도 모자라겠지. 그러나, 지금은 아직 문명이 절정으로 발전한 상태가 아니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과열된 엔진을 식혀야 하는데, 이건 어떻게 해결하지?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해야하는데, 핵 폐기물은? 모든 전기와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하나?
단전호흡, 머리가 울리도록, 복식호흡 - 출력
이야아아아압
압아아아야이
야이 새끼야!
전원이 내려가 버렸다. 너무 많이 출력되었다.
제발 여러분 작업이 돌아가는 중에 물리 전원 버튼을 눌러서 컴퓨터 전원을 억지로 내리지 마세요! 잘못하면 파워가 터질지도 모릅니다.
일어났을때는 검은 커튼이 쳐 있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지는 않았다. 우주는 거대한 진공상태이고, 그 진공상태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까. 사실 진공상태라고 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무런 소리도 안들린다. 커튼을 치웠다. 모자이크유리로 된 창문은 실루엣으로만 밖을 유추하게 만들었다.
창문을 연 순간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나와 나의 작은 나라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자전이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난 멀미가 말끔히 사라졌다. 불타고 있는 세계와, 아주 추운 세계. 이 엄청난 우주선이 멈춘 곳은 우주의 끝이었고, 그 말인즉슨,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띵동
.....
띵동 띵동
.....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예, 나갑니다.
근데, 누구세요?
아 ~ ,네 가스검침원입니다. 그런데아주문을늦게여시네요정확히제가벨을몇번눌렀는지아십니까?아니대답하지마세요나도모르니까요근데시발 왜 웃지? 돌았냐? 미쳤냐? 아주 즐겁지 아주?
거대한 우주선의 브레이크를 밟았을 땐, 이미 늦었고, 야생 고라니는 트리플 악셀을 돌다가 착지에 실패하고 거대한 은하수에 처박혀 버렸다. 너무 빠른 속도의 우주선의 정지. 관성. 푸른 유리창을 박살 내고, 나도 처박혀 버렸다.
검침원은 나와 고라니의 엉덩이에 검침기를 들이밀었다.
어? 여기였구나 가스 누출이 있는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