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강에 갔습니다.

by 고라니

난 아직도 낭만적인 사랑을 꿈꾼다. 언젠가 우연히 만나는 사람과 갑자기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과, 혹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인연의 실이 다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뭐 그런. 다들 알겠지만, 꿈꾸는 것과 꿈에서 일어나서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생각하고, 기대한다는 것은 실패에 대한 가능성을 가려주지만, 다가와버린 실패에 대한 실망은 뼈아프다는 말로는 설명이 아쉬운 뭐 그런 상처를 남긴다.


라라랜드를 처음 봤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냥 그저 그랬던 뮤지컬 영화로만 생각했었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지컬 영화는 레 미제라블 이니까. 레 미제라블에 비해서 라라랜드는 뭐랄까 - 몰입이 어려운 주제였다. 다만 최근에 다시 봤을 때는 느껴지는 감동이 달랐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엄청난 재력과 수려한 외모도 있겠지만, 우연히 함께하게 된 바보 같은 순간들이 결정적이다. 우연히 우산을 두고 온 날이나, 가보지 않던 커피숍에 들어간 날, 그리고 처음으로 모임에 나간 날.


이제 그 바보 같은 것들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더 이상 할 것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설렘에 대한 미련도 없고, 그런 건 잘 느끼지도 못한다. 다만, 쉽게 감동받던 시절에 대한 미련과 연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뭔가가 예측이 되고, 새로운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난 그 상태 자체가 두렵다.


무지의 상태, 어린아이의 상태, 그리고 호기심이 가득한 상태. 호기심은 두려움을 이긴다. 안다는 것, 저 박스 안에 거미가 들어있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박스를 절대로 열지 않게 된다. 그리고 곧, 모든 박스 안에는 거미가 들어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이건 곧,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고, 난 그 말이 죽도록 싫기 때문이다.


이젠 회사원이 된 나의 선배는, 결혼을 위해서 소개팅을 나간다고 한다. 그러면 양쪽 회사에서 사람 숫자를 맞춰서 나오는데, 서로 연봉과 가족 관계, 학벌 등등을 물어본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뭐 소 도축장에서 몸무게 재고 등급 매기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물론 나는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계와 세상이 있겠지.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없는 낭만주의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도 막상 바보 같은 순간을 마주하면 사랑에 울고 웃을 테지만, 울어야 하는 가슴 아픈 순간을 이젠 어느 정도 알아서, 바보 같은 일을 피해 다니게 되었다.


결혼은 현실이다. 난 미혼이지만 이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어느 정도 생각을 해 보자면, 숫자로는 알 수 없는 삶의 경험으로 가득해서가 아닐까 싶다. 참아 줄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은 개인마다 다른데, 그건 숫자로 커버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개팅에 나가서, 연봉, 학벌 그리고 코골이 데시벨을 같이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요즘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인 이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설렘과 실수, 어색함 그리고 여러 가지 흔하지 않은 다양한 접근 방법과 관계성을 잘못된 답안으로 소개하면서 스튜디오의 관찰자들과 매체 너머의 시청자들이 조롱하도록 만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들은 그런 실수와 시간 낭비에 대단히 엄격하기 때문에 시청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우리들은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멍청하다.


관계에서 주도권은 상대를 을로 만든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순응적이고 착한 남자를 찾는다거나, 처녀성을 유지한 여성이 좋다거나, 순수한 이성을 찾는다거나, 등등이 있다. 이상하게도 이런 주도권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내가 너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산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누구나 호구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얼마나 해줘야 호구일까? 아무래도 그런 건 관계와 큰 관련이 없는 듯싶다.


어떤 사람은 원룸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거대한 궁궐 같은 집에서 결혼을 한다. 저 멀리의 사람은 정략결혼을 하고, 어떤 신부와 신랑은 서로의 얼굴을 모른다. 그런 관계들에서 아이들이 탄생하고, 모든 애가 있는 가정에서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는 커서 또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살게 되겠지.


아무래도 난 아직 낭만적인 우연성을 꿈꾸는 듯싶다. 넌 왜 아직 살고 있냐라고 물어본다면, "내일의 일을 아무리 계획한다고 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삶이 항상 궁금해서"라고 답하기 때문이다. 아픔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일의 일을 위해서 상처를 피해 가는 것은 슬기롭다고 표현하고, 아픔을 마주하고 도전하는 것은 용감하다고 말하고, 아픔을 넘어선 가치를 기대하고 나아가는 것을 낭만적이라고들 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겁쟁이, 무식한 놈, 바보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 뭐 그건 마음대로 하시고. 다만


세바스찬과 미아는 세바스찬의 재즈 바 "셉스"에서 재회한다. 미아는 남편과 왔고, 세바스찬은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친다. 그 순간, 그들이 그때 간절하게 바랬던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가 펼쳐졌고, 유영하던 그 상상은 다시금 노래와 함께 접힌다. 재즈 바를 떠나는 미아와 무대 위의 세바스찬의 눈인사 만이 남았을 뿐이지.


엔딩크리딧까지 끝나고, 티브이에 보이는 것은 처연한 감정을 느끼는 반사된 나의 모습이었다.


어제는 그래서 데이트 앱에서 매칭된 사람을 만나러 한강에 갔다. 만나기 직전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의 모습에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혹은 내가 그 사람에게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결국 만났고, 큰 우여곡절이 없이 좀 많은 이야기를 한강을 걸으면서 나누었다. 다음에 만날지 말지는 뭐 나중에 생각해 보겠지만,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 다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상상한 모습과 같은 사람이 나타났지만, 생각보다 엄청 에너제틱하고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침묵 사이의 간지러운 뭔가가 없어서, 정적이 어색했다. 그 사람은 어색하게 조용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 계속 말을 하는 성격을 가졌었다. 난 뭔가 그 어색함이 주는 불편함이 좋은데. 아무튼 어제는 침묵을 지워주려고 많은 말을 시도했다.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서 좋은 시간이었다. 설렘은 별로 없었지만, 서로에 대해서 뭔가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서. 어색해 하는 듯한 그 사람을 위해서 나도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한 건지는 모르겠다.


가장 지독한 현실주의자들은, 상처로 점철된 과거의 낭만주의자들이다.

갑자기 이 말이 떠오르네. 사실 내가 방금 만들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설렘이 없다. 이 말은 열리지 않는 의심과 마음의 데이터로 축적된 바리케이드이다.


사실 난 오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나왔어.


...... 사실 나도. 그런건 작년에 죽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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