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다음날

by 고라니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모든 난리에 대해서 대국민 담화를 한다고 해서, 난 시간에 맞추어서 그 인간의 말을 듣고 있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주식계좌를 연신 열어보다가 그 짓도 이제 그만하기로 하고, 버스에 올라타다가, 아주 슬퍼 보이는 버스기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떤 감정이 느껴졌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냥 일하기 싫은 사람이 투철한 직업정신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려고 몸부림치는 뭐 그런 게 보였다고, 아무튼 대답을 하겠지. 어서 타세요! 뭐 하십니까? 아 예. 29번 창 측 자리에 앉아서, 25번 창 측 자리에 앉은 고스톱치는 아줌마의 부담스럽게-가까운 뒤통수를 노려보다가,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다 듣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는 특성은 나로 하여금 3분 동안 7곡의 노래를 듣게 하였다. 마지막 곡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다음 3분 동안은 같은 노래를 들었다.


아 석유가 부족하시다면, 미국에서 사시거나, 아니면 알아서 각자 호르무즈 해협을 해결을 하세요. 아무튼 우리는 금방 진정이 될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 2~3주 동안 이란을 석기시대로 만들 것입니다. 더 이상의 확전은 없습니다. God bless America.


난 곧 잠에 들었다. 더 이상 아무런 노래도 듣고 있지 않았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잘 작동하는 와중에 엔진음과 아스팔트 마찰음이 약간씩 삐져들어왔다. 아마 여기에 이란제, 혹은 이스라엘제 폭탄이 떨어져도 난 잘 자고 있겠지. 이 헤드폰은 30만 원짜리니까. 잠은 7분 정도 지속되었고, 눈을 떴을 때는 20분 정도 지난 줄 알고, 핑크색 커튼을 치우고, 건물의 모양을 관찰해다. 이내, 아직 멀었음을 알고 다시 잠들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까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딱히 신해철 노래 탓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어제도 이 노래를 들었는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는 아주 위아래로 폭격을 당한다지. 버스는 곧 정차하려고 했다. 안전벨트를 풀고 내릴 준비를 했다. 앞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버스가 심하게 흔들렸다. 신경질적인 클락션 소리가 양쪽에서 들렸다. 슬며시 다시 안전벨트를 했다. 이내 곧 다시 풀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니까, 갑자기 네가 보고 싶었다는 말이다. 넌 말해도 들리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난 네가 준 별 모양 머리핀만 연신 만지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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