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에서 사용하는 지방을 보면, 생전에 공식적인 관직이 없던 이에게 ‘학생부군(學生府君)’이라는 호칭을 적는 전통이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이 표현은 눈에 띄게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 조상들이 사람을 바라보는 한 가지 깊은 믿음이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인생의 품격을 만든다는 믿음 말이다. 직함이 없을 때 굳이 ‘학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은, 그동안 우리는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보다 배움의 자세를 더 높게 여겼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고전적인 호칭이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금 빛을 발하고 있다.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어제 익숙했던 일이 오늘은 사라지고, 내일은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는 시대에, 직업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생애를 온전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특정 직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사람을 설명해 주는 것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AI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배우고 계산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기술이 놓치는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은 직업인으로 살기보다, 배움을 이어가는 존재로 살아가야만 하는 새로운 형태를 요구받는다. 우리는 직업과 배움이 분리되지 않는 시대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우리의 직업은 멈춰 있는 정체성이 아니라, 배우고 변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한때는 안정된 직장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신뢰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능력,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필요하다면 다시 처음부터 배울 수 있는 용기. 이런 것들이 새로운 직업관의 핵심이 되었다. 알고 보면 이는 ‘학생부군’이라는 호칭에 담겨 있던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모두 학생이며, 그 사실이 오히려 삶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 준다.
AI가 인간의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다시 배움의 길로 돌아온다.
기술이 계산하는 시대에, 인간은 의미를 찾고, 방향을 그리고, 해석을 더할 때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발견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금 가장 현대적인 시대를 살면서도, 가장 오래된 진리에 가까이 서 있다.
인간은 끝내 ‘배우는 존재’ 일 수밖에 없다.
AI는 이 사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줄 뿐이다.
그러니 인류의 새로운 직업관도 결국 이렇게 귀결된다.
직업은 우리가 잠시 머무르는 자리일 뿐이고,
배움은 우리가 평생 지녀야 할 본래의 이름이라는 것.
우리는 50이되어도 60이 되어도 70이 되어도 다시 학생이 되어 살아가는 시대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