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인가

by 아생

아버지의 사촌 조카(6촌. 준석이 오빠)의 딸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친척의 대소사는 언니 오빠가 챙기는 편이라 저와 동생은 묻어가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15년 전 제 결혼식에 준석이 오빠가 “영미야 축하한다”라고 했던 말에 신랑을 소개하며 촌수를 설명한다는 게 앞뒤 없이 ‘잘 모르는데 오빠’라고 얼버무린 게 미안했고 친척들 행사에 무심한 오빠가 특별히 축하해 준 듯해서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오빠가 외동이라 형제가 없으니 가족자리를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문학 소년이던 준석이 오빠는 말없이 책을 끼고 살았는데 이젠 말수는 늘고 이마가 훤하게 넓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6촌들을 30년 만에 만났습니다. 시골에서 끈 없이 상경했던 아버지 사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우리도 정착한 거라 자연스럽게 6촌 형제들과 가까이 지냈지요. 엄마 아버지가 싸울 때면 아버지의 사촌 누나(우리에겐 고모)에게 달려가서 말려달라 요청하기를 여러 번 할 정도로.


신기한 건 30년 만에 보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의심 없이 알아보고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옵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할 말 못할 말 기분 내키는 대로 해버리던,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명희언니는 먼저 얘기해주지 않았으면 몰라볼 뻔했습니다. 성깔은 온데간데없고 후덕한 인상에 말이 포근할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이젠 경제적으로도 편안해져서 나이 예순셋에 대학에 등록했다고,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려 한다고, 한국무용을 취미로 배우고 있는데 좋다 합니다.


저와 동갑인 촐랑이 형준이는 우리 집을 온다 간다 말없이 내키는대로 들락거리더니 중후한 중년 남성의 미소를 머금고 장성한 아들 딸을 데리고 와서 소개합니다.


바로 아랫동생의 기에 눌려 그늘이 있던 주형오빠는 고모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주형오빠의 동생 은성언니는 동구여상(현 서울동구고등학교)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한 지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듣도 보도 못한 4년제 야간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언니의 가족은 달가워하지 않았는데요. 좋은 직장 팽개치고 졸업장역할도 못할 대학에 시간과 학비를 낭비한다는 이유였지요.


6촌 형제들은 명절에 모이면 그만그만한 나잇대라 이불속에 발을 넣고 빙 둘러앉아 갈 곳 없는 수다를 떨곤 했는데 그 후 은성언니는 없었습니다. 365일 도서관에 있었으니까. 집안일과 틈틈이 알바를 하는 저와 비교하며 여자가 공부만 해서 뭐에 쓰겠냐는 핀잔의 말들을 했는데 4년 만에 언니는 침묵을 깨고 명절날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대기업, 금융업,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4곳의 입사 합격증을 받아 들고.

특히 대한무역진흥공사에 마지막 면접을 통과한 이는 서울대 대학원 졸업생 2명과 언니 단 3명이었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시간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하고. 공부해야 할 때 등록금마련한다고 아르바이트할게 아니었고, 졸업 후에 취직 공부한다고 도서관 다닐게 아니었습니다.


그 언니는 종종 여성 기업인 활약상으로 신문에 게재되었고, 그 내용들은 제게 영웅의 모험담으로 들렸습니다.


그런 언니의 평범한 오빠로 사는 것이 피곤할 법도 한데 주형 오빠의 허세로 눙쳐 삭일수 있었던 건지, 톰 크루즈를 닮은 외모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당시 오빠가 상처받을까봐 축하받을 일이 많은 은성언니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했는데 지금 오빠는 목동에서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고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답니다. 말 그대로 당당한 부모의 모습이었습니다.

다들 반평생을 마음 다듬으며 잘 살아 왔구나 싶으니 아름다웠습니다.

채수아 작가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 ‘사람이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인가’라고 쓴 대목이 스쳐 지나갑니다.


참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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