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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an 13. 2022

등단, 그 달콤한 유혹

신이 주신 기회 또는 악마의 유혹

나의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꿔왔던 꿈이고, 지금도 잊지 않은 나의 꿈이다. 다만 삶이란 것에 치여서 생각한 대로 살고 있지 못할 뿐...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시골집에서 시인 등단을 준비하던 고모와 함께 살았다. 우리 가족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는 더 이상 고모와 함께 살지 않았지만, 간간히 고모를 만나면 고모는 내게 문학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모는 메이저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할 거라고 늘 말했는데, 항상 신춘문예에서 탈락하면 내게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꼭 어디선가 나보다 시를 잘 쓰는 사람 1~2명이 나타난단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도 놓쳤어!"

그래서 고모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선생님들이 고모의 시를 보면 칭찬이 자자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시를 쓰는데도 신춘문예에서만 등단이 되는 거냐고. 고모가 말했다. 본인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통해서 등단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러려면 등단 인사지역 내 작가님들을 모시고 밥을 한 끼 대접해야 해야 한다고. 밥 한 끼를 대접하는 데 드는 비용은 큰돈이 아니었다. 어른 몇 분 모시고, 괜찮은 한정식 한 끼 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끝까지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만 노리던 고모 덕분에 아빠는 나의 꿈을 결사반대하셨다.

뭐? 작가? 그거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다. 너는 고모를 보면서도 그걸 모르니?"

아빠의 반대가 뭐 중요한가? 내가 하고 싶다는 데! 그런데 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에도 고모는 늘 제자리였다. 제대로 된 직장도 잡지 못해서 백수일 때가 많았는데, 글을 쓴다는 프라이드가 높아서 아무 일이나 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늘 큰아버지와 다른 고모들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였다. 그런 고모를 보면  나는 절대 고모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내가 계속 작가를 꿈꾼다면 나의 미래 모습도 저러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고모에게 실망한 후, 작가가 되기 위한 무엇도 계획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장래희망에 대해서 배웠는지 집에 오지 마자 나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장래희망이 뭐였어?"
엄마는 작가. 작가가 되고 싶었지!"
근데 왜 안 됐어?"

아이의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 부끄러웠다. 는 나의 장래희망을 내팽개쳐놓고서, 나의 아이에게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말이다. 게다가 '작가'는 다른 꿈들에 비하면 언제든지 이룰 수 있는 꿈이지 않은가?! 그때부터 나는 다시 작가의 꿈을 키워보기로 했다. 비록 코로나와 육아로 인해 어디 가서 배울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운 좋게도 동서문학상에서 작은 상도 받을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재능은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받은 기분이랄까? 

공모전은 제법 있었지만, 분량의 제한, 내용의 제한으로 내가 출품할 수 있는 공모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따금 도전해보고픈 공모전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항상 마감일이 지나고서야 공모전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결코 마감일을 놓치지 않으리라 벼르던 차에 한 공모전이 눈에 띄었다. 아직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문예지였다. 그리고 며칠 전, 그 공모전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최종심에서 합격했다는 것이다. 내 글이 잘 쓴 글인지, 어디를 고치는 게 좋을지 오롯이 혼자서만 판단하며 글을 쓰던 나에게 등단이라니! 정말 내가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건가, 그 한 순간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런데 나에게 등단하고 나면 계속 내 글이 발행이 되어야 하고, 그 글을 실으려면 책이 계속 나와야 하니, 해당 주최사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5년은 정기 구독할 것을 당부하였다. 등단을 한다는 데 그 정도 구독료라면 크게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한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고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모는 왜 그때 그 돈을 내고 등단을 하지 않은 것일까?


결국 나는 당선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도 아쉬웠고, 담당자도 아쉬웠을 것이다. 인생에 기회가 3번 온다는 데 그중에 하나를 날려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등단하지 않는 게 맞다는 생각이 또렷해졌다. 남들은 당선되면 축하금을 받고 글을 쓰는데, 외려 돈을 내고 글을 쓴다니, 이건 누가 봐도 작가로서 인정받는 등단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등단의 기회는 놓쳤어도 아쉬움이 들지 않았다. 다만 남편만 좀 아쉬워할 뿐....

어쩌면 내 글 실력이 딱 돈 주고 등단하기 좋을 정도의 실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글을 좀 더 배운다면 돈을 주지 않고도 등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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