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Dec 29. 2021

아쉽다, 이보다 더 좋은 꿈은 없었는데

해몽이 틀리지 않아 더 서글픈

  간밤에 꿈속에서 소변을 보는 꿈을 꾸었다. 마을이 잠긴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꿈풀이를 보았더니 재물이 들어오는 꿈이니, 복권을 꼭 사란다. 이틀 전에도 천장에 물이 새는 꿈을 꿨는데 역시나 그 꿈풀이도 재물이 들어오는 꿈이니 로또나 복권을 사라고 했다.  살면서 저렇게 해몽되는 꿈을 몇 번이나 꾼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복권을 사진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기대가 상실감으로 바뀌는 걸 수차례 경험했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러 가려는데 집 앞 편의점에 못 보던 게 붙어 있었다.

'복권 판매점'

그 글자에 주술이라도 걸린 것 마냥 살짝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아이도 느낀 걸까? 큰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저기서 복권 사가요
복권 같은 거 사면 안 돼. 사봤자 안 걸리고 돈 낭비야
그래도 해보고 싶은데...

아이의 말에 억눌렀던 '혹시나'하는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늘 복권 산 돈을 다시 돌려받는 금액이 최대 당첨금이었던 기억이 더 강하게 꿈틀댔다.


그럼 이따 집에 올 때 하나 사줄게


나는 아이에게 복권이 얼마나 쓸데없이 돈을 버리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만에 하나 꿈이 맞아서 큰돈이 당첨된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았다. 당첨이 되더라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당첨되지는 않았으면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이들에게 1천 원짜리 즉석복권 1장씩을 건넸다. 은박을 동전으로 긁었을 때 행운 숫자와 똑같은 숫자가 나오면 당첨이고, 당첨숫자 아래에 적힌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 둘이서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복권을 긁기 시작했다. 과연 그 결과는....?

당첨된 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아이들에게는 복권이 돈을 가져왔으니 사행성의 묘미를 안 것 같아 걱정이고, 나에게는 그 좋은 꿈을 2개나 꿨는데도 불구하고 당첨금이 겨우 1만 원이니...! 

아니나 다를까, 꽝 복권을 긁은 아이가 자기도 당첨되고 싶다고 한 장만 더 사달라고 졸랐다. 이미 당첨금 1만 원이 나왔기 때문에, 이 가게에 있는 나머지 즉석복권은 다 꽝이라고 얘기해도 계속 졸라댔다. 이럴 때는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더 이해가 빠르다. 나는 아이가 말한 것보다 한 장 더 사서 복권 2장을 아이에게 주었다. 결과는 예상처럼 모두 꽝이었다. 아이는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가게를 나서며, 언젠가 올케와 돌잔치를 함께 갔던 일이 떠올랐다. 아기가 돌잡이로  무엇을 잡을 것인지 예측하면서 본인의 번호표를 넣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벤트 추첨이 시작되자 올케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형님, 저 간밤에 집에 불 나는 꿈 꿨는데 설마 돌잔치 이벤트 당첨되려고 꾼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 집에 불나는 꿈은 진짜 좋은 꿈인데 겨우 돌잔치 이벤트 선물로 퉁칠까
그...렇겠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올케는 이벤트 선물로 와인잔 2개를 받았다. 다른 이변은 없었다.


올케 꿈처럼, 집에 불이 나도 와인잔 2개인데 천장에 물 좀 새고, 소변 꿈으로 현금 1만 원이면  재물이다.

예전에 인터넷의 누군가는, 돼지 2마리 안는 꿈 꾸고, 다음날 너구리 라면 끓이려고 보니 다시마가 2장 들었었댔잖아. 그에 비하면 나는 운수가 대통한 거지, 암!!! 그런데 왜 자꾸 아쉬울까...


매거진의 이전글 힘의 역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