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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Apr 26. 2022

수학을 가르치다가, 내가 수학을 싫어한 까닭을 마주하다

원래 싫어하는 과목은 뭘 해도 더 싫어하게 되어 있긴 하지만...

  한 달 전, 큰 아이의 담임교사와 학부모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가르치면 가르치는 만큼 지식을 흡수할 아이인데, 왜 엄마가 제동을 거는지에 대해서 여쭤보셨다. 현행 수업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아이의 특성상 자신이 미리 알고 수업을 하면, 안 그래도 시시해하는 수업을 더 시시하다며 집중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더 시키지 않느냐니... 내가 아이의 능력을 외려 억압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과 내가 잘못 키우고 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무언갈 해야겠다 싶었다.

  엄마들의 대화에서 항상 '사고력 수학'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사고력 수학 문제집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큰 아이가 하는 온라인 학습지 회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시키지 않을까 하던 터였다. 그래도 친구의 조언대로 우선 사고력 수학부터 시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집 종류도 다양하고 단계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문제집을 사는 게 좋을지도 잘 몰라서 허둥대던 중, 모 사고력 수학 문제집 회사 홈페이지에서 '진단평가'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사이트에서 문제를 출력한 뒤 아이에게 풀어보라고 하였다. 친구의 충고대로 아이가 문제에 대해 물어도

1. 문제를 다시 읽어봐

2. 문제를 10번 읽어봐

3. 문제를 엄마한테 설명해봐 

이 세 가지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아이에게 이런 문제를 본 적 있느냐고 했더니, 처음 보는 문제란다. 온라인 학습지에서 사고력 문제도 함께 제공되는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던가보다.

아이는 큰 어려움 없이 문제를 다 풀었다. 심지어 한 문제는 생각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아무 숫자나 써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진단평가 결과를 토대로 문제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매일 1문제씩 아이에게 풀게 했는데, 아이는 또 그 문제집이 재미있었는지, 하루에 2개씩 풀고 싶다며 풀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난관에 봉착했다. 그런데 그 난관에 다다른 것은 아이만이 아니었다. 

답지와 비교하니 아이의 정답이 틀렸다. 아이에게 왜 답을 이렇게 했냐고 하니 아이가 설명을 했다.

5cm를 먼저 잰 다음에, 다시 3cm를 같은 위치에서 재고 나면, 남는 부분이 2cm잖아(5-3=2)그리고 5센티를 잰 다음에, 다시 1센티를 같은 위치에서 재면, 남는 부분은 4cm이고(5-1=4)"

아이의 말대로라면 저렇게 쟀을 때 보기의 숫자는 모두 다 잴 수 있었다. 7cm도 결국 3cm+5cm-1cm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집의 정답은 5cm, 6cm만 인정하고 있었다. 출판사로 전화해서 물으니, 저 자는 잘라서 쓰는 자가 아니라 연달아 재는 자이기 때문에, 아이의 문제풀이는 틀린 것이라고 했다. 만약 현실에서 저 자로 2cm 재야 하는 일이 있다면, 누구든 아이가 설명한 방식대로 재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가 그 어릴 적 수학을 싫어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어떤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었더니, 이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풀면 안 돼서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선생님이 그때 일러주신 대로만 풀었더니, 그 문제에서는 되려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풀지 않아서 틀렸더랬다. 그래서 선생님께 문제를 대체 어느 기준으로 풀라는 거냐며 앙앙대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학이 재미가 없어졌다. 나는 되는데, 답지에서는 안 된다고 하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참고로 출판사에서는, 각 센티 별로 이미 잘린 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아이의 풀이가 맞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그 이전부터 수학을 싫어하긴 했다. 시골에 산 탓에 문방구도 멀었고, 또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지금처럼 스케치북과 색칠공부 등이 넘쳐나지 않을 때였다. 그때 나는 숫자를 연결해서 선을 그으면 그림이 되는 것과 색칠공부를 너무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집에 오면 산수 익힘책을 펼쳤다. 산수 익힘 책에 저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산수 익힘책에서 저런 페이지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산수 익힘책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고 나니, 그저 숫자의 순서대로만 선을 연결하면 되던 게, 계산을 해야만 숫자를 연결할 수 있고, 계산을 해야만 색을 칠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나는 그저 예쁘게 그림에 색을 칠하고 싶었을 뿐인데, 계산을 하고 색을 칠하니, 완성된 그림에 온통 숫자로 가득했다. 그래서 색을 칠해도 그림이 예쁘지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계산'이 '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취미를 '방해'하게 된 것이다. 물론 출제자의 의도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라는 것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나만, 나의 흥미에 수학이 걸림돌이 되었을 뿐이니까!


  다행히 큰 아이는 출판사의 설명을 알려주니 빠르게 수긍을 했고 여전히 수학을 재미있어한다. 나와 달라서 참 다행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뭔 짓을 해도 예쁘고, 싫어하는 사람은 뭔 짓을 해도 안 예뻐 보인다'라는 말처럼, 나에게 수학이 그랬을 지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고등학생 때 문이과 적성검사에서 적성 계열 '이과'에, 1순위가 수학과가  나왔다.  두뇌의 적성을 나의 흥미가 철저히 무시한 셈이랄까? 내가 수학을 좋아했으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까지는 가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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