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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낀 감. 너의 이름은 곶감.

사람도 곶감처럼 익는다.

by 볕뉘


곶감은 어릴 적 내 간식 순위에서 언제나 최하위권이었다.

일단 생김새부터가 수상했다. 주름은 자글자글 과일도 아닌 것이 말라비틀어졌고, 설상가상으로 하얀 가루까지 덮여 있던 곶감.

그땐 그걸 곶감의 포슬포슬한 당분이라고 누가 말해줘도 나에겐 그냥 ‘먼지 낀 감’이었다.

엄마는 그런 곶감을 사랑했다.

문갑 서랍에서 살짝 꺼내 손으로 천천히 펴서 한 입. 그러고는 “음~ 달다” 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엄마 곶감 너무 찐득찐득해, 꼭 이빨 빠질 것 같아?”

엄마는 곶감을 먹으면서

“곶감은 말이야,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음미하는 거야.”

음미한다는 말이 어린 나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는 그 당시에는 젤리를 더 사랑했고, 사탕을 예찬했으며 껍질이 반짝이는 귤 같은 과일에 더 진심이었다.

곶감은 나의 유년 시절 간식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8강 진출을 해본 적이 없는 후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 곶감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이제는 예쁘게 썰어 접시에 올려두고, 옆에 따뜻한 차까지 곁들이는 그럴싸한 ‘어른 코스’가 되어버렸다.

하루는 혼자서 곶감을 먹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토록 외면했던 이 말라비틀어진 과일이 이제는 내 입맛에 딱 맞다니 나는 언제 이렇게 변한 걸까?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보니, 곶감은 참 인내심이 많은 과일이다.

잘 익은 감을 땄다고 끝이 아니고 껍질을 벗기고, 한 줄로 매달아 햇볕과 바람, 그리고 시간에 묵묵히 맡겨야 한다. 처음엔 물렁물렁하던 감이 서서히 쪼그라들고, 말라가면서 속살은 쫀득해지고, 당분은 밖으로 배어 나와 마침내 ‘곶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문득 요즘 나의 삶과 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생기 넘치고 반짝였지만 살다 보니 점점 쪼그라들고, 여기저기 주름도 늘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말라간다. 하지만 그 속엔 조용히 스며드는 단맛이 있다.

나는 곶감을 먹으며 깨달았다.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며 깊어진다고, 젤리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기다림이 있고, 급하게 씹어 삼킬 수 없는 시간의 맛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릴 땐 그런 걸 몰랐다.

모든 건 빠르고, 즉각적이어야 좋았다.

하지만 곶감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곶감은 시간을 버티고, 햇살과 바람을 견디고,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 인생도 그렇다. 쉽게 단맛을 내는 것보다, 천천히 삭혀 내는 것이 더 오래 남고, 더 깊게 배는 법이다.

지금의 나는 말랑하게 익은 곶감 한입에 인생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때로는 너무 느리고, 가끔은 너무 조용하지만 그게 어른이 되어 가는 맛이라는 걸 곶감이 먼저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곶감은 기다림 끝에 단맛이 스며들고, 사람은 시간을 견딘 끝에 깊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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