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의 침묵

살아 낸 시간의 무게

by 볕뉘

한옥마을 길을 걷다 500년 된 은행나무 앞에 섰다.
관광객의 웃음소리와 셔터 소리가 뒤섞인 길 한복판. 나무는 가지 끝에 걸린 햇살마저 오래된 것처럼 느릿했고, 뿌리 주변의 흙은 수백 번의 발걸음을 견딘 얼굴 같았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근근이 버텨온 시간의 힘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 나무는 참 많은 시대의 사람들을 보았겠구나.
조선의 선비들이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오가던 길, 일제강점기의 눌린 숨결로 고개를 떨구고 걷던 사람들, 전쟁통에 울부짖으며 피난을 떠나던 가족들, 산업화의 소음 속에서 하루를 벌어 하루를 견디던 얼굴들까지.

이 은행나무는 빠짐없이 모두를 보아왔을 것이다.

전쟁 속에서도 이 자리에 서 있었을까.
총성과 비명이 뒤섞인 아비규환 속에서도 잎을 떨구지 않고 버텼을까.
굶주림에 지친 아이가 그늘에 주저앉아 울던 날도, 헤어진 가족을 기다리다 끝내 돌아서야 했던 이름 모를 누군가의 등을 보던 날도, 이 나무는 한마디 하지 않고 그 장면들을 가슴속에 묻어두었을 것이다. 나무의 침묵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격변의 시대마다 사람들은 변했고 세상은 바뀌었다.
나라의 이름이 바뀌고, 거리의 풍경이 달라지고, 옷차림과 말투가 달라졌다. 그런데 이 나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 더 굵어지고, 조금 더 낮아지고, 조금 더 느려졌을 뿐이다. 어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 순간 견디며 변해왔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무는 늘 제자리에서 매 계절을 통과하며 제 몫의 시간을 살아낸 것이었다.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내 인생의 시간은 고작 몇십 년에 불과한데, 이 나무는 다섯 세기를 건너왔다. 내가 겪은 아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이 얼마나 작은 조각인지 부끄러워질 만큼. 그런데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오래 살아낸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의 삶이 덜 외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나무처럼 살아가는 게 아닐까.


말없이 견디고, 티 나지 않게 버티고, 계절마다 조금씩 변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오래 머물다 떠나고, 또 누군가는 기억도 없이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몸에 쌓아가며 살아간다. 마치 이 은행나무처럼 말이다.

500년을 살아온 나무 앞에서 시간의 무게와 계절의 무게를 생각해 본다.


시간은 무섭고 깊은 것이고, 견딘다는 건 초라한 일이 아니라 존엄한 일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낸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한옥마을의 소란 속에서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던 건, 다름 아닌 그 은행나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수백 년의 인생을 들려주고 있던 나무. 나는 그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주 작게 빌었다.
내 삶도 언젠가,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에서 오래 서 있을 수 있기를.
비바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계절을 건너며 끝내 자기 자리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