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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11시간전

눈이 부시게

그녀의 이야기

눈이 부시게

그녀의 이야기

밝고 긍정적인 당신은 아나운서 지망생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신비한 시계를 발견하게 되고, 시간 여행을 하게 되지요.

처음에는 시계를 이용하여 과거를 바꾸고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시간 여행의 대가로 젊음을 잃고 70대 노인이 되어버립니다.

“이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우리가 뭔가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무언가를 희생해야 된다 그거야.”

처음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당신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혼란스러워합니다. 거울 속 낯선 노인의 모습에 당황하고, 젊음을 잃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기억과 갑자기 변해 버린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당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 또한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되돌린 대가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나운서 꿈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미래도 모두 멀어져 버린 체 당신은 잃어버린 젊음과 꿈에 대한 슬픔,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잠식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변해 버린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강인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무엇이 당신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가게 하는 걸까요?

당신의 강인한 마음을 닮고 싶었습니다.

비록 젊음은 잃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당신 모습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의 무기력한 모습에 당신은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려고 애쓰지요, 한 번뿐인 삶은 살아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준하 또한 당신을 통해 깨달았을 때 마음속이 조금 따뜻해졌답니다.

“너희들한테 당연한 거겠지만, 잘 보고, 잘 걷고, 잘 숨 쉬는 거, 우리한테 그게 당연한 게 아니야. 되게 감사한 거야”

젊은 세대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하루의 일상적인 행동들도,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잃어가는 슬픔과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하루 24시간 똑같아.”

겉모습만 나이가 들었지, 내면은 여전히 젊은 여성인 당신. 젊은이들과 똑같이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저의 마음과 똑같았습니다. 저 또한 신체적인 나이는 인생 반세기를 돌았기 때문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게 느껴지지만, 마음은 여전히 20대 감정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하신 말씀에

“네가 아무리 실패하고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아빠는 널 절대 포기하지 않아.”

아나운서 시험에 계속 떨어지며 좌절할 때, 아버지는 당신을 격려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줍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삶이요. 저 또한 저의 딸에게 이런 무한한 사랑을 줄 것을 약속합니다.

“잘난 거랑 잘 사는 거랑 다른 게 뭔지 알아? 못난 놈이라도 잘난 것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나 여기 살아있다. 나보고 다른 못난 놈들 힘내라’ 이러는 게 진짜 잘 사는 거야.”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저 또한 당신 부모님께 배웠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깎아내리기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인생에서 실패와 좌절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저 역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고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에도 저를 따뜻한 쪽으로 잡아 이끌어준 가족과 저의 사람들이 있기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지금의 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놀란 것은 드라마의 반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시간 여행이 사실은 치매로 인한 망상이었음을 밝혀지는 순간이었지요. 시간 여행이라는 환상 속에 갇혀 있었던 당신.

바닷가 석양을 바라보며 독백한 마지막 대사가 저의 눈시울을 붉게 적십니다. 저의 옷자락을 물들입니다.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에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때가.”

저 또한 몇 년전 암 수술을 할 때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가 행복임을 알았습니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하루가 기적임을 알았고,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선물임을 알았지요. 당신의 대사에서 또 한번 마음이 노을처럼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많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대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결국 당신의 말씀대로 저 또한 하루하루 눈부시게 살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수많은 상처에 굴하지 않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눈부심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지금의 저의 모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일으켜 주어서 저를 살게 해 주어서요.

나의 혜자 님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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