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 곧 넘어갈 해가 온통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네거리 모퉁이 세탁소에도 황금햇살이 부딪혀 찬란하게 부서진다. (정)사각형의 건물벽과 담벼락, 수직의 전봇대로 구성된 화면이 빛과 그림자로 명확하게 양분되었다.
힘겹게 언덕을 올라오는 노인,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 리어카를 끌고 골목에 들어 선 이……, 세탁소 큰 창으로는 다림질을 하는 아버지가 보인다. 세탁소 앞 네거리는 동네 어귀로 항상 사람들로 활기차다.
골목에는 그늘이 져 어스름한데, 곧 어둠이 내릴 참이다. 선거벽보가 붙은 담벼락 아래, 애들 여럿이 뭘 하는지 쪼그리고 앉아 이글루 마냥 똘똘 뭉쳐있다.
틀림없이 (구슬)쌈치기나 (딱지)물쭈를 하고 있을 거다. 그것도 막판까지 남은 두 아이가 살 떨리는 아도치기를 하고 있을 중일 거다.
가진 거 진즉에 다 잃었지만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궁금한데다, 그가 집어줄 개평이 아쉬운 애들이 집에 가지도 않고 남아서는 더 난리를 친다. “이거 찌다.” “아니다, 잡은 손을 봐라, 이번엔 무조건 쌈이다.”
이때, 세탁소 유리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손을 들고 소리를 지른다. “창복아~ 밥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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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주놀이_oil on linen_60.6x72.7cm_2022/ Jangbok R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