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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2. 2023

카바놀이

   추운 겨울 골목 담벼락 근처에 조금 걸쳐있는 볕에 쪼그리고 있던 애들 중 두엇이 일어난다. 잠바 호주머니에 두 손은 넣은 채 가볍게 툭툭 시작하더니만, 금세 두꺼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열을 낸다. 마주 보고 서서는 두 발을 번갈아 들었다 놨다 하며 통통 튀는 꼴이 닭이 투닥거리는 모습과 똑 닮았다.

   카바라는 놀이인데 영어로 커버(cover)를 그렇게 발음한 것일 거다. 부상의 위험도 있는 살벌한 말타기보다는 한결 가볍지만, 격렬하게 몸을 놀리기로는 말타기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이 놀이는 내 발로 상대의 발등을 밟으면, 밟힌 사람이 지게 되고, 편싸움에서는 밟힌 순간 아웃이다. 이게 규칙은 단순하지만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표적인 내 발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피하면서도 호시탐탐 상대의 발등을 밟을 기회를 노려야 하니 잠시도 가만히 멈춰있을 수가 없다. 두 발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현혹한다. 때론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 도발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기도 한다. 사정권 안으로 들어온 발이라고 쉽게 밟으려고 나가면, 상대는 순식간에 발을 빼고 역공을 취해, 밟으러 나온 내 발을 여지없이 밟아버린다.

   또한 위장 공격 작전도 있는데, 좀 큰 애들이나 구사할 수 있는 중고급 작전에 해당한다. 내 오른발이 대각선 방향에 있는 상대의 오른발을 공격을 하면(실제로는 공격하는 척) 상대는 급히 자신의 오른발을 빼서 방어를 하는데, 그때는 당연히 왼발이 중심을 잡아야 하므로 왼발이 땅에 고정되면서 기동력이 잠시 떨어진다. 이때 공격에 나선 내 오른발은 공격에 실패한 것처럼 땅을 짚지만, 짚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왼쪽으로 돌려 상대를 등지면서 내 왼발 뒤꿈치로 상대의 왼발을 콱 밟는다. 그럼 상대는 오른발을 잘 피했다고 안도하는 사이에 왼발을 밟혀서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전은 몸의 균형과 민첩성, 그리고 자신감에서 나오는 대담함이 있어야 성공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애들이 사부자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편싸움으로 번진다. 일대일이야 상대방 한 사람만 집중하면 되지만, 편싸움할 때는 적군이든 아군이든 다른 애들도 두루 신경을 쓰면서 해야 한다. 갑자기 뒤에서 쓱 다리를 밀어 넣어 밟는 애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군의 상황도 수시로 살피면서 위기에 처한 아군을 지원해 구출하고, 협공으로 상대편을 확실히 아웃시켜 전체적인 구도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전략적 사고를 하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또한 상대의 반사적인 반응을 예측하고, 나아가 상대의 반사적 반응을 유도하기까지 하면서 공격­수비를 연속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전투 상황을 수시로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보기에는 좁은 장소에서 그저 가볍게 촐랑촐랑 뛰고 있는 것만 같지만, 체력소모도 엄청나게 크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머뭇거림 없는 과감한 판단력, 의도대로 몸을 움직일 힘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난 나름 승부 근성도 있고 해서 다른 놀이에서도 처지는 편이 아니었지만, 특히 카바놀이를 잘했다. 발 길이가 짧아 불리했지만, 키 큰 애들이 대체로 굼뜬 편이라 나의 민첩성으로 충분히 이겨 먹을 수 있었다. 편먹기를 할 때면 다들 나하고 편먹기를 바랄 만큼 우대받는 선수였다. 그 시절 내 나이에 걸맞은 신체적, 두뇌적 발달은 상당 부분 카바놀이의 덕이 아닐까도 싶다. 


#미아리의추억 #카바놀이 #발등밟기 

류해윤_팔월 한가위_종이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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