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번외
할머니와 함께하는 게 힘들다.
할머니는 점점 어린아이 같아지고 있다. 5살 정도 되는 아이.
우리 집은 17층인데 저번엔 13층, 이번에 집에 올 땐 16층을 찾아갔다. 그래도 다른 집에 도착하면 어딘가 이상한지 전화를 꼭 하시긴 한다.
집에 오면 옛날 드라마를 틀어드리는데 분명 인물 관계도를 말씀드리는데도 다시 물어보신다.
“이 둘이 *내우간이여?” *부부사이
“저 둘은 진짜 모녀간이대?”
할머니가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예전엔 곧잘 영화관도 모시고 가곤 했는데 허리 아파서 영화 보기 싫다 하신 후로는 함께 어떤 매체를 본 일이 드물기 때문이었다.
하신 말씀을 계속 반복하신다. 우리가 하는 말을 가만 앉아 듣는 일이 많았던 할머니는 자기가 하려고 했던 말은 반드시 하는 사람이 됐다.
식당에서 나온 콩나물을 보며 예전엔 먹었는데 지금은 안 먹는다는 말을 3번 이상, 두부도 안 먹는다는 말을 2번. 대화 중에 본인의 말이 끊기면 어떻게 해서든 이어서 하신다.
맨 정신에 할머니의 변한 모습을 보는 건 힘들다. 할머니가 어린아이라면 내가 힘들어했을까? 귀여워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은 더 힘들어진다.
결국 술 한잔을 했다. 술이 들어가서 기분이 좋아지니 할머니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지 않게 됐다. 했던 말에 그랬냐고 답했고, 또 해도 웃으면서 끄덕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식당인데 택시를 타고 왔더니 어딘지 몰라하셨다. 배가 불러 걸어가는 동안 연신 두리번거리면서 여기다 당신을 두고 가면 집을 못 찾아갈 것 같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할머니를 두고 갈 생각이 없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했다. 타박하지 말고 두려움을 알아줄 걸 그랬다.
집과 가까운 병원이 보이자 이제 아는 곳이다 싶어 표정이 편안해지셨다.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뒤돌아 집으로 가는 길. 할머니랑 헤어질 땐 항상 뒤끝이 쓰다. 더 들어줄걸. 더 반가워할 걸 하고.
엄마랑 다음에 집에 오시면 더 잘해드리자고 이야기하면서 돌아갔다. 손녀인 나도 마음이 안 좋은데 엄마는 오죽할까 싶다.